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인정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기 거부

[워싱턴=AP/뉴시스]1981년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뒷줄 오른쪽 끝)이 1일(현지시각) 아리조나주 피닉스에서 93세로 별세했다
[워싱턴=AP/뉴시스]1981년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뒷줄 오른쪽 끝)이 1일(현지시각) 아리조나주 피닉스에서 93세로 별세했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자택에서 별세 했다. 향년 93세.

미 대법원은 1일(현지시각) 성명에서 중도보수의 확고한 대변자이자 첫 여성대법관이었던 오커너가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오커너 전 대볍관의 시인은 치매 합병증이다. 오코너 전 대법관은 2018년 자신이 치매 진단을 받았음을 밝혔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성명에서 "미국 남서부 출신의 산드라 데이 오코너가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서 역사적인 길을 개척했다. 그는 굴하지 않는 결단력과 반론의 여지가 없는 능력, 매력적인 솔직함으로 도전에 맞섰다"고 말했다.

오코너 전 대법관은 1952년 최고 성적으로 스탠포드 법대를 졸업했음에도 주요 로펌에서 서기로 밖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으며 실제 임명될 때까지 여성 대법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1980년 선거 유세에서 여성 대법관 임명을 공약하고 당선 뒤 오코너 전 대법관을 지명했다. 1981년 상원은 오커너를 인준해 대법원에서 191년 동안의 남성 독점 시대는 끝났다.

뉴욕타임스(NYT)는 오코너 전 대법관이 재임 당시 대법원장은 아니었으나 대법원이 오코너의 대법원으로 불릴 만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여성으로 꼽혔다고 평가했다.

NYT는 소수인종 우대, 낙태, 소수 인종 투표권 확대, 종교, 연방주의, 성차별 등 논란이 큰 쟁점에 대한 판결이 오코너 전 대법관 판단에 의해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워싱턴=AP/뉴시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12월 첫 여성 대법관 출신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게 자유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12월 첫 여성 대법관 출신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게 자유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오코너는 1989년 여성들의 낙태를 인정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으려 한 다른 네 명의 대법관들과의 합류를 거부했다. 

오코너는 1992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핵심적인 내용을 재확인하는 5명의 다수에 합류했다. 오커너는 법정에서 "개인으로서 우리들 중 일부는 낙태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 원칙에 모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결정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의 의무는 모두의 자유를 규정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도덕률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코너 전 대법관은 대법관 지명 당시 애리조나주 항소 법원 판사였던 그는 오래도록 공화당원이었으나 민주당 인사들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지명 당시 51세였던 그는 2006년 질병에 걸린 남편을 돌보기 위해 대법관직을 사퇴했다. 재임 당시 대법원이 우경화하는 속에서 중도 보수주의 입장이던 오코너 대법관이 상대적으로 진보인사로 평가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오코너에게 미국의 안보와 세계 평화, 공공의 문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오바마는 오코너가 "모든 젊은 여성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그녀 뒤에 다리를 건설했다"고 말했다.

대법관 사퇴 이후 대법원의 우경화가 가속화되면서 오코너 전 대법관은 공개적으로 자신이 지지해 내려진 여러 판례가 “해체”됐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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