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미래여성연구원 원장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외로운 섬과 같은 여성관리자의 처지를 공감하고 함께 헤쳐나갈 선배와 후배가 있어 이젠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자주 만납시다” -대기업 부장-“열심히 살면 살수록 제게 남아 있는 것은 더 큰 산과 같은 스트레스였습니다. 그것을 헤쳐나온 선배들에게 나의 멘토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멘토가 없습니다. 제가 제일 높거든요” -대기업 차장-노동부 양승주 국장의 '적극적 조치의 시행 전략과 적용'이라는 발표와 미래여성연구원의 '조직문화 이해와 여성리더십'강연이 끝나고 행사 마지막 진행순서로 각자의 참석 소감과 노동부에 건의사항을 말하는 순간 장내는 갑자기 숙연해졌다. 대부분 각 사업장의 최고 여성관리자인 그들은 남성들의 모임에서 흔히 그렇듯이 자신의 잘남을 내보이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이켜보며 아픔을 토로했다. 더불어 지금의 이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혼자서 외로운 섬으로 고군분투하는 현실도 이야기했다.

기업과 남성관리자들은 극소수의 여성이 관리자로 올라온 것을 보며 마치 자신의 기업은 '양성평등'이 이미 다 된 것처럼 말한다. 심지어는 역차별적 승진정책이라고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여성들은 기업으로의 진입단계서부터 차별을 겪는다. 진입한 여성들은 선택받은 소수일 뿐이다. 그러나 입사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닥치며 외로운 싸움을 치러내야 한다.

이미 남성 중심적으로 짜여진 조직의 문화는 여성에게는 오르지 못할 산으로 느껴진다. 담배를 피우며 회의실 밖에서 은근슬쩍 결정되어진 회의내용,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2차, 3차 술자리…. 이렇게 회사 내 정보와 권력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 함께 입사한 남자 동료와의 업무, 비공식정보에서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도 하고 조언을 구하려 해도 여성선배가 없다. 있다 해도 그 선배 역시 '왕따'신세여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직급이 낮을 때는 좀 낫다. 대리까지는 여성인력들이 퇴사하지 않고 함께 회사 내에 머물러 있어 대화할 상대라도 있으니 참을 만하다. 그러나 몇년 내에 임신, 출산, 육아전쟁이 시작되면서 하나둘 포기하기 시작하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 관행으로 직무상 불이익을 몇 차례 받으면서 열 받아 나가기도 하면서 과장이 되었을 때 여성인력은 손으로 꼽을 정도만 남게 된다. 남성 과장들 틈에서 살아남기란 이전의 대리 때보다 몇십배 힘들다. 그러다 보면 '최초의 여성차장'이란 명예(?)로운 타이틀을 짊어지고 외로운 섬으로 회사를 둥둥 떠다니게 된다.

여성인력이 기업 내 인력으로 당당히 대접받고 하나의 인재그룹으로 인정되어 세력을 형성하려면 여성관리자에 대한 지원과 육성을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업에서 여성인력은 유사이래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맞고 있다. 2001년부터 여성인력 20% 이상을 채용해 온 기업이 다수인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이 여성들이 대리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부터 이 여성들에게는 기업 내 역할모델이 필요하다. 그것도 자신도 언제 포기할지 모를 그런 관리자가 아니라 후배들에게 강력한 의지와 의식을 심어 줄 그런 여성관리자가 필요하다.

여성관리자를 더 이상 외로운 섬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여성관리자들에게 서로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는 회사 밖에서의 멘토링이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노동부는 시스템을 구성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10년이 지난 뒤에는 더 이상 회사 밖에서 멘토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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