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가 원래 어려운 거예요.
어려워야 배우는 게 있죠.
실패도 해봐야 깨닫는 것도 있을 테고.”

경남 거창군 고제면 지경마을 해발 800m가 넘는 고랭지에서 농민들이 가을 김장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거창군 제공)
경남 거창군 고제면 지경마을 해발 800m가 넘는 고랭지에서 농민들이 가을 김장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거창군 제공)

- 고구마 어때? 괜찮아요?
- 작년보다는 나은데? 알이 많지는 않아도 크기는 적당해요.

지난해에는 잎, 줄기만 무성하고 정작 고구마는 수확하기 민망할 정도로 알이 잘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질소 비료가 많으면 잎과 줄기만 자란단다. 덩이뿌리를 키우고 싶으면 붕소나 칼슘이 좋다고 해서 올해는 붕소를 구입해 두 차례 시비해주었다. 본격적인 수확을 한두 주 앞두고 시험 삼아 몇 뿌리 캐보니 대풍까지는 아니더라도 작년 같은 망작은 피한 듯싶다.

마음이야 “자연이, 하늘이 허락한 만큼만 가져가자” 주의라지만 정작 소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괜스레 섭섭하고 아쉬운 게 또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추비도 하고 잡초도 정리하고 농약도 만들어 쓰는 게 아니겠는가.

배추가 또 그렇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천연 농약으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서너 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좁은가슴잎벌레라는 기이한 이름의 작고 까만 벌레를 잡아도 다음에 가보면 개체 수는 더 많아지고 배추는 망사처럼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애초부터 유기농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배추 농사를 할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찾는 것만으로는, 비닐 멀칭을 피하는 것도, 무농약을 고집하는 것도 결국 꿈에 불과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그렇다. 자연 앞에선 인간의 바람이 늘 이렇게 허무하기만 하다. 자연을 따라 순리대로 살겠다고 내려와서는 되레 자연과 싸우려 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김장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배추 농사만큼은 친환경 농약을 구해 초반에 두 차례 이용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올여름은 비가 많이 오면서 아니나 다를까 고추밭에도 탄저병이 찾아들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 보니 1/3 이상이 썩거나 물렁거렸다. 장마가 오기 전 살포한 천연 농약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던 모양이다. 수십 년 농사를 지었다는 옆 농장 남 씨의 고추밭도 탄저병을 피하지 못했다니 이것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수난인 모양이다. 나야 조금 아쉬울 따름이지만 남 씨처럼 고추를 팔아 생계를 꾸려야 하는 농부들에게 하늘은 또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 고추도 작년보다는 낫네. 이 정도면 성공 아니야?
- 성공은 무슨. 맨날 망쳐놓고 정신승리만 잘한다니까.

텃밭을 시작한 지 10년, 이곳 가평 맹지에 60평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 것도 7년이다. 그런데도 요령이 부득인지 몇 가지 작물을 빼면 매번 이렇게 아내의 핀잔을 듣고 만다. 반박도 쉽지 않다. 올해도 벌써 오이, 수박, 딸기 농사를 망치지 않았는가.

- 농사가 원래 어려운 거예요. 어려워야 배우는 게 있죠. 실패도 해봐야 깨닫는 것도 있을 테고.

이곳 텃밭에 오면 농사는 온전히 내 몫이다. 아내에게는 5일간의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휴식 공간이 된다. 애초에 정한 규칙이 그렇다. 아내도 운동 삼아 농막 주변의 잡초를 정리하거나 노각 따위를 따기는 해도 고된 노동까지는 나도 원치 않는다. 가끔 잘생긴 오이, 가지를 따서 맛난 무침을 해주거나 수박이라도 한 통 시원하게 따주고 싶건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게 또 농사일이다.

그런데 실패라는 이름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난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변명처럼 정말로 뭐든 배우고 깨닫고는 있는 걸까? 자연과는 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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