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15일 월대, 현판 복원 기념식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문화재청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앞이 새롭게 탈바꿈한다.

과거 중요한 행사에서 임금과 백성이 소통하던 공간인 ‘월대’가 복원되고, 현판은 검은색 글자에서 금빛 글자로 바뀐다.

문화재청은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 광장에서 월대(越臺, 月臺·건물 앞에 넓게 설치한 대)와 현판 복원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연다고 밝혔다. 월대는 궁궐, 종묘 등 중요한 건물에 설치한 특별한 공간을 의미한다.

월대는 넓은 단이나 계단을 활용해 건물의 위엄을 한층 높이는 역할을 했다. 아울러 왕실의 주요 의례나 만남 등 각종 행사가 펼쳐지는 무대 기능을 하기도 했다. 길고 넓은 대 양쪽에 난간석(건축물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는 석조물)을 둔 광화문 월대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하는 장소였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재청은 2006년부터 광화문을 복원·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조사 결과 광화문 월대는 길이 48.7m, 폭 29.7m 규모로 육조 거리를 향해 뻗어 있었으며 중앙 부분에는 너비 약 7m의 어도(御道·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종(재위 1863∼1907)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營建日記)와 각종 사진 자료를 토대로 보면 광화문 월대는 여러 차례 변화해 왔다. 특히 조선총독부가 1910년대에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알리는 조선물산공진회 행사를 추진하고 1923년 이후 전차 선로까지 놓으면서 월대는 제 모습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새롭게 바뀌는 광화문 현판 ⓒ문화재청
새롭게 바뀌는 광화문 현판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돌아온 월대가 광화문 복원 사업을 마무리라고 본다.

문화재청은 월대를 복원하면서 원형 부재를 다시 사용하는 등 과거 흔적을 되살렸다. 광화문 월대의 난간석 일부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조선왕릉인 경기 구리 동구릉에 남아 있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부재 40여점을 활용했다. 난간 양쪽을 장식하던 각 석조물도 제자리를 찾았다.

최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 유족 측이 기증한 동물 조각상도 복원에 큰 힘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월대가 복원되면서 광화문 앞에 있었던 해태(해치)상도 위치를 옮겨 시민과 만난다.

문화재청은 해태상을 어디에 둘지 논의한 끝에 광화문 앞 차로와 해태상의 의미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월대 전면부 즉, 앞부분에 두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이날 월대와 함께 광화문의 새로운 현판도 선보인다. 2010년 제작된 기존 현판이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였다면, 새 현판은 검정 바탕에 동판을 도금한 금빛 글자로 한자 ‘光化門’(광화문)을 나타낸다.

글자는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이자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조선시대 궁 등의 건축 공사를 관장하던 임시 관서의 직책)를 겸한 임태영이 한자로 쓴 것을 그대로 따랐다.

문화재청은 약 100년 만에 모습을 되찾는 월대가 광화문의 새로운 상징이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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