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수 상지대학교 명예교수
강이수 상지대학교 명예교수

기획재정부가 2024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지출구조조정에 의한 알뜰 예산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그 내막은 경기악화, 부자감세 등 세수 부족으로 사회 서비스와 복지는 물론 과학, 교육 등 전반적인 예산 감축안이어서 각 분야에서 걱정과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성가족부 예산안은 지원 사업 확대로 올해보다 9.4%, 1475억원 증액된 1조7153억원이라고 발표하였다. 정부가 폐지를 공언하고 있는 부처인 여성가족부 예산 증액이라니 다소 당혹스러운 느낌이다. 그런데 그 내역을 살펴보면 예산의 대부분은 저출산 대응에 초점을 두어 아이돌봄서비스나 다자녀 지원에서 1132억원이 증액된 것이다. 이에 비해 성평등 예산과 청소년 정책 예산은 삭감됐다.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에서 2023년 하반기에는 0.6명대로 진입할지도 모른다는 예측과 한 외국학자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망했다’라는 진단과 위기감이 반영된 예산 증액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같은 저출산 예산과 정책이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출산 예산 50조원은 없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2.8% 늘어난 656.9조원으로 편성됐다. 왼쪽은 김동일 예산실장. ⓒ뉴시스·여성신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2.8% 늘어난 656.9조원으로 편성됐다. 왼쪽은 김동일 예산실장. ⓒ뉴시스·여성신문

소위 ‘저출산 예산’은 여성가족부 외에도 각 행정 부처에서 저출산 극복이라고 항목화한 예산 전부를 합한 것이고 작년에도 한 해 50조원이 투입됐지만 별무 효과였다고 지적된다. 2024년 예산안에도 기획재정부의 부모급여 확대 및 신생아 출산 가구 대상 저금리 대출 자격 완화, 국토교통부도 신생아 출산 가구 대상 아파트 특별공급 등에 많은 예산을 배정한다고 하고 타 행정부처 예산까지 합하면 적지 않은 예산이 ‘저출산 예산’으로 계상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저출산 예산 내역을 보면 어린이 안전을 위한 CCTV 설치, 교육부의 산업연계 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 학교 태양광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사업, 군인·군무원 인건비 증액 사업 등도 모두 저출산 예산으로 계상되는 것이 반복되어 왔다. 저출산 고령사회위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51조원으로 잡힌 저출산 예산 중 실제 육아휴직, 보육지원, 아동수당 등 실제 저출산과 직결된 예산은 19조5000억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공적 보육 및 돌봄 서비스 체계의 붕괴와 민간 책임 전가

문제는 이 같은 부풀려진 허구적인 ‘무늬만 저출산’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정부의 저출산에 접근하는 정책 방향을 보면 신생아 출산 가구에 대한 직접적 현금성 급여 증액, 저금리 대출 등으로 민간 개별 가구 단위에 육아와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는 방향이 강화되고 있다. 반면 공적 보육 및 돌봄 서비스 체계를 약화시키고 있는데, 서울시의 문제 많은 외국인 가사돌보미 도입과 공공돌봄기관인 전국 사회서비스원의 운영 예산 대폭 삭감이 같은 궤에 놓여 있다. 여성계가 지속적으로 지적한 것처럼 출산율과 육아 문제는 가정 내에서의 공정한 가사분담, 일·가정 균형을 지향하는 직장문화와 함께 돌봄 관련제도와 공적 서비스 제고를 통해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성평등한 환경 조성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 사회 구조적 성차별을 무시하고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적 환경에서 청년들의 결혼율은 더욱 낮아지고, 방향성없는 자유주의 언설은 안전하고 균등한 공적 돌봄 서비스 체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함께 돌보고, 함께 키우는 사회’라는 저출산 구호는 여전히 공허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