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괴롭힘학회 공동회장인 박선영 박사가 <판례  속 괴롭힘>을 연재한다. 크고 작은 관계망 속에서 존재하는 우리들에게 괴롭힘은 ‘오늘’의 문제가 되었다. 판례는 법원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 해석으로 장래 재판의 지침이 되는 기준이지만, 사건을 온전히 드러내는 기록이기도 하다. <판례 속 괴롭힘> 은 구체적 사건에 보다 주목해 괴롭힘의 모습과 발생  맥락, 피해자의 고통에 ‘실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기획됐다. 

 젊고 유능한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건 상사의 직장 괴롭힘이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9월 4일부터 11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 결과에 의하면 괴롭힘 피해 직장인은 359명이고 이중 10.9%에 해당하는 39명이 자살까지 고민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시스·여성신문
 젊고 유능한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건 상사의 직장 괴롭힘이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9월 4일부터 11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 결과에 의하면 괴롭힘 피해 직장인은 359명이고 이중 10.9%에 해당하는 39명이 자살까지 고민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시스·여성신문

그(A)는 어머니에게 “사우나에 가서 자고 오겠다”고 하며 집을 나갔다. 다음 날 그는 건물 20층 옥상으로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후 투신하여 사망했다. 다니던 직장에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지난날이었다.

A의 유족은 A가 다니던 회사와 ‘단체안심 상해보험 계약’을 맺은 보험사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회사와 보험사가 맺은 계약엔 1급 대리 이하 남자가 상해의 직접적인 결과로써 사망한 경우 상해사망 보험금 70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다만 약관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때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었다.

극도의 불안상태에서 극단 선택

A의 유족은 “극도의 심리적인 불안상태에서 투신했으므로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서 이 사건 보험계약이 정한 면책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는 망인의 상속인인 원고들에게 상해사망보험금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반면, 보험회사는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의 고의에 의한 것으로서 이 사건 보험계약이 보상하는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고, 망인이 심신상실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도 아니었으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이 정한 면책사유에도 해당하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A는 신입사원 교육과정에서부터 뛰어난 능력을 보여 지사 파견 과정 없이 본사 CRM팀에 배치됐다. A는 직속 선임의 육아휴직으로 인해 대리급 이상이 수행가능한 콜센터관 리업무, 경쟁사 모니터링 업무 등을 직접 수행하면서 신입사원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업무량과 난이도로 심적인 부담을 느꼈다.

A는 상사인 CRM팀장으로부터 지속적인 업무압박, 차별적이고 부당한 대우, 업무미숙을 부모님과 연결 짓는 등 많은 언어적 폭력 등으로 인해 심리적,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입사 초기 밝고 적극적이었던 A는 팀장의 잦은 질책을 받으면서 자존감이 떨어져 심리적 불안 상태로 사무실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는 불면증으로 하루에 1~2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우울증 평가에서도 극도의 불면증 및 중증도 우울증을 보였다. A는 불면증과 중증도 우울증으로 퇴사를 결심했지만 회사가 3개월 정도 병가 휴직을 하고 다음 해 3월 경 인사 발령 시 다른 부서로 발령내주는 방안을 제안하여 퇴사대신 휴직을 결정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A는 3개월이 아닌 1개월 휴직으로 결정되어 팀장과 다시 마주치게 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표시했다.

A의 불면증과 우울증은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았다. A는 1차 휴직기간 종료일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모친과 휴직 연장, 회사 복귀 문제에 관하여 대화하던 중 회사에 대한 급격한 반발심을 표시했고 “사우나에 가서 자고 오겠다”고 하며 집을 나간 다음 날, 건물 20층 옥상으로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후 유서와 우울증약 등이 담긴 가방을 두고 투신하여 사망했다.

법원은 A가 사망의 결과를 예측하거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투신하여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아 유족에게 상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망인이 우발적으로 집을 나간 정황상, 망인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잠시 배회하다가 투신한 것만으로 사망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정신상태에서 자살방법을 결정하고 자살 장소를 물색하여 실행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서는 우울장애의 주요 증상인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 자살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발현된 것으로 보일 뿐, 망인이 유서를 작성하며 자살의 의미와 그 영속적인 영향을 숙고하여 진지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 사건 사고를 계획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젊고 건강하고 유능하였던 망인이 취업 후 과중한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 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불과 수개월 만에 중증도의 우울증과 극심한 불면증이 발병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투신으로 자신을 해쳐 사망’한 것으로 보험계약에서 정한 일반상해사망에 해당하고, 동시에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금 지급 면책의 예외사유에 해당하므로, 피고는 망인의 법정상속인인 원고들에게 망인의 사망으로 인한 상해사망보험금 70,000,000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5. 16. 선고 2022가단5219963 판결).

죽음으로 내몬 직장 괴롭힘

A의 입사일은 2018년 8월 13일이고, 자살한 날은 2019년 11월 24일이었다.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젊고 유능한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건 상사의 직장 괴롭힘이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9월 4일부터 11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 결과에 의하면 괴롭힘 피해 직장인은 359명이고 이중 10.9%에 해당하는 39명이 자살까지 고민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 괴롭힘 피해자 10명 중 1명은 죽음을 통해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A의 상사는 정당한 업무지시와 지적이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 상사의 ‘말’은 ‘흉기’가 되어 그것도 아주 빠르게 그를 무너뜨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흉기는 ‘말’이다. 그는 살기 위해 하는 ‘일’, 그 ‘일’을 하다가 죽었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는 ‘칼’이 되지 않는지, 우리는 그 ‘말’을 돌아보는 고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의무가 아닌가 한다. 

박선영 한국괴롭힘학회 공동회장‧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월간노동법률 제공
박선영 한국괴롭힘학회 공동회장‧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월간노동법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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