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변회, ‘여성·아동 인권보고대회’
“스토킹 잠정조치, 행정작용으로
신속하게 신청할 수 있게 해야”
“결혼이민자 아닌 이주여성·아동
사각지대 포섭 위한 법개정 필요”

21일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제1회 여성·아동 인권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여성과 아동 인권 관련 이슈와 현행 법제도의 개정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수진 기자
21일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제1회 여성·아동 인권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여성과 아동 인권 관련 이슈와 현행 법제도의 개정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수진 기자

법조계 전문가들이 모여 최근 발생한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등 여성·아동 관련 중요사건과 판결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김학자)는 21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이같은 내용의 ‘제1회 여성·아동 인권보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최근의 여성·아동 관련 이슈를 점검하고,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여성변회 창립 이래 관련 토론회 등은 꾸준히 개최돼 왔지만 여성·아동 인권문제를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보고대회로는 처음이다.

더 악랄해지는 디지털 성범죄, 발빠르게 법제 개선해야

이른바 ‘N번방’ 성착취 사건 이후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관련법이 제·개정됐지만, 처벌이나 영상물 삭제 등은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경하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최근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서 신상(개인정보)와 동반 유포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개인정보를 결합한 성착취를 가중 처벌하는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사 단계에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현행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에 따르면,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경찰은 법정 대리인에 수사 진행 상황을 통지할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은 가족에 피해사실이 알려지면 비난받을 것을 우려해 신고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이 변호사는 이같은 상황이 “오히려 피해 아동청소년의 고소권을 사실상 제약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며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제13조 제3항에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수사 진행상황을 통지할 수 없다”는 골자의 조항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백미연 경기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 센터장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피해자 신고율이 10% 미만이다. 보호자의 실망과 질책 등으로 신고를 주저하는 사례를 접할 때마다 너무나 안타깝다”며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2차 가해 방지 교육’도 필요해 보인다. 아동청소년의 의사를 존중하는 법 개정과 동시에 지지자 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임의적’인 불법촬영물 등에 대한 몰수 제도를 ‘필요적’으로 개정하고, 삭제 대상 정보에 성착취물로 연결되는 온라인 링크 등도 포함될 수 있도록 청소년성보호법에 관련 조항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또, 재판에서 증거영상물을 공개적으로 재생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야기되므로 ‘판사, 검사, 변호인별 개별 모니터를 통해 재생하는 방법’ 관련 조항을 신설할 것을 주장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고인 전주환이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전주환이 지난해 9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고인 전주환이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전주환이 지난해 9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스토킹 피해자들 죽어가는데 여전히 소극적인 ‘잠정조치’

스토킹이나 교제폭력 피해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근 몇년간 여러차례 발생했지만 피해자 보호조치는 여전히 미흡한 현실도 지적됐다.

민고은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경찰 수사가 종료되면 경찰이 관련 법률에 근거해 해당 사건의 진행상황을 확인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보호조치를 담당하는 경찰관과 검사의 업무 협조에 관한 규정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험도가 높은 스토킹 가해자에 대해 접근금지, 전자장치 부착, 최대 1개월 구치소 유치 등 ‘잠정조치’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민 변호사는 스토킹 혐의로 입건된 가해자가 하루 만에 피해자를 살해하는 등 유사 사건이 반복해 발생하는 것을 두고 “신속성은 피해자 보호조치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잠정조치를 처벌이 아니라 행정작용으로 보고 신속하게 신청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스토킹처벌법 관련 대법원 규칙에 피해자 변호사의 의견진술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보장하고, 현행 성폭력처벌법상 규정하고 있는 ‘성폭력 전담재판부’ 제도 등을 스토킹범죄에도 확대할 것을 제언했다.

한편, 형법 전문가는 피해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중형주의’로 흐르는 세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윤지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형사정책연구본부 본부장은 최근 ‘부산 돌려차기’ 사건 등을 계기로 특정중대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제도 논의가 신속하게 진행됐다며 “(신상)공개 시 사실상 연좌제처럼 (피의자나 피고인) 주변 가족 등 또 다른 피해자 낳을 수 있다. 헌법학회에선 위헌소지가 있다며 강력하게 문제제기 중”이라며 “어느 정도 재범을 방지할 수 있는지 법무부 등에 실증자료를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피의자 신상공개로 달성되는 건 국민의 공분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치하는엄마들 외 10개 단체가 '익명 출산, 비밀입양은 아동인권유린이다 김미애 의원 대표발의 보호출산특별법 즉각 철회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치하는엄마들 외 10개 단체가 '익명 출산, 비밀입양은 아동인권유린이다 김미애 의원 대표발의 보호출산특별법 즉각 철회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우려 속 보호출산제, 사각지대 놓인 여성·아동 대책 필요

내년 7월 시행을 앞둔 보호출산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성·아동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우려와 개선 방안도 논의됐다.

신수경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아동청소년지원특별위원회 부위원장)는 보호출산제 도입 자체를 두고 “미혼모는 아이를 유기하고 싶어 할 거라는 왜곡된 시선으로 임신출산 상황을 본 것은 아닌가”라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중단권 관련 여성권리에 목소리 내야 할 시기”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아동의 부모 알권리 침해, 장애아동 유기 우려 외에도 이주여성과 그 자녀의 인권이 침해되는 문제, 입양특례법과의 충돌 문제와 친생부 등의 권리 침해 문제 등이 제기됐다.

신 변호사는 “보호출산제 적용 대상은 모자보건법을 준용하는데, 이에 따르면 결혼이민자가 아닌 이주여성은 사각지대에 있다”며 “이 부분 포섭을 어떻게 할 것인지 추후 논의가 필요하다. 이주아동은 전수조사에서 빠져서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들 아동의 국적취득이나 국적법 관련 논의도 외면할 수 없어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 팀장 역시 “보호출산제는 아동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결과에 따르면 출생미신고 아동 6179명 중 4025명이 보호자가 외국인이었다.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이주아동은 무국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또, 신 변호사는 “법률상 남편이나 생부의 정보 기재 여부를 전적으로 생모의 의사에 의하도록 하고 있어, 친부는 아동을 찾을 방법이 전무하다”며 이는 민법상 친생추정, 입양특례법상  생부의 정보를 최대한 확보하도록 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흐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률과 충돌되는 내용을 시행규칙 등으로 위임 입법해 해결하려는 것은 포괄위임입법금지 원칙 위반이다. 헌법, 법률 위반 사항은 신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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