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 10월20일 서울 지하철역 삼각지역에서 장애인이동권과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정보라 작가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 10월20일 서울 지하철역 삼각지역에서 장애인이동권과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정보라 작가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10월에는 일부러 열심히 여러 데모에 참여했다. 오는 29일은 이태원참사 1주기인데, 나는 이때 폴란드에 있을 예정이다. 크라쿠프에서 열리는 문학 축제 ‘콘라드 축제’에 참가하고, 때맞춰 발간되는 폴란드 ‘저주토끼’ 홍보행사에도 가게 됐다. 이후 곧바로 미국 뉴욕으로 가서 안톤 허 선생님과 합류해 뉴욕 주재 한국 문화원과 뉴욕 공공도서관이 함께 주최하는 미국 ‘저주토끼’ 행사에도 참가한다. 뉴욕 행사는 작년부터 계획됐는데 ‘저주토끼’가 2023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기 때문에 체류 일정이 더 길어졌다.

그래서 10월 첫 토요일인 지난 7일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걷기 행사에 참가했다. 서울광장 이태원참사 희생자 분향소 앞에 모여서 10시 29분에 남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로 남산타워 앞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남산은 정말 높았다. 두 시간 정도 걸었는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공기는 차갑고 선선했는데 올라갈수록 땀이 점점 더 많이 나고 계단을 한없이 올라가야 하니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찼다. 다른 참가자들은 다 걸어 올라갔는데 나만 남산 마지막 구간을 기다시피 올라갔다.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깃발이 높이 휘날리던 광경은 아주 멋있었다.

지난 7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남산타워까지 걷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10.29km 서울도심 걷기에 참가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7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남산타워까지 걷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10.29km 서울도심 걷기에 참가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올라가면서 8월에 소성리에 가서 달마산에 올라갔던 일을 떠올렸다. 8월 폭염이 한창이었는데도 달마산 공기는 차갑고 선선했다. 그렇지만 산에 올라가니 비 오듯이 땀이 흘렀다. 미군들이 깔아놓은 아스팔트길 옆에는 숲이 우거지고 계곡에 시냇물이 졸졸 소리 내어 흘렀다. 저것이 전형적인 한국의 산, 한국의 자연 풍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소성리 주민들은, 그리고 밀양 할매들도, 제주 강정마을 분들도 저런 풍경을 사랑하고 그래서 저런 계곡을, 저런 시냇물을, 저 숲과 땅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들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내 나름대로 이해해 보았다.

참사 유가족들은 무엇을 지키려는 것일까. 남산타워 앞에 도착해서 참가자 모두 정자 앞에 모여 앉은 뒤에 유가족들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이태원 참사로 잃어버린 아이들과 함께 남산에 올랐던 일, 남산타워에서 사진을 찍고 식사했던 단란한 일상,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에 대해 유가족들은 이야기했다.

그 순간들이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가 또 참사로 가족을 잃고 살릴 수 있었다고 외치며 피눈물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싸우는 것이다.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지난 7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남산타워까지 걷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10.29km 서울도심 걷기에 참가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7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남산타워까지 걷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10.29km 서울도심 걷기에 참가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남산타워 앞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 협의회 분들이 준비한 김밥으로 참가자들 모두 함께 식사할 예정이었다. 나는 오후에 홍대 앞에서 와우북 행사가 있어서 바로 내려와야 했다. 올라가는 길에 땀을 너무 흘려서 사회 보는 내내 옆 작가님한테 땀 냄새를 풍기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지난 20일 금요일엔 오랜만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자회견에 갔다. 기자회견 의제는 두 가지였지만 결론적으로 요구한 것은 예산이었다. 첫 번째는 전장연이 언제나 요구하는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예산이다.

현재 정부의 이동권 대책은 버스나 지하철 등 기존의 대중교통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콜택시 등 장애인 특화 이동수단을 지원하겠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 콜택시 차량도 모자라고 무엇보다 운전자가 없다. 지역에 따라 차량이 그냥 차고지에 서 있고 운전자가 없어서 이용자는 콜택시를 부르고 한없이 기다리는 상황이 수시로 벌어진다. 경기도는 장애인 콜택시를 도 전체로 광역화했다. 운전자 한 명이 차량 한 대를 몰고 경기도 전 지역을 돌게 돼 이용자들이 기본 3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차량 한 대당 운전자 두 명을 확보해야만 현실적인 ‘콜택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요구사항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 10월20일 서울 지하철역 삼각지역에서 장애인이동권과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보라 작가(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도 참가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 10월20일 서울 지하철역 삼각지역에서 장애인이동권과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보라 작가(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도 참가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두 번째는 발달장애인 동료지원사업 예산 복원이다.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을 장애당사자들은 ‘동료지원가 사업’이라고 말한다.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발달장애인과 만나 사회활동을 지원하고 자조모임도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의 사회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한 최초의 민관협력 사업이다.

장애여성공감에서 장애 운동사를 배울 때 한국의 장애인 정책도 장애운동 자체도 지체장애인 중심으로 발전했고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나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발달장애는 아주 거칠게 말하면 지적장애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지체장애가 아니기 때문에 비장애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발달장애인의 장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많은 오해를 받거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경제적·성적 착취 등 범죄나 학대 피해자가 돼도, 이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 여부 자체부터 피해 사실까지 인정받고 지원받기가 정말 쉽지 않다. 그러니까 비장애인이 비장애인 관점에서 ‘돕는’ 게 아니라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동료 발달장애인의 사회생활을 지원하는 것이 합당한 방향이다. 이 지원사업 예산이 홀랑 사라진 것이다.

기자회견엔 경기도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들야학 등 단위들이 참여했고 장애 당사자들이 발언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님은 예산 복원을 위해 기획재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11월20일까지 딱 한 달간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운동을 쉬겠다고도 선언했다. 11월 말부터 국회가 내년 예산을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그때까지 장애인 이동권과 지원사업 예산이 복원되지 않으면 전장연은 11월20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 시민의 발목을 잡는 것은 장애인도 휠체어도 아니고 장애인식이 부족한 국회와 자본의 논리에 빠진 기재부다. 시민의 삶을 지원하고 모든 시민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국가와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 국회와 기재부의 인식 개선을 촉구한다.

개인적으로 어쩌다 보니까 박경석 대표님과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가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 최대의 성과였다. “투쟁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티셔츠다. 전장연이 재작년 고(故)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의미로 트랜스젠더 상징색인 푸른색과 분홍색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전장연은 매년 티셔츠를 새로 만들지만 나는 2021년 티셔츠를 가장 좋아한다. 박경석 대표님과 마음이 통해서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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