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여성 노동운동』
정재원 지음, 푸른사상 펴냄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사측 편에 선 남성노동자들에 의해 똥물 투척을 당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모습. 동일방직복직투쟁위원회 제공ⓒ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주길자. 1970년대 민주노조의 신호탄을 쏜 여성 노동자다. 그가 속한 동일방직 주식회사는 당시 대표 섬유회사였다. 노동자의 80%가 여성이었지만 관리자뿐 아니라 노조간부도 남성이 장악했다. 1972년 5월 남성이 지배하던 어용노조(회사 이익대로 움직이는 노동조합)를 물리치고 주길자씨가 지부장으로 선출됐다. 1946년 결성된 동일방직 노조의 첫 여성 노조지부장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 노조위원장이다. 동일방직 노조를 시작으로 원풍모방, 콘트롤데이터, 반도상사, YH노조 등 노조에서 연이어 여성 간부가 탄생했다. ‘여공’들이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일궈낸 변화는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 그 자체였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던 민주노조 운동은 전 세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특별한 양상을 보인다. 당시 여성 노동자 평균 연령은 10~20대 초반이었다. 여성들은 유순해 투쟁력과 조직화를 약화시키고 노조 활동에 무관심하다는 통념이 지배적이었으나 실제로는 노동운동을 주도한 건 여성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자본의 극한적인 탄압에 불구하고 높은 의식과 투쟁력을 바탕으로 전개됐던 여성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는 왜곡돼왔으며, 관련 연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정재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펴낸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여성 노동운동』은 당시 민주노조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잊힌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를 복원해 정리했다. 

노동자 80~90% 여성인데
관리자·노조간부는 남성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여성 노동운동』 정재원 지음, 푸른사상 펴냄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여성 노동운동』 정재원 지음, 푸른사상 펴냄

당시 여성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조 운동 사례를 살펴보면 그 투쟁력과 지속성, 단결력은 치밀한 사전준비와 강한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노동운동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 노동자들은 어떤 과정으로 운동에 참여하게 됐고, 조직적인 민주노조 운동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저자는 1970년대 노동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구술생애사 방법을 택했다. 당시 노동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각 개인의 생애사에 초점을 맞추어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경험에서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조건을 찾고자 했다. 공장을 중심으로 한 생산 활동뿐만 아니라 주거 공간, 여가 형태를 포함한 생활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가부장적 구조 아래 가족들의 경제적 부양을 책임져야 했고 최소한의 교육 기회조차 차단당했던 여성들에게 이러한 공통의 경험이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중요한 조건이 됐다.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씩 일해 번 돈을 집에 부쳐 가난한 집안을 먹여 살렸다. 남동생 또는 오빠의 학비를 벌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공부를 계속할 처지가 못 되고 남동생 셋을 공부시켜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동생들 학비를 대야 했기 때문에 결혼할 생각도 안 했어요.” 

‘공순이’에서 어엿한 노동자로 

유신정권 말기 회사 폐업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다 강제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YH무역 김경숙 열사의 일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유신정권 말기 회사 폐업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다 강제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YH무역 김경숙 열사의 일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희생과 책임이 강제됐던 여성들의 차별적인 경험은 공장 생활에서의 비인격적인 관행에 맞서는 원동력이 됐다. 여공들은 아무리 근속 연수가 길고 기술이 뛰어나도 남성보다 높은 직위를 가질 수 없었다. 관리자는 남성 몫이었다. 성별 임금격차도 심각했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 비율은 100대 48에 달했다. 사측은 생산성을 높이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관리에 몰두했다. 협박과 폭력 아래 ‘내리누르기식’ 관리가 이어졌다. 시골에서 올라온 미혼의 여성 노동자들이 변화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남자 형제들의 교육을 위해 교육 기회를 뺏긴 여성들은 교육에 대한 열망이 겆고, 노동조합이나 소모임을 통한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낯선 도시 생활의 적응 과정은 동료들과의 연대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특히 기숙사는 단결력을 증진시키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차별과 분노는 산업 노동자로서 겪어야 했던 삶의 방식과 맞닿아 있었다”며 “여성 노동자들은 새로 만들어진 질서와 문화, 인간관계 속에서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경험했고, 이것은 다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힘으로 모아졌다”고 분석했다. 한 여성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신 같았다”고 했다. 부당한 공장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가, 노동조합을 통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조합이 신 같더라고요. 어용노조가 있을 때는 12시간씩 교대근무를 했어요. 쉬는 날도 없었고… 거의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민주노조가 만들어지고 확 바뀌니까 노조가 신이 아닐 수 없지. 상여금, 퇴직금도 주고, 8시간 노동에 잔업도 원하는 사람만 하게 되니까. 근로기준법 하나가 신이야. 그러니까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그 자체가 우리를 움직이게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아주 신나게 잠도 안 자고 했어요.”

노동조합을 통해 ‘공순이’가 무시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어엿한 노동자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희망도 키웠다.

“공장 노동자는 ‘공순이’라는 표현을 많이 했어요. 직업을 숨기고 그랬죠. 그 얘기를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게 78년, 29년도쯤 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공순이란 게 얼마나 자랑스럽냐? 우리가 만든 제품이 수출이 잘 돼서 수출상도 타고’ 뭐 이런 게 있잖아요.”

“노종조합을 하면서 신기하게 내 자신의 한 사람에 대한 자부심과 위대함이 보여지면서 내 존재가치를 느끼게 되는 거예요. 전태일에 대해 알게 되면서 다른 문제가 아니라 같은 문제이고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분노를 느꼈죠.”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조건이 단지 생산 영역 내의 조건, 즉 저임금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유신체제 하의 폭압적인 노동탄압과 차별대우에 맞서 평등한 세상을 꿈꿔왔던 그녀들의 연대와 투쟁의 정신을 이 책을 통해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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