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이미지의 사회학적 담론]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책을 읽고 있는 여인, 1894.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책을 읽고 있는 여인, 1894.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oi), 창문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인, 1900.  ⓒ노르웨이국립미술관 소장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oi), 창문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인, 1900. ⓒ노르웨이국립미술관 소장

18세기 계몽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책은 남성의 전유물이고 독점 영역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책을 접한다는 것은 남성 세계에 대한 도전이며 금기된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권력을 가진 남성들은 여성을 지배하려는 의도적 전략으로 여성들의 지적 능력 개발과 주체성 형성을 차단하기 위해 여성들이 책을 읽는 것은 위험하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책의 위험성은 여성이 지식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남성에게 부가될 수 있는 위험성인 동시에 남녀 위계질서를 유지하려는 사회에 위험 요소였지, 여성에게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모든 책이 여성에게 위험한 건 아니었다. 여성의 가정 역할을 사회 규범으로 기획하고 도구적·수동적인 여성 역할을 강화하는 책들은 여성들에게 더 많이 권장돼, 당시 남녀 독서목록의 차이는 너무나 이분법적으로 분류됐고 경계가 엄했다. 

18~19세기 책을 읽는 여성을 그린 그림 대부분은 위 그림들처럼 등을 보이고 돌아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칫 고독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자신의 세계를 확보하려는 자세이다. 이들에게 책은 위로이기도 하지만 자아 성찰적 도구였다. 세상 밖이 아닌 무한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망원경이 돼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하는 생각하는 인간, 사유하는 인간의 내적 여행의 기쁨을 주었다. 

시대가 변화되면서 글을 아는 여성들이 조금씩 남성들이 보는 서적을 접하고 다양한 독서 영역으로 진입하면서 책은 더 큰 의미로 여성들의 정신적 근원을 깨우는 매개 역할을 했다.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나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 안으로 불러들여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게 되었고,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자유를 꿈꿨다. 그러므로 여성에게 책은 수 세기 동안 잠자고 있었던 주체성을 깨우고 자기만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게 한 값진 도구였다.

로히어르 판 데르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책을 읽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1438년경.
로히어르 판 데르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책을 읽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1438년경.

위 그림 속 책을 읽는 여성은 성경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모두가 돌을 던지면서 비난한 육체적 욕구를 상징했던 여성에서 정신적 욕구를 추구하는 책을 읽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성경은 그녀의 진심 어린 회개를 그녀의 눈물과 향유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반면 이 그림의 화가는 회개의 이미지로 그녀의 손에 책을 들려주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손에 든 책은 자발적인 자기 변화의 적극적인 욕구를 의미한다. 더불어 책이 지닌 도덕성, 지혜, 지식, 자아에 대한 인식의 개념은 육체적 욕구에서 정신적 욕구를 추구하는 삶의 가치 변화로 새로운 삶의 탄생을 의미한다.

막달라 마리아의 독서삼매는 육체적 감각에 익숙해 있던 그녀의 정신적 성장과 내적 충실성에 대한 노력을 상징하고 있어 책의 의미와 가치가 그 어느 그림보다 더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들고 있는 책 한 권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익숙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 변화의 상징적 의미이다. 아마도 이러한 책의 기능 때문에 책을 읽는 여성들이 위험하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즉각적인 반응이 오는 육체적 즐거움과 다르게 책이 주는 정신적 기쁨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하다. 예컨대, 책의 내용을 반추하고, 내면화하고, 자기화하는 훈련이다. 특히 오늘날 정보의 홍수 시대에 정보를 자기화하지 않으면 봇물 터지듯 밀려 들어오는 정보를 마치 자신의 지식처럼 생각하여 타자화된 자아로 허무한 무장을 하게 돼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위험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오늘날은 책을 읽는 여성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독서의 자기화를 할 줄 모르는 책을 읽지 않는 여성이 더욱더 위험하다.

이은주 사회학자·작가 ⓒ이은주씨 제공
이은주 사회학자·작가 ⓒ이은주씨 제공

이은주 사회학자·작가가 ‘여이사담’(여성 이미지의 사회학적 담론)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성 사회학자의 눈으로 본 서양미술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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