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부동산학 박사)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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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권 거래에는 왜 직거래가 많을까. 한 언론사 보도를 보니 올 들어 서울 분양권을 분석한 결과 10건 중 4건가량이 직거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부동산 거래가 대부분 중개업소를 통한 거래하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많은 것이다.

직거래는 주로 친인척이나 가족 간 부동산을 사고팔 때 자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런 직거래를 생면부지의 타인과 거래를 할 때 활용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세금 부담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분양권 거래에는 세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당첨일로부터 60~70%의 양도세율을 적용받는다. 지방소득세 10%포인트까지 가산하면 실제 부담은 66~77%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분양권을 거래할 때는 다운계약서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엄연한 불법 계약이므로 중개업자는 빠지고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쌍방합의식 직거래가 이용된다.

하지만 다운계약서는 위험천만한 거래다. 나중에 세무조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운계약서는 말 그대로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춰 계약한 뒤 신고하는 변칙 계약 유형이다. 매도자는 양도소득세를, 매수자는 당장 취득세를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매수자는 나중에 자신이 되팔 때 양도세 부담이 더 늘어나 실익이 없을 수 있으므로 다운계약서는 주로 매도자의 요구로 작성된다. 더욱이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이 드러나면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혜택도 받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매도자는 다운계약서를 받는 대가로 매수자에게 매매 금액을 깎아주는 ‘당근’을 제시한다.

어쨌든 다운계약서는 매수자와 매도자가 신사적인 합의로 작성하는 가짜 계약서다. 다운계약서는 비록 타인이지만 약속을 잘 지킬 것이라는 굳은 믿음 아래 작성된다. 그런데 그 약속은 양도세 부정행위 제척 기간인 10년 동안이나 지켜져야 한다. 만약 그 이전에 매수자의 마음이 변해 사실을 실토하게 되면 약속은 물거품이 된다.

실제로 다운계약서를 썼던 매수자가 국세청의 세무조사 엄포에 약속을 뒤집은 사례가 부지기수다. 어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업적인 거래를 하는 상대방이 평생 친구처럼 끝까지 의리를 지킬 것이라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닐까?

다운계약서 효력이 주로 매수자의 ‘선의’가 유지되어야 성립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분양권 불법 전매는 그 반대다. 일반적으로 분양권 불법 전매에서 우월적 지위는 매수자가 아니라 매도자(원매자)다.

다운계약서에서 매수자는 매도자가 부담해야 할 취득세, 양도세를 떠안는 조건으로 계약한다. 계약에서 아쉬운 사람은 잃을 게 많은 사람, 즉 매수자다. 매수자는 매도자가 나중에 딴소리하지 않도록 분양권에 각종 공증을 한다.

하지만 입주 때 분양권 가치가 올라 추가로 웃돈이 더 붙으면 매도자의 마음은 변한다. 소유권 이전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넘겨주는 대가로 돈을 추가로 요구하는 것이다.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신사 협정’은 애초 계약 때와 시세 등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야 유지될 수 있다.

좀 더 아찔한 상황은 원매자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이 됐을 때다. 입주할 즈음 명의를 넘겨받기 위해 원매자를 찾아야 하는데, 행방불명된 사람을 어디 가서 찾을 것인가. 분양권 불법 전매는 얻는 수익에 비해 너무 위험한 ‘부동산판 카지노’다. 거기에 상호 이타주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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