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대법원서 1인 시위
“호르몬 투여만으로는 확실한 성전환 어려워
생식능력 제거되도록 성기 제거 필요”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은 우려 표명
“상황 상 수술 못 받는 사람 있고, 자기 결정권의 영역으로 둬야”

‘트랜스여성의 여성부 경기 출전은 ‘공정’한가’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트랜스젠더 여성 나화린 선수. 사진=채널A 뉴스 캡쳐
트랜스젠더 여성 나화린 선수. 사진=채널A 뉴스 캡쳐

성전환 여성 최초로 국내 공식 대회서 싸이클 종목에 출전해 2관왕을 차지한 나화린 선수가 1인 시위에 나섰다. 그는 최근 성전환 수술 없이 성별정정을 허가한 법원의 판단에 강력히 반대하며 “성기제거 등 영구적인 성기능 상실을 위한 수술을 거친 트랜스젠더만 성별정정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화린 선수는 5일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하며 장장 10시간에 걸쳐 1인 시위를 벌였다. 6일에는 대법원에 찾아가 시위를 이어갔다. 7일부터 잠시 중단했지만 지금과 같은 판결이 바뀌지 않으면 시위를 재개할 예정이다.

성기제거 없이 성별정정 허가하면 성범죄 등 사회적 혼란 초래

 

ⓒ나화린 인스태그램 캡처
ⓒ나화린 인스태그램 캡처

나화린 선수는 “최근 호르몬 투여만 받고 성기수술은 하지 않은 남성이 여성으로 정정된 사례를 봤다. 마치 개명하듯 쉽게 성별을 바꾸는 모습에 잘못하면 우리나라에 큰 혼란이 생길 수 있겠다고 생각해 급하게 시위를 준비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가 말한 사례는 지난 3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트랜스젠더 여성 A씨가 제기한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 신청 항고심에서 A씨의 성별정정을 허가한 일을 말한다.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난 A씨는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여긴 뒤 8년간 여성 호르몬제를 투여 받으며 학교·직장 등에서 여성으로 생활해오다 성별정정을 신청했다.

1심에서는 성기제거수술을 받지 않아 성별정정이 기각됐지만, 2심은 “성전환수술은 필수요소가 아니며,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생식능력 박탈 및 외부성기 변형 강제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나 선수는 이처럼 성기제거 없이 성별정정을 허가할 경우 ‘성범죄·병역문제’ 등에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장남자가 본인을 트랜스여성이라고 속이면서 공중화장실에 침입하거나, 군대에 가야 하는 나이에 잠시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했다가 다시 남성으로 복귀하는 식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 선수는 “성별정정에 앞서 생식능력 제거를 위한 성기제거 수술이 필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이 되려는 남성의 경우 고환제거를, 남성이 되려는 여성의 경우 난소·난관 적출을 해야 한다.

나 선수의 경우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을 인지한 후 12년간 호르몬 투여를 받다 2022년 성기제거수술을 마치고 성별정정을 신청했다.

수술이 신체에 입히는 피해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일부 지적에는 “성기제거 수술은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수술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비용이 부담된다면 의료보험 처리를 가능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랜스젠더 대부분은 신체적 불쾌감(신체적 성과 정신적 성의 차이에서 오는 불쾌감)이 강하다. 그럼에도 수술 없이 성별을 바꾸려는 이들은 서류상 성별만 바꾸면 불쾌감이 사라지는 건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트랜스젠더 활동가 “상황 상 수술 못 받는 사람 있고, 자기 결정권의 영역으로 둬야”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이  트랜스젠더 가시회의 날 맞아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021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이 트랜스젠더 가시회의 날 맞아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트랜스젠더의 고환·자궁 적출 수술은 의료보험을 받지 못해 통상 300~4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해외에서 수술을 받는 경우 천만원을 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준비, 치료 등 수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도 막대해 신체적 불쾌감이 있어도 수술을 시도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이 많다.

이를 이유로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을 이어온 활동가들은 나 선수의 주장을 두고 “성기제거수술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정욱 정의당 광주광역시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은 “만성질환과 영양실조 등 건강에 이상이 있는 트랜스젠더, 사회적 낙인 등으로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아 돈을 모으기 어려운 이들은 신체를 훼손하는 수술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이자 ‘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 작가인 박에디 인권활동가 또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싶어도 건강상 이유로 마취를 할 수 없는 트랜스젠더들이 있다. 수술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진 이들만 성별정정이 가능하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고 토로했다.

또한 트랜스젠더가 일으키는 성폭력에 대해 활동가들은 “가해자가 트랜스젠더인지 트랜스젠더가 아닌지 구분하지 말고 아닌 성폭력 그 자체에 중점을 둬야한다”고도 강조한다.

성폭력지원단체에서 활동해온 리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활동가는 ”가해자가 트랜스젠더든 아니든 성폭력한 것 자체가 문제다. 성소수자가 성범죄를 저지른다고 폭력의 강도가 다른 것은 아니다“라며 ”트랜스젠더가 성폭력 가해자인 경우 그의 성정체성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성을 성별정정이나 생식능력제거와 연관 지을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정욱 위원장 역시 “성중립화장실 등에서 성소수자와 관련한 성범죄 문제가 발생하곤 하지만 성폭력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감정이다. 가해자의 성별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마드리드=AP/뉴시스] 22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의회 계단에 모인 사람들이 성별을 자유롭게 바꾸게 해주는 트랜스젠더 법 발표에 기뻐하고 있다. 스페인 하원은 16세 이상의 시민이 의료 감독 없이 등록된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성전환 법을 통과시켰다.
[마드리드=AP/뉴시스] 22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의회 계단에 모인 사람들이 성별을 자유롭게 바꾸게 해주는 트랜스젠더 법 발표에 기뻐하고 있다. 스페인 하원은 16세 이상의 시민이 의료 감독 없이 등록된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성전환 법을 통과시켰다.

국제 사회에서는 성별 정정을 자기 결정권 문제로 보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추세다. 지난 2월 핀란드 의회는 18세 이상 트랜스젠더가 자기 선언 과정만으로 법적 성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페인도 같은해 12월 16세 이상이면 의료진 감독 없이 성별 정정을 허용하는 트랜스젠더 권리 법안을 통과시켰다.

박에디 활동가는 “성별정정 전에는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 월세를 계약할 때, 마트에서 회원가입할 때처럼 일상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성과 사회적 성이 달라 불편한 점이 많았다. 성별정정 후에는 원하는 성별로 불릴 수 있게 돼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성별정정의 의미를 설명했다.

리나 활동가는 “나화린 선수처럼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만 성별정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존재한다”면서도 “보편적 인권에서 봤을 때 수술은 언제까지나 개인의 선택의 영역으로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욱 위원장 또한 ”강제로 위험을 부담하지 않아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바라고 있다. 성기수술을 하지 않아도 나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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