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최종후보 정보라 작가
K문학 국제적 주목받는 시대에
정부 출판 지원예산 삭감 파장 우려
“거꾸로 가는 일...작가도 출판사도 곤혹
이런 식으로 ‘K컬처 붐’ 어떻게 유지하나”

부커상에 이어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는 여전히 ‘싸우는 소설가’다. 작가이자 번역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로 활동하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고 투쟁하느라 분주한 그를 지난 7일 만났다.  ⓒ혜영(Hyeyoung)
부커상에 이어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는 여전히 ‘싸우는 소설가’다. 작가이자 번역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로 활동하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고 투쟁하느라 분주한 그를 지난 7일 만났다. ⓒ혜영(Hyeyoung)

정보라 작가에겐 폭풍 같은 한 해였다. 2022년 『저주토끼』로 ‘세계 3대 문학상’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단번에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최근 같은 작품으로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최종후보에 올라 다시 폭풍의 시간을 앞뒀다. 

분노는 여전히 그가 글을 쓰는 힘이다. ‘정보라 월드’엔 불의와 폭력에 맞서는 작지만 강인한 존재들이 산다. 권력을 등에 업고 무자비한 행위를 일삼는 이들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어 버리는 흡혈인, 화장실에 살면서 카메라 너머의 불법촬영 범죄자들에게 조롱과 위협을 퍼붓는 미친 여자처럼(신작 중편 ‘밤이 오면 우리는’). 작고 약한 존재들의 슬픔과 분노로 빚은 기묘하고 섬뜩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올해도 여럿 선보였다.

그러면서도 이 미친 세상에서 자신을 너무 학대하지 말자고, 존엄과 행복을 지키며 살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말하는 작가다. 신작 장편 ‘고통에 관하여’ 작가의 말에선 이렇게 썼다.

“탈출할 길이 있어야 한다. 삶의 선택지가 늘어나야 한다. (...) 그래서 나는 계속 떠들고 글 쓰고 집회하고 행진하고 요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래서 꼬박꼬박 시간 내어 노동자들, 장애인들,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이들 곁으로 달려간다. 그 절박하고 끈질긴 ‘연대하는 마음’을 여성신문 칼럼 ‘월간데모’에 담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기자와 만나서도 그날 아침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유족들과 함께 서울시청 앞 분향소부터 남산까지 10.29km를 걷고 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 이야기를 하다가 몇 년 전 유튜브 영상을 보여줬다. 희생자 단원고 2-7 이준우 학생의 생일 축하 영상이다. 정보라 작가는 스크립트 작업에 참여했다.

“저는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투쟁하는 분들이 저를 자랑스러워해 주시면, 제가 그분들께 도움이 되면 계속하는 거죠.”

정보라 작가가 지난 2월21일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에 연대해 시위하고 있다.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가 지난 2월21일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에 연대해 시위하고 있다.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는 지난 7월 20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열린 유진우 전장연 활동가 석방 촉구 문화제에 참석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는 지난 7월 20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열린 유진우 전장연 활동가 석방 촉구 문화제에 참석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과 정보라 작가가 2022년 8월31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강사 처우 개선과 관련 법제도 개정을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과 정보라 작가가 2022년 8월31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강사 처우 개선과 관련 법제도 개정을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싸우는 작가’는 정보라 작가의 소개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 됐다. 그 자신도 11년간 몸담았던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퇴직금과 주휴·연차수당 지급 소송 중이다. 시간강사의 강의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쳐서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로 보는 관행에 반론을 제기했다. ‘교수나 강사나 주당 6시간 강의한다면 퇴직금과 주휴·수당 지급 기준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 38-1민사부(재판장 정경근 부장판사)는 부산대와 부경대가 비전업 시간강사들에게 미지급 연차휴가수당 및 주휴수당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강사들은 강의 준비, 성적평가, 강의 관련 학사행정업무 시간도 노동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당사자 일방의 주장이나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근거로 추단해도 되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기각했다. 강사들이 수년간 해온 업무이니 숙련돼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봤다. 

2022년 8월 시작된 소송은 어느덧 1년을 넘겼다. 정보라 작가는 “서울고법 판결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보라 작가가 올해 하반기 펴낸 신작들. 장편 ‘고통에 관하여’와 중편 ‘밤이 오면 우리는’. ⓒ다산책방/현대문학
정보라 작가가 올해 하반기 펴낸 신작들. 장편 ‘고통에 관하여’와 중편 ‘밤이 오면 우리는’. ⓒ다산책방/현대문학

정보라는 성실한 작가다. 밀려드는 인터뷰·원고·강연 청탁을 꼬박꼬박 소화한다. 올해만 신작 장편·중편소설, 소설집을 한 권씩 펴냈다. 기작을 다듬어 묶은 소설집, 다른 작가들과 함께한 앤솔로지까지 그가 참여한 창작 출판물만 올해 10권가량 세상에 나왔다. 베테랑 번역가다. 동유럽 SF 거장들의 대표작을 포함해 많은 슬라브어권 문학 작품이 그를 통해 한국 독자들을 만났고 만날 예정이다. 한 출판사 대표의 말을 빌려 “아주 에너제틱한” 사람이다. 그 덕에 현실과 환상을 노련하고 재치 있게 넘나드는 정보라의 글쓰기를 앞으로도 여러 매체에서 꾸준히 만날 수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작가연대) 대표로 국내외 SF 작가들과 폭넓게 교류해 왔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닫혔던 국제 교류의 장이 다시 열렸다. 오는 18일 중국 청두에서 개막하는 SF 월드콘에는 김보영, 김초엽 작가 등 한국 장르문학 대표 작가들이 다수 참석한다. 단 9명으로 시작한 SF작가연대도 어느덧 회원 70여 명 규모로 커졌다. 현역 작가들끼리 출판 계약부터 웹소설·웹툰 작업 노하우 등 실질적인 정보를 나누는 장이다. “상근자를 둘 수 있는 단체로 발돋움하는 게 목표”다.

정부의 출판 지원예산 삭감에
“작가들도 해외 출판사도 곤혹스러워...
이런 식으로 ‘K컬처 붐’ 어떻게 유지하나”

한국 작가들이 꾸준히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정부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 특히 내년 출판 분야 예산 삭감 소식에 “앞이 캄캄하다, 아주 거꾸로 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작가회의 등 출판 단체들도 “내년 정부 지원 출판 예산은 올해 529억원에서 12%P 줄어들어 467억원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 작가는 단순히 일부 지원사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출판 분야 다양성을 해치고 산업 기초 체력을 약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서관 지원 예산이 하루아침에 줄어들었어요. 상주작가 프로그램이 줄고 작가들이 독자들과 만나며 작업할 기회가 줄었어요. 한국문학 번역출판지원사업 예산도 대폭 삭감되면서 이미 약속된 한국 SF작가의 남미 번역 출간·홍보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죠. 담당 해외 출판사는 곤혹스러워하고요. 한국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지원을 늘리기는커녕 나오려던 책도 못 나오게 하면 어떡하나요?”

서울국제도서전, 서울와우북페스티벌 등 도서 축제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된 데에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도서 축제는 단순히 국내 작가-출판사-독자를 연결하는 장이 아니에요. 국내외 저작권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장이고요. 해외 에이전시에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알리고 영상화나 다른 기획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기회,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장이에요. 그 예산을 깎아 버리면 미래의 ‘K컬처 붐’을 어떻게 유지하나요? 그거 저절로 유지되는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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