[브라보 마이 라이프] 정경아 작가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 펴내
중국어·펜화·댄스스포츠 등 매년 새로 도전
“길어진 노년, 50대부터 계획해야…
대단한 실력 아니어도 든든한 일상 루틴 돼”
“자식들 크면 독립시켜야...‘빈 둥지’? 채워넣을 것 많아”
“다 싱글로 태어나 싱글이 된다...나이 들수록 서로 연결돼야”

지난 11월 에세이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를 펴낸 정경아(68) 작가.  ⓒ이세아 기자
지난 11월 에세이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를 펴낸 정경아(68) 작가. ⓒ이세아 기자

“퇴사 후 사회에서 잘린 것 같아 막막했죠. 65세가 돼 ‘어르신 교통카드’를 받자 머릿속에서 지진이 나는 듯했어요. 놀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제 나는 자유로운 ‘시간 부자’잖아. 무사히 할머니가 됐으니 스스로 축하해야지!”

정경아(68) 작가는 백발이 아름다운 1955년생 멋쟁이 할머니다. 언론·외교 분야에서 3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음에도 유연하고 유쾌한 60대. ‘매년 하나씩, 해보지 못한 일 저지르기’를 노년의 과제로 정하고 실천하고 있다며 눈을 반짝인다. 만나고 싶었던 ‘멋진 언니’다.

수강료가 저렴하고 경로할인까지 되니 더욱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동네문화센터에서 중국어, 펜화, 댄스스포츠까지 매년 하나씩 새롭게 배우는 중이다.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블로그 만들기 강의를 들은 게 시작이었다. 중국어 공부는 벌써 7년째다. 간단한 회화를 하는 수준이지만 “나를 지켜주는 일상의 루틴”이 됐다. 

건강한 노년기의 핵심은 친구들이다. 함께 미술사 강의도 듣고 취미생활을 공유한다. 30대 딸과 그 친구들과도 어울린다. 이런 평범하지만 즐거운 일상을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연재하다가, 지난달 에세이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세미콜론)를 펴냈다. ‘나이 먹어도 재밌게 품위 있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회에 보탬이 될까’에 대한 베이비부머 세대 여성의 현실적인 답변이다.

정경아 작가의 에세이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세미콜론). ⓒ세미콜론
정경아 작가의 에세이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세미콜론). ⓒ세미콜론

자식들은 독립했고 정 작가는 서울, 남편은 대구에서 산다. 남편도 자기 취미생활에 바쁜, “만나면 좋은 친구”다. 직장 문제로 오랫동안 ‘주말부부’로 살았다. 한때는 ‘독박육아’ 전쟁을 치렀지만 이젠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는 부러움을 산다.

“우리들의 미래가 이렇게 길어져 버린 걸 어떡해요. 50대부터는 나이 들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해요. 고민하는 이들에게 선배들은 어떻게 노년기를 계획하고 수행했나 보여주고 싶었어요. 같은 여성으로서 후배들이 꽃 피울 수 있게 돕는 게 ‘언니들’의 역할이니까요. 제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고요. 영감이 될 수 있겠지요.”

정작 손주, 부모 돌보느라 황혼을 만끽할 여유가 없는 이들이 너무 많다. 정 작가는 ‘황혼육아’, ‘노노(老老)부양’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가 문제라고 했다.

“엄마의 의무는 자기 자식을 키우는 것으로 끝나야 해요.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니 이런 부당한 일이 일어나요. 물론 자식은 부모에게 가장 귀한 손님이에요. 우리가 초대해서 세상에 나왔잖아요. 하지만 부모로서 책임을 다한 후에는 가차 없이 독립시켜야죠. 부모의 의무를 저버리는 게 아니에요. 그들의 자생력을 훼손하지 않는 길이죠. 독립한 자식과는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하고요. 자식도 부모가 잘못된 언행을 하면 지적하고 설득해야 효도예요. 자식들 떠나니 ‘빈 둥지’다? 그때부터 채워 넣으면 돼요.”

“아들을 ‘왕자’로 키워선 안 된다”며 “여성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고, 여성들과 잘 협업할 수 있는 남성은 어느 조직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막무가내로 살던 남자들이 50대가 되면 갑자기 여자들 눈치를 보고 잘하려고 해요. 늦어요!”

뒤에 올 여성들에게 “나이 드는 걸 겁내지 말라”고 조언했다. “대한민국 중년 여성들이 천하무적인데,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나이 먹는 거예요. 그럴 필요 없더라고요.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요즘 그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사회,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쉽고 자유롭게 연결되는 ‘사회적 가족’의 중요성을 체감한다. “결혼, 비혼, 이혼.... 뭐 어때요? 다 좋아요. 경험의 폭이 넓어지잖아요. 우리는 싱글로 태어났고 결국 싱글이 돼요.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어서 결혼해도 약 10년간은 홀로 사는 여성들이 많아요. 우리가 나이 들수록 서로 연결돼야 하는 이유죠. 혼인·혈연 관계가 아닌 여성들끼리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가 점차 보편화되고, 정부 지원도 더 늘지 않을까요. 저도 친구들과 개인 공간은 따로 쓰는 공동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내년엔 꾸준히 그린 펜화 일러스트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전 아직 건강해요. 그러나 내일은 모르는 거야. 그러니 지금 잘 놀아야지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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