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향연 속 행복한 삶의 정경 그려
개인전 ‘재현과 현전의 경계에서’ 개막
12월12일까지 인사동 선화랑

전명자 화백 개인전 ‘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개막했다. 지난 20일 전시장에 걸린 신작 ‘오로라를 넘어서’ 앞에 선 전명자 화백. ⓒ송은지 사진작가
전명자 화백 개인전 ‘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개막했다. 지난 20일 전시장에 걸린 신작 ‘오로라를 넘어서’ 앞에 선 전명자 화백. ⓒ송은지 사진작가

전명자(81) 화백은 ‘오로라 화가’다. 밤하늘 빛의 마술에 반해 화폭에 담은 지 30여 년. 지구 최북단에 그간 스무 번이나 다녀왔다. “그 찬 겨울바람 소리가 나를 위해 울리는 음악 같았지요.”

다채로운 오로라의 빛깔 중에서도 파란색을 즐겨 쓴다. 파도처럼 은하수처럼 춤추는 푸른 빛이다.

지금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 ‘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에서 그의 대표작과 신작, 1960~90년대 초기작까지 50점을 감상할 수 있다. ‘오로라를 넘어서’ 연작 외에도 토스카나의 태양 빛을 머금은 ‘금빛 해바라기’ 연작, 소소하고 평화로운 풍경 그림까지 과거와 현재 작품을 비교해 보며 화가의 여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전명자, 오로라를 넘어서, 2023, 130x162cm, Oil on canvas. ⓒ선화랑 제공
전명자, 오로라를 넘어서, 2023, 130x162cm, Oil on canvas. ⓒ선화랑 제공
전명자, 오로라를 넘어서, 2023, 162x130cm, Oil on canvas. ⓒ선화랑 제공
전명자, 오로라를 넘어서, 2023, 162x130cm, Oil on canvas. ⓒ선화랑 제공
전명자, 금빛 해바라기, 2023, 162x130cm, Oil on canvas. ⓒ선화랑 제공
전명자, 금빛 해바라기, 2023, 162x130cm, Oil on canvas. ⓒ선화랑 제공
전명자, 자연의 조화, 2023, 84.7x59.7cm, Oil on canvas. ⓒ선화랑 제공
전명자, 자연의 조화, 2023, 84.7x59.7cm, Oil on canvas. ⓒ선화랑 제공

바깥은 스산한 초겨울이어도 전 화백의 그림 속 세상은 밝고 화사하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정경을 화폭에 펼쳐 놓았다. 가족, 연인, 오케스트라, 피아노와 하프를 연주하는 여인, 회전목마, 꽃과 나무까지 사랑스러운 것들뿐이다. 김복영 미술평론가는 전 화백의 작품들이 “인간의 온갖 비극을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유토피아로 전환”해, “자연이 베푸는 순수함과 풍요를 우리가 삶 속에서 어떻게 향유할지를 다”룬다고 평했다.

신작들에선 더 간결하고 담대해진 붓터치가 눈에 띈다. 물감을 섞지 않고 원액 그대로 칠하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자연의 조화’(2020)는 꽃밭을 화폭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하다. 색색의 빛깔을 살려서 자연 본연의 생동감을 보여주고자 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색이 얼마나 많아요? 색을 혼합하기보다 물감 고유의 색을 그대로 쓰는 걸 좋아해요. 르누아르도 그랬다지요.”

전 화백은 팔순이 넘은 요즘도 캔버스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3년 전부터 압구정동 자택을 아틀리에로 삼았다. 국내외를 오가며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주로 그린다. 오로라, 프랑스 파리의 거리, 정원, 미술관, 해바라기 등이 단골 소재다. 인터뷰 중에도 기자를 스케치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다며 웃었다.

전시가 다가오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작품 활동에 몰두한다. 동틀 무렵까지 그림만 그릴 때도 있다. 매년 연말연시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전(SNBA, Comparaisons Art Capital)에 참여하며 다양한 작가들과 교류하고 있다. 내년 2월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릴 비교전에 100호짜리 오로라 신작, 60호짜리 수채화 1점 등을 출품할 계획이다.

전명자 화백 개인전 ‘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개막했다. 지난 20일 선화랑에서 전명자 화백을 만났다. ⓒ송은지 사진작가
전명자 화백 개인전 ‘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개막했다. 지난 20일 선화랑에서 전명자 화백을 만났다. ⓒ송은지 사진작가

파리는 전명자 화백의 예술 여정에서 중요한 키워드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1976년~1980년까지 파리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서울여대 교수가 돼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 50대에 다시 파리로 떠났다. 1995년 파리 아메리칸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그해 제31회 칸국제대상전 대상을 받고 파리 아메리칸 아카데미 교수로 초빙됐다. 프랑스 국립미술원 작가로도 선정됐다. 2005년 프랑스 국립미술협회전(SNBA)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상을, 2007년 영예대상을 받았다.

“화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가 그의 신조다. “화가가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보다 작품이 말하게 해야 해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그림,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하지요.”

본래 전 화백은 집 안팎의 풍경, 실내 정물, 아이들의 모습 등 전형적인 구상회화를 주로 그렸다. 서울여대에서 교편을 잡으며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다가 “성이 차질 않아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가족을 두고 1995년 혼자 파리로 떠났다. 노르웨이 여행 중 맞닥뜨린 오로라를 기점으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유토피아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의 조화’, ‘오로라를 넘어서’ 등 연작을 발표하며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화풍을 확립했다. 지금도 샤갈, 마티스, 피카소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담은 영상과 책을 즐겨 보며 영감을 얻는다.

경기 의왕시 성 라자로 마을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펼치며 나눔과 희생의 정신을 실천하고, 젊은 학생들과 환자들을 위한 문화행사를 꾸준히 펼쳐오기도 했다. 그 공로로 2013년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선정 제45대 신사임당상을 받았다. 

전명자 화백 개인전 ‘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개막했다. 지난 20일 선화랑에서 전명자 화백을 만났다. ⓒ송은지 사진작가
전명자 화백 개인전 ‘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개막했다. 지난 20일 선화랑에서 전명자 화백을 만났다. ⓒ송은지 사진작가

전 화백은 “여자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길을 놓지 말라.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매 순간 배움을 찾아야 성공한다”고 조언했다.

“여자라서,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몇 배로 더 노력해야 했어요. 외국 문물을 빨리 접한 편이었고 외국어 공부도 아주 열심히 했지요. 남자 교수들이 ‘여자가 무슨 그림이냐, 시집이나 가면 된다’고 하던 시기에 교직에 올랐어요. 국내에서 창작 후원이나 예술인 지원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대학 강의로 생계를 이으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화랑의 초대를 받기 시작했고, 60대부터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더군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방향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솔직히 긴장돼요. 50번 넘게 전시를 열었지만 늘 떨려요. 다음 개인전 때는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초보 컬렉터를 위한 조언도 전했다. “유행에 목맬 필요 없어요. 내가 좋으면 명화예요. 일단 좋은 화랑에 가서 그림을 많이 보세요.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했다면 꾸준히 지켜보세요. 싼 그림부터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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