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부터 보아까지 여가수 반세기사
윤심덕부터 보아까지 여가수 반세기사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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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역사 일궈간 한국의 여가수들
기생가수가 연 대중가요 여명, 그리고 이미자

한국 여성가수의 역사는 노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노래의 기원은 곧 여성의 목소리로 발화한 순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노래는 여성 삶의 일부였다. 예악정치를 국가의 이상으로 신봉하던 조선시대에도 예악의 정신을 음악적으로 구현한 이들은 여악(女樂), 즉 기녀였다.

1907년 미국의 컬럼비아사를 필두로 음반사가 들어오고, 이후 일본 음반사들이 속속 상륙하면서 근대중가요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음반사나 극장무대에서 가장 각광을 받은 이들은 주로 여성가수들이었다. 근대 초기 여성가수는 크게 관기와 권번(일제 강점기 기생들의 조합) 출신의 기생가수, 일본 유학생 출신의 가수, 공모나 콩쿠르를 통해 데뷔한 가수, 지방 순회 유랑극단 출신의 가수로 나눠볼 수 있다. 이들 중 근대 여명기 대중가요계를 이끈 주역은 단연 권번 출신의 기생가수들이었다. 권번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기생들은 음악적 전문성과 무대에 적합한 매너와 세련된 외모를 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대중가수나 배우 등 근대적 연예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1907년 미 컬럼비아사에서 최초로 발매한 음반을 취입한 이도 관기 출신의 최홍매였으며, 1920년대 이후에 가장 많은 음반을 남긴 이들 역시 기생가수였다. 왕수복, 이은파, 김복희, 김은숙, 선우일선 등이 바로 대중가요의 여명기를 이끈 대표적 기생가수들이다. 일본 유학 출신의 가수로는 '현해탄 정사(情死)사건'으로 유명한 윤심덕과 '봉숭아'로 조선인의 설움을 달랜 김천애를 꼽을 수 있다. 가수들의 영역이 커지면서 콩쿠르나 배우 출신들 중에서 공모한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향림, 손금홍, 이난향, 이애리수, 전옥, 황금심 등이 공모를 통해 데뷔한 대표적 가수들이다. 1930년대를 휩쓴 '가요계의 여왕' 이난영은 지방을 순회하며 공연하는 유랑극단 출신의 막간 가수에서 출발하여 가요계의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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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부른 노래는 시조, 가곡, 잡가, 통속민요 등 전통음악과 신민요, 창가, 재즈, 트로트 등 주로 일본을 통해 새롭게 유입되어 정착한 음악을 망라하고 있다. 이중 가장 대중적 인기를 모은 노래는 단연 신민요와 트로트였다. 신민요가 전통음악에 향수를 가진 광범위한 대중을 확보하며 70년대까지 인기를 모았다면 도시 취향의 세련된 외래음악으로 출발한 트로트는 이후 왜색 시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정한을 담은 서민음악의 대표로 군림했다. '국민가수'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미자는 대표적인 외래 음악이었던 트로트가 가장 한국적인 음악으로 정착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처연한 정서를 발군의 가창력과 놀라운 호소력으로 풀어내는 이미자는 한국 대중가요에 면면히 흐르는 전통과 저변을 훑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미8군 출신 여가수들의 도발, '신중현 사단'의 출현

미군정과 함께 유입된 미8군 클럽은 탁월한 연주가 못지 않게 뛰어난 여성가수들도 배출했다. 미8군 클럽을 거친 여성가수들의 면모는 익숙히 보아왔던 가수들과 외양에서부터 음악적 스타일까지 모두 달랐다. 한명숙, 현미, 윤복희, 패티김 등 미8군 출신 여성 가수들은 당시로선 지나치게 활달하고 드세보이는 여성상을 스탠더드 팝과 솔로 드러냈다. 미8군 출신 여성가수들의 영역은 '신중현 사단'이라 불리는 여성가수들이 TV방송을 장악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김추자, 펄시스터즈, 김정미는 비음이 섞인 보컬과 육감적인 춤으로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들이 여성 로커의 앞머리에 놓이는 이유는 로큰롤과 솔, 사이키델릭이 교차하는 그들의 음악과 현란한 육체적 감각성 때문이었다. 미니스커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저지톱과 판탈롱 등 이들이 보여준 패션 역시 도발의 연속이었다.

김추자, 김정미, 펄시스터즈는 국가주의의 엄숙함이 일상을 통제하던 시기를 관능으로 돌파한 드센(혹은 드세보이는) '언니들'이었다. 이들의 배후에 신중현이라는 대중음악의 걸출한 마에스트로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은 여성음악의 자생성과 관련하여 아쉬운 대목이지만, 이것이 쇼비즈니스 시대에 재능있는 여성음악인들이 생존하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는 것은 엄연히 존재했던 그리고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

성정체성 모호한 포크…'대지모' 한영애의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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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말 이 땅에 상륙한 포크는 바로 대학가로 유입되어 엘리트 음악, 도시 공동체 음악의 계보를 형성했다. 포크 본래의 엘리티즘과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포크 이데올로기로 인해 포크 수용자 간에는 성차가 드러나지 않고, 그만큼 성정체성은 모호했다. 이는 초창기 활동하던 여성 가수들의 면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포크의 전성기였던 70년대 초 대표적 여성 포크 가수로는 양희은, 방의경, 최영희, 이연실, 은희 등이 있다. 청바지와 통기타라는 남녀 공통의 코드로 무장한 이들은 여성이 아닌 청년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여성 포크 가수들은 김민기, 이정선이 그랬듯이 평화를 노래하고, 유토피아를 꿈꾸고, 한점 오점 없는 자연을 동경했다. 그들은 여성의 구체적 경험, 여성이라는 자각 이전에 인류애, 평화라는 포크의 이데올로기를 차용했다. 이러한 면모는 현재 여성 포크 가수의 계보를 잇고 있는 장필순과 황보령, 오소영과 최근의 손지연에게도 거의 유사하게 나타나곤 한다. 포크의 모호한 성적 정체성은 혼성 포크 그룹 '해바라기'에서 출발하여 블루스(blues), 록(rock), 테크노(techno)로 음악적 외연을 끊임없이 확장한 언더그라운드의 대모 한영애에 의해 결정적으로 전복되었다. 해바라기 시절의 한영애는 70년대 여성 포키들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86년의 솔로 데뷔와 함께 블루스와 록으로 음악의 지평을 넓힌 그는 동시에 여성 포키의 전형에서도 탈피했다. 그의 노래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자연 친화적 메시지, 세상을 섬세하게 응시하는 따뜻한 시선은 포크 공동체의 이데올로기와 대지모(大地母)다운 상상력과의 접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영애는 이렇듯 온유한 대지모의 이미지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결합함으로써 관습적인 여성의 덫을 벗어났고, 여성 포크 가수들의 이미지 역시 전복할 수 있었다.

외모지상주의 스타시스템 속 여가수들의 향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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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수들은 근대적 대중가요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쇼 비즈니스계를 이끈 주역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적 가요 시스템은 창작자와 가창자를 분리하면서 여성가수를 생산자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통로 정도로 축소화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여성가수가 스타 시스템에 종속되는 정도는 80년대 컬러TV 시대가 열리고 자연스럽게 가요에서 비주얼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심화되어 갔다.

86년 데뷔한 댄스가수 김완선은 컬러TV가 낳은 대표적 스타라 할 수 있다. 소비자본주의가 고도화하면서 가수가 노래에 대한 재능과 열정뿐 아니라 만능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요구받는 순간 '댄스가요 평천하' 시대는 시작되었다. 이는 비단 여성가수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 대중가요계가 안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스타 시스템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여성가수들의 입지는 그와 반비례하여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여성가수들이 받던 각광은 대중가요의 대주주(?)인 여성 팬덤을 겨냥한 '오빠들'에게 급속히 옮겨갔다.

미소년 오빠들이 끊임없이 피고 지는 가요계에서 이효리와 보아가 거둔 성과는 이들을 통어하는 스타 시스템(물론 유력한 남성들이 장악한)에 대한 일말의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

박애경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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