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우리말 쓰기] 14

지난 10월 26일 JTBC가 공개한 전청조씨가 사기 행각을 벌이면서 나눈 일부 카카오톡의 대화 내용. 사진=JTBC 캡처
지난 10월 26일 JTBC가 공개한 전청조씨가 사기 행각을 벌이면서 나눈 일부 카카오톡의 대화 내용. 사진=JTBC 캡처

지난 1주일, 펜싱 전 국가대표 남현희(45)씨의 재혼 발표를 실은 월간지 인터뷰 기사가 알려진 이후 예비신랑인 전창조씨에 관한 뉴스가 무게감 있게 다뤄지며 세상이 떠들썩했다. 미담으로 시작한 스타플레이어의 결혼 소식은 전씨를 둘러싼 루머가 나오며 남씨의 스토킹 신고로 촉발됐고, 사건은 매 시간 전씨의 신상에 관한 상세한 내용과 함께 과거 전력, 그리고 투자유치 사기 등 매일 새로운 뉴스가 보태지며 일파만파 확대되는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15세 연하의 재혼 상대에 대한 성별 논란에다 51억원 통장잔고와 사업자금 대출 유도 경위, 경호인 대동과 미국 출생 재벌 3세 혼외자로의 위장, 최고급 외제 승용차와 명품 선물공세, 그리고 사기 혐의 고소·고발까지 더해져 황색 저널리즘을 자극할 만한 모든 요소를 다 갖추었다. 그러나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가 주목을 했던 것은 스캔들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릴만한 형사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인터넷 탐사대가 나서니 카톡 내용까지 시시콜콜 밝혀졌다. 

“Ok, 그럼 Next time에” “I am 신뢰예요” 등 이웃에 사는 사업가에게 접근하며 자신을 교포라 소개한 전씨가 영어와 한국어가 어색하게 섞인 대화로 한국말이 유창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이려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카카오톡 화면도 공개됐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창에는 “I am 신뢰예요”가 재치를 더해 쏟아지며 복제를 거듭했다. 이 말투는 인터넷 유행어인 이른바 ‘밈(meme)’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유통업계에선 “I am 특가에요” “Next time은 없어요”라는 판매홍보 문구로 발빠르게 나왔다. 증권사 리포트에도 응용됐다. 상상인증권이 “케이GAME, I am 신뢰예요”라는 제목의 게임산업 전망보고서를 냈고, 한국투자증권은 현대모비스 실적분석 리포트에 “I am 신뢰예요”라고 제목을 붙였다. 현대차증권, 유진투자증권, DB금융투자에서 낸 애널리스트 분석보고서에도 이 밈이 제목으로 활용됐다.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재미있고 친근감 있는 제목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짐작된다. 

하나의 스캔들이나 사기범죄 사건으로 분류될 수도 있는 이 사건이 알려지고 보도되며 심층보도로까지 확대되는 과정을 살펴 보느라면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정보전달과정에서 문화현상으로서의 유행어인 밈의 생성과정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뉴스가 공개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전파되고 다시 몸집을 키워 공중파 방송, 종합편성 방송의 뉴스로 전달되고 이후 1인 매체나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확대 재생되고 있는 모습이다. 오프라인, 온라인을 넘나들며 복제되고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 주말을 낀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고 실시간 공개도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복제되듯 재생산된 신조어와 유행어가 대중매체를 통해 세상에 나올 때가 바로 TV예능프로그램이라 하겠다. 토크 프로그램이 대세인 요즘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열심히 신조어를 사용하고 방송국은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시청자들을 배려해 열심히 자막을 붙인다. 그런데 유행어나 신조어에 민감한 MZ세대는 공중파 방송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질 무렵이면 이미 유행어의 수명이 끝물에 이르렀을 때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뇌피셜(뇌 +offical, 공식), 맘충(mom+ ~충), 어쩔티비(어쩌라고+ 가전) 등이 온라인에서 수명이 다 했을 무렵 예능방송을 통해 오프라인 유행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생성과 함께 실시간 오프라인으로 무대를 옮겨 온 “I am 신뢰예요”는 얼마 동안이나 유행을 이어갈까?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