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년차 애니메이터 사상검증 피해자 A씨
‘논란 그림’ 그리지 않았음에도 비난 지속
얼굴·이름·SNS 노출… 일상생활 불가능
“동료 작품까지 내려간 것 가장 괴로워”
잘못 깨닫고 더 이상의 악의적 비난 멈춰야

손가락 모양으로 ‘남혐 캐릭터’ 논란이 불거진 메이플스토리 엔젤릭 버스터 리마스터 영상 일부.
손가락 모양으로 ‘남혐 캐릭터’ 논란이 불거진 메이플스토리 엔젤릭 버스터 리마스터 영상 일부.

넥슨 코리아의 하청업체 소속 애니메이터가 남성을 비하할 목적으로 ‘메이플스토리’ 여성 캐릭터의 손가락 모양을 부자연스럽게 그렸다는 남초 커뮤니티의 주장으로 피해자의 일상이 처참히 망가졌다. 피해자와 하청업체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해당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신상공개 등 온·오프라인을 통한 테러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만난 5년차 애니메이터 A씨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그림들을 그린 사람은 내가 아니다”라며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일부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디시인사이드 등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 속 여성 캐릭터의 손가락 모양을 지적하며 ‘페미니스트인 애니메이터가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당 영상을 제작한 애니메이션 업체 ‘스튜리오 뿌리’ 소속 애니메이터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져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린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A씨의 이름, 사진, SNS, 카카오톡 등을 공개하며 ‘한강에 빠져 죽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집단린치를 가했다. 이어 ‘스튜디오 뿌리’에는 사과문과 함께 A씨를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스튜디오 뿌리’의 장선영 대표 지난달 26일 사과문을 통해 ‘원화 애니메이터인 A씨가 해당 동작 하나하나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의혹을 부정했으나, 논란이 계속되자 이튿날인 27일 2차 사과문을 내고 ‘A씨가 퇴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논란이 된 장면을 그린 애니메이터는 뿌리 측의 외주를 받은 40대 남성 작가가, 다른 장면 또한 남성 작가들이 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비난이 멈추지 않자 A씨는 명예훼손, 스토킹, 모욕죄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제보 받은 건수만 560건에 달한다.

A씨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차례 검수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도를 집어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회사 팀원들이 함께한 작업물이 하루아침에 말도 안 되는 음해로 내려간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 자신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의 날조와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를 멈췄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1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든 피켓에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혀있다. ⓒ여성신문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1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든 피켓에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혀있다. ⓒ여성신문

- A씨와 회사에 수많은 공격이 빗발쳤다.

“디시인사이드에 이름, 얼굴, 카카오톡, 네이버 블로그 등 신상이 유포되면서 각종 비난을 듣게 됐다. 블로그에 악플이 달렸고 카카오톡으로 ‘그러게 왜 그런 행동을 했냐’, ‘왜 대답이 없냐’는 식의 압박이 들어왔다. X(구 트위터)를 통해 ‘한강 드가자(한강에 빠져 죽어라)’는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회사에 외부인이나 같은 층을 사용하는 타사 직원이 찾아와 몰래 촬영하는 일도 발생했다. ‘신남성연대’는 ‘페미를 해고하지 않으면 텐트를 치고 시위하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특정 커뮤니티에서는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워크숍 사진에서 나를 찾으려고 했는데, 특정 직원의 사진을 올리며 ‘A는 30대 기혼 여성’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모두에게 피해를 줬다.”

- 퇴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와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퇴사가 아닌 정직 상태로, 현재 사무실에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집게손가락’ 논란이 시작된 당시 나도 회사 측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많이 당황했다. 장선영 대표는 원청회사인 넥슨에 대책을 문의했고, 나는 대표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넥슨의 압박으로 장 대표는 내게 조심스럽게 퇴사를 권유했다. 회사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고. 회사가 더 이상 공격받길 원치 않아 알겠다고 답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달 27일 내가 퇴사를 했다는 회사 측 2차 사과문이 올라갔다.
해당 사과문은 게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됐다. 삭제 후 장 대표가 “아무래도 (퇴사는) 아닌 것 같다. 사과문은 내렸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루 이틀 더 기다려 보는 걸로 하겠다”고 연락을 줬다. 감사하고 마음이 놓였었다.
다음날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PM유저협회, 경기청년유니온, IT노조 등을 만나 대책을 의논했다. “현재 상황에서 퇴사하면 모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와 대표에게 해당 내용을 전했다. 이후 활동가, 대표, 총감독이 모두 모여 회의했고, 그 결과 직원을 보호하고 넥슨의 갑질을 규탄하는 방향으로 결론짓게 됐다.”

- 논란이 되고 있는 장면을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는 논란이 된 애니메이션의 다른 부분, 아주 일부 장면만을 그렸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주로 떠도는 그림은 수십년 경력의 다른 감독이 그린 것이다. 논란이 되는 다른 장면들도 내가 아닌 다른 분들이 그렸다. 확인도 되지 않는 내용들을 가지고 온갖 공격이 이뤄지고 넥슨은 이를 수용한 것이다. 현재 논란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그린 그림이 어떤 구간에 있는지도 모를 거다.”

- 총감독과 검수자가 있기 때문에 몰래 그림을 넣기가 불가능하다고.

“애니메이션은 많은 인원이 협업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간 검수가 굉장히 많다. 계획서에 해당하는 콘티가 완성되면 감독과 원청의 확인 후 감독 지시 하에 애니메이터가 그림을 그린다. 그림이 완성되면 총감독이 보고 다시 원청에 확인을 맡는다. 동작끼리 이어지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 색을 덧칠하는 과정을 모두 검수하고 최종 결과물도 다시 검수한다. 그 검수를 다 피해서 개인적 의도를 집어넣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A씨가 의도적으로 애니메이션에 '집게손가락'을 삽입했다며 근거로 내세운 게시물 ⓒA씨 제공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A씨가 의도적으로 애니메이션에 '집게손가락'을 삽입했다며 근거로 내세운 게시물 ⓒA씨 제공

- “페미니즘을 그만 둔 적 없다. 은근슬쩍 페미 계속 하겠다”는 글을 두고 손가락 그림 삽입을 스스로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년 3월 11일 ‘페미니스트들은 돈을 받고 움직인다. 돈줄 막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의 에브리타임 게시물을 비판하는 글을 공유하며 적은 문구다. 이는 그림에 손가락 집어넣겠단 뜻이 전혀 아니다.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가 아니라 성평등을 지지하는 운동이기에 누군가 핍박하더라도 모금에 동참하거나 시위에 나가는 등 타인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방식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논란이 된 메이플스토리 영상 작업은 10월 말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게시물과 영상 작업 간 1년 반의 시간 차가 있다. 그 사이에 만든 작업물도 모두 문제라고 지적한다면 조금이라도 이해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 사건으로 큰 심적 고통을 입었을 것 같다.

“노동자 사상검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업계까지 침범해 굉장히 낙담한 상태다. 깨어있는 것 자체가 괴로워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잠을 자고. 기운을 차려 일어나려고 해도 나를 공격하는 글을 보면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밥이 넘어가지 않아 죽만 겨우 먹고 있다.
또한 나만 공격당하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회사 팀원들이 함께한 작업물이 하루아침에 말도 안 되는 음해로 내려간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해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자발적으로 야근, 주말 출근을 해온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내가 입사하기 전에 만들어진 영상의 집게손가락까지 지적당해 동료들의 작업물이 무차별적으로 내려가게 된 점이 가장 괴롭다.”

-A씨를 지지해준 이들도 있었나.

“대학 동기,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 직장 동료. 또래 애니메이터 동료들이 지지와 응원을 해줬다. 내가 겪은 사건이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기에, 굉장히 힘들지만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상검증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해 용기를 냈다.”

- 논란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음에도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확한 사실이 알려져도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사과하지 않아 안타깝다. 직접 인터뷰한 기사마저 거짓말이라고 할 건 지 궁금하다. 자신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의 날조와 악의적 허위사실을 멈췄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