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반대집회에도 "철거만이 답"
‘세상의 배꼽’은 철거 후 별도 보관하고
‘대지의 눈’은 철거와 동시에 파쇄할 듯

기억의 터에 설치된 임옥상 작가의 작품을 철거하기 위해 준비 중인 포크레인. ⓒ이하나 기자
기억의 터에 설치된 임옥상 작가의 작품을 철거하기 위해 대기 중인 포크레인. ⓒ이하나 기자

서울시가 4일 오전 중구 남산 '기억의 터'에 있는 임옥상 화가의 작품 철거를 강행한다. 철거를 반대하는 여성·평화단체와 시민들은 "제대로된 논의 없이 철거를 관행하는 것은 여성 인권을 짓밟는 것이자 여성 지우기"라고 강력 비판하고 있다.

시는 이날 대변인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철거만이 답"이라고 밝혔다.

임 작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지난 8월 16일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서울시는 임 작가가 유죄 판결을 받자 기억의 터에 설치된 그의 작품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을 비롯, 시립시설에 있는 임 작가 작품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가의 작품을 유지·보존하는 것이 공공미술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억의 터 설립추진위원회는 서울시의 철거 방침에 추진위의 작품 소유권, 공법상 약정에 따른 권리를 침해하는 위법 행위라며 지난달 31일 철거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이를 각하했다.

시는 "남산 기억의 터는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자를 기리고 기억하기 위한 추모의 공간"이라며 "의미 있는 공간에 성추행 선고를 받은 임옥상씨의 작품을 그대로 남겨 두는 것은 생존해 계신 위안부뿐만 아니라 시민의 정서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추진위는 편향적인 여론몰이를 중단하고 서울시가 하루빨리 임씨 작품을 철거할 수 있게 협조해달라"고 촉구했다.

시는 시민 대상 여론조사도 언급했다. 응답자의 65%가 임씨의 작품을 철거해야 한다고 답했고, 위원회가 주장하는 '조형물에 표기된 작가 이름만 삭제하자'는 의견은 24%였다.

시는 "작가 이름만 가리는 것은 오히려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추진위의 이런 행동 자체가 기억의 터 조성 의미를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위안부는 물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억의 터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공간의 의미를 변질시킨 임씨의 조형물만 철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는 작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국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대체 작품을 재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억의 터’ 조성 모금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서울시는 ‘기억의 터’의 장소성과 역사성, 시민참여의 가치를 외면한 채 성급한 결정을 내려선 안 된다”며 철거결정 재고를 요구해왔다.

남산 ‘기억의 터’에 있는 조형물들이 임씨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 집단의 의지를 모아 조성한 집단창작품이라는 이유때문이다. ‘기억의 터’는 서울시가 2016년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고 추모하자는 취지에서 조성한 공간이다. 여성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설립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약 2만명의 시민 모금이 이뤄졌다. 이들은 “임옥상의 성추행 사건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임씨가 설계를 맡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은 집단 창작품인만큼 철거를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억의 터에 설치된 조형물 '세상의 배꼽'에는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 화백의 그림과 서명이 새겨져있다.  ⓒ이하나 기자
기억의 터에 설치된 조형물 '세상의 배꼽'에는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 화백의 그림과 서명이 새겨져있다. ⓒ이하나 기자
기억의 터에 설치된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의 요청으로 ‘위안부 증언록’에서 발췌한 할머니들의 증언과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명단,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끌려가는 소녀’가 새겨져있다.  ⓒ이하나 기자
기억의 터에 설치된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의 요청으로 ‘위안부 증언록’에서 발췌한 할머니들의 증언과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명단,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끌려가는 소녀’가 새겨져있다. ⓒ이하나 기자

실제로 기억의 터에 설치된 ‘세상의 배꼽’에는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씨의 그림과 서명이 새겨져 있다.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의 요청으로 ‘위안부 증언록’에서 발췌한 할머니들의 증언과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명단,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끌려가는 소녀’가 새겨져있다. 

추진위에 따르면 서울시는 '세상의 배꼽'은 철거 후 별도로 보관하고, '대지의 눈'은 철거와 함께 파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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