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 양육비 제도개선 촉구 삭발시위
11년간 양육비 미지급액 9680만원
양육비 달라 하자 “너 거지냐” 핀잔 듣기도
아이 졸업식 앞두고 제도개선 위해 삭발 선택
양육비 안 주는 “나쁜 부모” 실형 살게 해야
"국회에 잠들어 있는 양육비 법안, 통과 시켜야"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했다. ⓒ박상혁 기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했다. ⓒ박상혁 기자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양육비 지급과 제도개선을 촉구하며 평생을 고수해온 긴 머리를 전부 잘랐다. 11년간 두 자녀의 친부는 단 한 차례도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자그마치 9680만원이다. ‘줄 형편이 안된다’는 게 친부의 변명이다.

양육비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과 양육자들은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는 양육비 이행절차를 간소화하고 미지급자를 엄중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국내에서 양육비 관련 삭발 시위가 열린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날 발언에 나선 김성범 법무법인 진성 실장은 “현재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수가 100만 명이 넘지만 현재의 양육비 이행법만으로는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라며 “최후 수단인 양육비 미지급자 형사처벌을 이끌어내려면 양육자가 평균 3~5년 동안 소송에 매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양육비 미지급자)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법원에 미지급자를 구속하는 ‘감치명령’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미지급자가 법원의 고장을 고의로 안 받거나 위장전입으로 회피하면 감치판결을 받을 수 없어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며 “국회에 잠들어 있는 양육비 이행절차 간소화 법안을 총선 전에 조속히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지난 11월 진행된 두 건의 양육비 형사재판에서 법원은 초범이라는 이유 등으로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를 두고 김 활동가는 “도둑질은 한 번 한 것은 초범이지만 수년간 지속적으로 도둑질을 해왔다면 초범으로 볼 수 없다”며 “양육비를 수년간 미지급했으면 초범으로 보지 말고 징역형으로 엄중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했다. ⓒ박상혁 기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했다. ⓒ박상혁 기자

“다른 피해자들은 나 같은 인생 안 살도록” 

참가자 발언이 끝나자 11년간 양육비 9680만원을 받지 못한 두 아이 엄마 김은진씨가 삭발시위를 감행했다. 이번 양육비 제도개선 촉구 삭발시위는 2019년 새해 양육비해결모임 강민서 부대표가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삭발한 이후 두 번째로 열린 시위다.

김씨는 “(형사고소가) 마지막 단계라는 생각에 회사 일을 야간으로 돌리고 낮에는 재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며 “다른 양육비 피해자들은 저 같은 인생 안 살게 하고 싶다. 너무 간절하고 힘들다”고 삭발시위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또한 “내년 1월이면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이다. 삭발 전에 큰 아이에게 ‘엄마가 머리카락 없이 졸업식에 가면 친구들에게 창피하지 않겠니’라고 물었더니 ‘우리를 위해 열심히 살아준 걸 안다. 자랑스럽고 용돈 모아 털모자를 사드리겠다’고 했다”며 자녀의 응원을 받아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김씨는 “양육비 미지급자를 최대 징역 1년까지 처벌할 수 있지만, 형량이 너무 낮을뿐더러 실제 재판에서 징역형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감치명령 없이도 형사고소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재판에서 징역형이 나오면 미지급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했다. ⓒ박상혁 기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했다. ⓒ박상혁 기자

친부에 양육비 요구하자 “너 거지냐”며 핀잔

초등생 두 자녀를 키우는 김씨는 2013년 둘째를 임신 중인 상태에서 집을 나간 친부 박모씨와 이혼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혼 과정에서 박씨에 “앞으로 두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양육비를 달라”고 요구하자 “너 거지냐? 양육비는 네가 알아서 벌어”라며 핀잔을 들었다. 이후 박씨는 11년간 양육비를 단 한 번도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미지급액은 지난 11월 기준 9680만원에 달한다.

김씨는 양육비를 받기 위해 박씨에 양육비 이행명령, 재산명시, 감치명령 등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제재조치를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를 받지 못하자 지난해 12월 박씨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달 20일 인천지법 형사8단독(판사 김지영)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서 박씨는 “아이들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현재 가진 재산이 없고 일도 구하지 못해 양육비를 줄 수 없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박씨 근무지에 직접 찾아가 최근까지 근무했음을 확인했다”고 반박하며 관리자에게 받은 박씨의 출근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김씨는 다음 재판에서 박씨에 대한 실형이 선고될 있도록 법원 등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가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한 뒤 바닥에 떨어진 김씨의 머리카락 ⓒ박상혁 기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가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한 뒤 바닥에 떨어진 김씨의 머리카락 ⓒ박상혁 기자

국회에 잠들어 있는 양육비 법안…“총선 전 통과시켜야”

양육비 미지급이 아이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정부와 국회는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신상공개, 감치명령, 형사처벌 등 미지급자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지급자들이 위장전입 등으로 제재조치를 피하거나 재판에 넘어가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자, 양육비 피해자들은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개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지난 1월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감치명령 없이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출국금지, 운전면허 정지 등 제재조치를 가할 수 있는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또한 지난 7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행명령 후 3회 이상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감치명령 없이 형사고소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이성만 무소속 의원 또한 지난달 양육비 채무자의 미지급액에 대해 지연이자를 부담하도록 규정하는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삭발시위를 진행한 김지은씨가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에 위로를 받고 있다. ⓒ박상혁 기자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삭발시위를 진행한 김지은씨가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에 위로를 받고 있다. ⓒ박상혁 기자

국가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비양육자에 청구하는 '양육비대지급제'도 발의된 상태다.

지난 3월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양육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이상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지 않으면 국가가 양육비를 대신 지급하고 국가가 국세 강제징수의 예에 따라 채무자로부터 양육비를 징수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를 포함해 20여개의 양육비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있으나, 소관위인 여성가족위원회에 넘어간 뒤 예산 심사와 타 법안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좀처럼 통과되지 않고 있다.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는 ”21대 국회에 많은 양육비 관련 개정안이 발의돼있지만 임기가 끝나면 모두 폐기된다. 그전에 법안들을 통과시켜 양육비 제도가 보다 촘촘히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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