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전 개막
12월31일까지 리움미술관
암 투병 딛고 작업 지속
신작 포함 130여 점 한자리에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전시장 곳곳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산의 사계, 바닥과 벽으로 펼쳐지는 낮과 밤,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귀.... 하나하나 존재감이 강하면서도 절제된 느낌의 작품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정경이 단아하고 아름답다. 작품과 작품 사이를 산책하듯 거닐어 보면 또 새롭다.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강서경(46)이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Suki Seokyeong Kang: Willow Drum Oriole’을 연다. 신작 포함 총 130여 점을 모았다. 작가의 미술관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그만큼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전통에서 찾은 개념과 미학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재해석해 왔다.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액티베이션)까지 다채롭지만, 이 모든 게 ‘회화’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다.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2019),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2018)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베니스 비엔날레(2019), 리버풀 비엔날레(2018), 광주비엔날레(2018, 2016) 등에 참여했다. 2013년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2018년 아트바젤 발루아즈 예술상을 받았다.

강서경 작가. ⓒ리움미술관 제공
강서경 작가. ⓒ리움미술관 제공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참여 등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강 작가는 그간 출산과 암 투병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풍성하지만 희게 센 머리로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즐겁게 작업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릴 때부터 옛 기록과 그림들을 보면서 그때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그렸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여전히 그런 고민을 하고 혼자 이것저것 시도하며 풀어내는 중입니다.”

1층 전시장 중앙엔 작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산’ 연작이 있다. 가을 단풍을 닮은 주홍빛과 적갈색의 실, 겨울 설경을 닮은 흰 실, 비단, 금속체인 등 다채로운 재료의 물성이 인상적이다. 딱딱함과 부드러움, 채움과 비움이 공존하는 강서경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쪽에는 알루미늄을 구부리고 표면을 두드려 만든 거대한 모빌들이 있다. 산의 능선, 해와 달, 사람 모습 같기도 하다.

전시장 1층에서 볼 수 있는 ‘산’ 연작. 산의 사계를 표현했다.  ⓒ이세아 기자
전시장 1층에서 볼 수 있는 ‘산’ 연작. 산의 사계를 표현했다. ⓒ이세아 기자
산 - 가을 #21-01, 2020-2021, 약 128.3(H)×97.8(W)×40(D)cm, 철에 도색, 실, 체인, 바퀴. ⓒ김상태 강서경 스튜디오 제공
산 - 가을 #21-01, 2020-2021, 약 128.3(H)×97.8(W)×40(D)cm, 철에 도색, 실, 체인, 바퀴. ⓒ김상태 강서경 스튜디오 제공
정井 - 버들 #22-01, 2020-2022, 가변 크기, 철에 도색, 나무 프레임, 거울에 각인, 염색된 왕골, 실, 볼트, 가죽 조각, 바퀴, 나무 둥치. ⓒ김상태 강서경 스튜디오 제공
정井 - 버들 #22-01, 2020-2022, 가변 크기, 철에 도색, 나무 프레임, 거울에 각인, 염색된 왕골, 실, 볼트, 가죽 조각, 바퀴, 나무 둥치. ⓒ김상태 강서경 스튜디오 제공

‘정井’ 연작은 조선 시대 유량악보인 정간보(井間譜)의 ‘우물 정(井)’자 모양의 사각틀에 착안해 만들었다. 캔버스 프레임, 창틀 같기도 해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 작가는 전통 한국화 방식대로 장지나 비단을 수평으로 펼쳐 먹과 색을 겹겹이 스미게 해 반투명한 물감층의 흔적을 쌓아 올렸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모라’(Mora)다. 탑처럼 쌓아 3차원 조각 형태로, ‘정井’의 프레임과 결합해 다양한 변형태로도 제시한다.

전통 돗자리인 화문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자리’ 연작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1인 궁중무 ‘춘앵무(春鶯舞)’는 화문석을 깔고 추는 춤이다. 작가는 무대 공간으로서의 화문석에서 나아가 사회 속 개인의 영역을 고찰하고, 회화 매체를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하는 조형적 기제로 활용하기도 한다. 

자리 #22-01, 2021-2022, 약 596.2(H)×351(W)×24(D)cm, 철에 도색, 실,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와이어.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자리 #22-01, 2021-2022, 약 596.2(H)×351(W)×24(D)cm, 철에 도색, 실,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와이어.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그랜드마더타워, 2017-2019, 약 131.5(H)×42(W)×65.5(D)cm, 철에 도색, 실, 알루미늄 와이어, 볼트, 가죽 조각, 바퀴. ⓒ이세아 기자
그랜드마더타워, 2017-2019, 약 131.5(H)×42(W)×65.5(D)cm, 철에 도색, 실, 알루미늄 와이어, 볼트, 가죽 조각, 바퀴. ⓒ이세아 기자

‘그랜드마더타워’는 작가가 사랑했던 할머니의 말년의 모습을 표현한 작업이다. 혼자서는 바로 설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서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금속 골조와 실, 가죽 등을 이용해 조각으로 나타냈다. 인간의 연약함 속 강인함을 기리듯 가느다란 골조 위에 색색의 실을 촘촘히 감았고, 그렇게 서로를 의지해 균형을 유지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관계에 기대어 삶을 유지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았다.

이외에도 ‘좁은 초원’, ‘둥근 유랑’ 등 기존 연작에서 발전된 다양한 작업과 ‘산’, ‘귀’, ‘아워스’, ‘기둥’, ‘바닥’ 등 새로운 조각 설치·영상 작업을 볼 수 있다.

강서경의 작업은 작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직접 이동하고 배치할 수 있는 무게와 크기로 만들어진다. ‘좁은 초원’은 키가 작은 사람 같기도, 작은 기둥 같기도 하다. 사진은 ‘좁은 초원 #20-05’, 2020, 약 159(H)×50.3(W)×48.8(D)cm, 조합된 구조물: 철에 도색, 실, 나무 둥치, 가죽 조각, 못, 나무  바퀴. ⓒ김상태 강서경 스튜디오 제공
강서경의 작업은 작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직접 이동하고 배치할 수 있는 무게와 크기로 만들어진다. ‘좁은 초원’은 키가 작은 사람 같기도, 작은 기둥 같기도 하다. 사진은 ‘좁은 초원 #20-05’, 2020, 약 159(H)×50.3(W)×48.8(D)cm, 조합된 구조물: 철에 도색, 실, 나무 둥치, 가죽 조각, 못, 나무 바퀴. ⓒ김상태 강서경 스튜디오 제공
버들 북 꾀꼬리, 2021-2023, 15분 20초, 3채널 비디오, 컬러, 소리 사진. ⓒ강서경 스튜디오 제공
버들 북 꾀꼬리, 2021-2023, 15분 20초, 3채널 비디오, 컬러, 소리 사진. ⓒ강서경 스튜디오 제공

로비에선 신작 영상 ‘버들 북 꾀꼬리’를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의 작업들을 영상으로 촬영해 움직임과 소리를 더했다. 제목 ‘버들 북 꾀꼬리’는 전통 가곡 이수대엽(二數大葉)에서 빌려온 것으로, 마치 실을 짜듯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어내던 선인들을 떠올리며 지었다고 한다.

곽준영 전시기획실장은 “이번 전시는 미술관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헤쳐 모인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연대의 서사를 펼친다. 강서경 작가는 이를 통해 나, 너, 우리가 불균형과 갈등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온전한 서로를 이뤄가는 장(場)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가 후원한다. 12월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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