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등 시민단체 긴급기자회견
‘남성혐오 손가락’ 억지 논란에 사과한 게임업계 규탄
여성 73% 게임하는데 “게임 주소비층 남성” 인식 여전
“여성 배제한 게임사 ‘엔딩’ 지켜보는 것이 우리의 게임”
“여성·페미 창작자 겁박하는 반페미니즘 사고에서 비롯”
“여성 성상품화 콘텐츠 지속 생산, 게임사 존폐 가를 것”
“산업이 유도·확산하는 것, 단순한 악성민원 문제 아냐”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든 피켓에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혀있다. ⓒ이수진 기자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든 피켓에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혀있다. ⓒ이수진 기자

게임업계가 일부 남성 유저들이 제기한 ‘남혐 손가락’ 억지 논란에 줄줄이 사과하고 협력업체 직원을 업무에서 배제하면서 또다시 ‘페미니즘 사상검증’ 논란을 일으켰다. 문화예술단체와 여성단체는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게임문화 망쳐놓는 차별혐오 퇴출하라” “혐오선동 방조 노동권 침해 넥슨은 사과하라”고 외쳤다.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는 11월 28일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요구했다.

지난 11월 26일 새벽 넥슨코리아는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에서 여성 캐릭터가 0.1초 동안 취한 손동작이 소위 ‘남성혐오’를 뜻하는 ‘집게 손 모양’이라는 일부 남성 유저들의 민원에 “홍보물 제작 과정에서 세심하게 검토하지 못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넥슨뿐만이 아니다. 홍보영상을 제작한 외주업체와 협업한 게임 던전앤파이터, 블루아카이브, 에픽세븐, 아우터플레인, 이터널 리턴도 줄줄이 사과문을 올렸고, 그날 오후 외주업체는 제작담당 직원 작업을 중단하겠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는 2016년부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어온 바 있는 게임업계 및 게임문화 안에서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여성혐오몰이가 아직까지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며, 심지어 넥슨코리아처럼 가장 영향력이 큰 게임회사가 이러한 행태를 무책임하게 용인하고 조장하고 있는 문제적 상황임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게임문화 속 ‘반사회적 페미니스트 세력의 존재’에 대한 집단적 착각을 용인하면서 마치 또 다른 게임처럼 조장되고 있는 ‘페미니스트 마녀사냥’ ‘여성 배제’ ‘여성혐오’에 반대하며, 이 같은 사태를 키운 넥슨코리아의 무책임하고 무지성적인 방침을 엄중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열린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수진 기자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열린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수진 기자

이번 기자회견 연명에 참여한 여성 게이머 A씨는 “어제 넥슨 닷컴의 탈퇴 버튼을 눌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김자연 성우를 억지로 교체했을 때 이미 탈퇴해버렸기 때문”라며 여성을 고객층으로 여기지 않는 게임사의 뒤쳐진 인식을 지적했다. 그는 “돈 써줄 고객층이 누구일까요. 가면 쓰고 사무실 찾아가고 디시(인사이드), 루리웹에서 마녀사냥하는 시간 많은 남성 유저일까요, 캐릭터와 세계관에 애착을 갖는 여성 게이머일까요”라고 질문했다.

국내 게임사들의 ‘페미 색출’ 흐름은 다양한 게임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있는 해외 게임사들의 행보와도 비교된다. A씨는 해외 게임사들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유가 “인셀 남성게이머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라며 “2022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남성의 75%가 게임유저, 여성의 73%가 게임유저라고 한다. 2%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냐”고 되물었다.

이어 “여자도 좋은 스토리와 멋진 그래픽, 타격감을 분간할 줄 안다”며 “‘사상검조 원조맛집’ 넥슨코리아, 계산기 잘 두드려야 할 거다. 과대 대표된 일부 남성 유저의 피해망상에 동조하는 이유는 넥슨코리아 내부에도 열등감이 퍼져있기 때문이라는 걸 여성 게이머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어떤 게이머도 자신의 노력과 애정과 존재를 부정하는 게임을 사랑하지는 못한다”며 “여성 게이머 버리고 ‘손가락 모양 걸러내기 게임’하는 개발사가 과연 언제까지 승승장구할지 그 엔딩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우리의 게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지회 정화인 사무장은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과 싸운지 어느덧 7년이 넘는 시간이 됐다. 투쟁에 나설 때마다 부디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싸워왔는데 또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됐다”며 “아무 의미 없는 동작을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동작이라고 의미 부여하는 모습이 마치 삼각형만 보면 일루미나티의 상징이라면서 연관짓는 음모론과 같은 모습이다”라고 한탄했다.

정 사무국장은 “한국 게임을 대표한다는 대기업의 이런 태도에 중소기업까지 따라나서며 정신 나간 음모론에 탑승하니 전 세계가 비웃을 일이다”며 “이런 행태의 속내는 여성과 페미니스트 창작자들을 압박하고 겁박하는 반페미니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상검증은 매년 일어나지만 정부도 기업도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힘없는 동료들이 SNS에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지, 작업물의 작은 손동작이 혹시나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생산성 없는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비참하고 참혹하다”며 “그저 괴롭힘에 지나지 않는 악성 유저들의 억지 논란과 그것을 옳다며 들어준 넥슨 포함 게임업계는 당장 반페미니즘적 행태를 멈추고 반성하며 속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 ‘개인사상검열 부당해고 규탄한다, 노동법 사망을 애도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이수진 기자
1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 ‘개인사상검열 부당해고 규탄한다, 노동법 사망을 애도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이수진 기자

정부가 이같은 여성혐오와 차별에는 대응하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됐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이두찬 활동가는 “이런 비참한 상황에도 정부는 매일 K-컬처를 외치고 있다. K-컬처의 민낯이 넥슨의 혐오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게임의 주 소비층을 남성으로 설정하고 여성 캐릭터를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업계 관행을 비판하면서 “변화한 시장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제작사는 필연적으로 도태할 것이며, 성상품화 콘텐츠의 계속된 생산은 게임사의 존폐를 가를지도 모를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게임사들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의 궁극적인 책임은 결국 게임업계에 있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대독)는 “넥슨과 같은 대기업이 어떤 공적 논의 과정도 없이 빠르게 대응해 페미 몰이에 부응하는 것을 보면, 사실상 이 문제는 산업이 유도하고 확산하는 것이지 단순한 악성민원 문제라고 설명하기 어렵다”며 “게임업계에 요구되는 사회적 가치와 공적 책무에 대한 고려와 숙고 없이 억지 민원에 바로 응답하면서 민원인 즉, 남성 게임 커뮤니티 이용자의 효능감을 충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게임업계가 그토록 두렵다고 말하는 페미의 상은 사실상 업계가 억지 민원에 응답하여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이번 기자회견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커뮤니티에는 ‘칼부림 예고’ 글이 올라와 현장에 경찰이 다수 배치되기도 했다.

제이 민우회 활동가는 “페미니스트의 목소리 위축시키는 이들의 수준이 어떤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저희 활동은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만5000명 넘는 분들의 연명이 반나절 만에 모였다. 넥슨의 행보에 실망과 분노가 크다는 것”이라며 “시대에 뒤쳐진 성차별 기업이라는 오명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귀담아듣고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이 종료되자 몇몇 남성 게임 유튜버들이 회견 참가자들에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며 잠시 마찰을 빚기도 했으나 상황은 곧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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