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성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
파상 라무 셰르파 다큐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서 상영
딸 다와 푸티 셰르파도 참석
“여성 권익 증진 도모했던
어머니의 뜻 이어가겠다“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파상 라무 셰르파를 다룬 영화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감독 낸시 스벤센) 스틸컷.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파상 라무 셰르파를 다룬 영화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감독 낸시 스벤센) 스틸컷.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전 그냥 엄마고 주부지만 다른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서 산에 올라요. 히말라야는 우리 산이잖아요. 왜 (네팔 여자는) 못 오르나요?”

파상 라무 셰르파(Pasang Lhamu Sherpa, 1961~1993)는 네팔의 영웅이다.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성·인종 차별과 정치적 반대에 용감하고 영리하게 맞섰다. 그렇게 역사를 썼다.

1993년 그가 히말라야에서 잠들자 네팔은 슬픔에 잠겼다. 올해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 영화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감독 낸시 스벤센)은 파상의 성대한 장례 장면으로 시작한다. 네팔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애도하며 그의 시신에 꽃을 던졌다. 그의 관은 네팔 국기로 덮여 화장대에 올랐다. 네팔 정부는 파상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수도 중심부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파상 라무 셰르파를 다룬 영화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감독 낸시 스벤센) 스틸컷.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파상 라무 셰르파를 다룬 영화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감독 낸시 스벤센) 스틸컷.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셰르파족은 티베트 유목민의 후손들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세계 각국의 등반가들, 트레킹 여행자들의 여정을 도우며 사는 이들을 일컫는다.

고산 등반도, 셰르파 일도 오랫동안 금녀의 영역이었다. 셰르파족은 산은 신들의 거처이며 원정이 성공하려면 신의 가호가 있어야 하는데, 여성의 등반, 특히 월경 중인 여성이 산에 오르면 신을 진노케 한다고 믿었다. 전통적으로 셰르파 여성들은 남성보다 교육 수준이 낮았고 대개 가정주부로 살았다. 고산 등반이 관광·산업화하면서 셰르파 일을 하는 네팔 여성들이 늘었지만, 남편을 동반하거나 남성의 후원 없이 여성이 주체적으로 등반하기란 어려웠다.

1970년대에 들어 페미니즘 운동의 여파로 여성들의 등반 진출이 크게 늘었다. 일본의 다베이 준코가 1975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1978년에는 여성들로만 구성된 안나푸르나 원정대가 등장했다.

정작 히말라야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셰르파 여성들에겐 기회가 없었다. 파상은 분노했다. 그는 셰르파로서 프랑스 원정대와 여러 차례 히말라야를 등반했다. 1991년 에베레스트 원정에서는 정상에 가까운 사우스콜 캠프까지 올랐지만, 정상 등반조에서 제외됐다. “(대장이) 다른 나라 여자들은 (정상으로) 올라가는데 나는 내려가라고 했어요!”

1993년 인도 여성들로 구성된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구성됐고, 네팔에 공동 원정을 제안했다. 파상은 팀의 공동 리더 자리를 요구했고 정상 등반 의지를 피력했다. 인도 팀은 거절했고 파상은 직접 네팔 여성 원정대를 꾸려 떠났다. 그해 파상은 네팔 여성 최초로 ‘신들의 봉우리’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지독한 눈폭풍이 원정대를 덮쳤다. 파상은 그토록 오르고 싶어 했던 에베레스트에서 눈을 감았다.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파상 라무 셰르파를 다룬 영화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감독 낸시 스벤센) 스틸컷.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파상 라무 셰르파를 다룬 영화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감독 낸시 스벤센) 스틸컷.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영화는 파상의 가족들, 동료 셰르파들, 그를 지켜본 탐험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입지전적인 여성의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특히 담대하고 끈질기고 영리한 전략가의 면모를 비춘다. 파상은 막대한 에베레스트 원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맥주 제조사인 산 미구엘을 설득해 후원을 받아냈고, 모금용 티셔츠를 제작·판매해 꽤 성과를 거뒀다.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재치 있게 맞받아쳤고, 원정대 대표로 정부 관료를 만나 당당히 필요한 것들을 요구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남성·1세계 중심의 등반 문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수민족 여성 등반가로서 그는 자신의 도전이 갖는 의미와 사회적 영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영화는 파상 라무를 아낌없이 지원하고 험난한 여정을 끝까지 함께한 남성들도 조명한다. 실력 있는 셰르파이자 파상의 동반자였던 남편 소남 셰르파, 에베레스트 원정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소남 체링 등이다.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파상 라무 셰르파의 딸, 다와 푸티 셰르파가 지난 21일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영화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파상 라무 셰르파의 딸, 다와 푸티 셰르파가 지난 21일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영화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엄마는 자기 꿈을 좇았던 여성이에요. 남성 중심 사회에서 뭔가 해내려는 여성들에게 엄마는 늘 영감을 주는 사람이지요.“ 

파상의 딸 다와 푸티 셰르파(Dawa Futi Sherpa)의 말이다. 지난 21일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영화 상영 후 관객들과 만났다. 트렌토, 밴프 등 국제 산악영화제 5관왕에 오른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다와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네팔 여성 산악인들을 돕는 파상 라무 재단(Pasang Lhamu Foundation)을 운영하고 있다. “많은 네팔 사람들도 어머니의 이름만 기억할 뿐 어머니가 소수자로서 어떻게 고군분투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저도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이 커서 한동안 잊고만 살았는데, 영화 제작을 위해 어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치유(therapy)가 됐습니다.

그간 65명 넘는 여성이 어머니의 뒤를 이어 에베레스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성차별과 불평등은 여전하고 여성 전문 등반가는 소수에 불과하죠. 우리 가족은 여성 권익 증진을 도모했던 어머니의 유지를 계속해서 이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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