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간 대화를 통한 성평등한 세상 만들기] 7강 2부

창조 이야기를 누가 처음 묻게 되었나? 이 장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신비의 영역이고 종교적 질문이다. 종교간의 대화 7번째의 마지막 시간에 유숙열(페미니스트 전문출판사 이프북스) 대표는 ‘한국 여성들은 어떻게 한국‘여자’가 되었나‘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내 이름은 유복녀/ 드라큐라의 키스를 기다리는/ 프랑켄슈타인이죠.
구태여 해석을 하자면/ 죽은 자의 사랑을 원하는/ 괴물이란 뜻이죠.

그는 도발적인 시를 읊으며 자신의 인생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유복녀로 태어났고,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가 새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왕진하러 갈 때도 어린 숙열의 손을 잡고 다녔지만 성은 달랐다. 아버지인데 아버지가 아닌 상황과 일부종사하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사회의 낙인은 유 대표의 가슴에서 가족, 결혼제도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남았다. 그는 1980년대 폭력의 시대에 이근안의 고문으로 어쩌면 또 다른 박종철이 될 수 있는 상황을 거치며 해직 기자가 됐다. 그때 만난 검사는 청년 숙열에게 언론의 자유를 찾지 말고 시집이나 가라는 조롱을 했다. 분노와 혼돈의 감정 속에 유 대표는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물었다. 이 생생한 기억을 안고 유 대표는 미국 뉴욕의 헌터칼리지 학부 과정과 뉴욕시립대에서 여성학 석사 학위를 마치며 질문을 풀어갔다. ‘한국여자’이라는 정체성이 절실해진 외국에서 ‘한국여성은 어떻게 ‘여자’ 되는가’라는 연구를 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느 보봐르의 주장에 정면으로 응답한 것이다. 

강연하는 유숙열 이프북스 대표. ⓒ최형미 여성학자
강연하는 유숙열 이프북스 대표. ⓒ최형미 여성학자

남자들의 국가 

유 대표는 한국여자가 만들어지는 것을 추적하기 위해 단군신화에 주목했다. 고조선은 환인, 환웅에 의해 세상이 만들어지고 단군에 의해 나라가 세워진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과 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예순여 가지 일을 맡아서,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고 기록한다. 국가 인류학자 베네디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국가는 형제애(brotherhood)로 만들어졌다는 주장한다. 고조선 건립도 남자들의 프로젝트였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국가에서 여자들은 어디 있고, 어떤 존재란 말인가?

곰, 여자가 되다

단군신화에서 남자는 신의 현현이지만 여자는 동물이 변해 된 것이다. 신채호는 이 신화가 여성을 차별했던 가부장적 불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고대에는 그럴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곰과 호랑이 신화를 혹자는 두 부족의 갈등 이야기로 해석하며, 인내심 많은 곰이 여자가 되었다고 알고 있다. 헌터칼리지에서 오드리 로드에게 시 쓰기 훈련을 받은 유 대표는 단군신화를 촘촘하게 재해석했다. 그는 질문한다. 왜 곰과 호랑이는 21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도록 했나? 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나?

유 대표는 그들이 먹은 쑥은 여성의 생리불순을 치료하는 약재이고 마늘은 성적 에너지를 강화시키는 식품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곰과 호랑이는 짐승의 상태에서 성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한다. 21이나 100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을 때 지키는 의례와 관련이 있다. 즉 두 짐승은 아이를 낳는 존재로 준비되고 있었다. 단군신화속의 여자의 탄생은 성적 대상으로, 그리고 아이를 낳는 존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햇빛은 우리나라 기원신화에서 종종 하늘의 자손을 잉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곡식에 닿은 햇빛의 상징은 하늘과 땅의 교접을 의미하고 남자와 여자의 성적인 만남과 비견할 수 있다. 햇빛을 보지 말라는 금기는 처녀성이나 정절에 대한 요구로 해석된다. 곰은 가부장제 사회의 요구에 순치했지만, 호랑이는 금기를 깨버리고 만다. 단군신화의 호랑이의 실패는 여성이 성적인 욕구를 표현할 때 실패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설파한 것이다.

유 대표는 또다시, 왜 곰만이 여자의 몸을 얻었을까? 라고 질문했다. 왜 곰과 곰이나 호랑이와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와 곰이 등장하는가? 왜 호랑이가 실패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곰보다 더 익숙한 동물이다. 호랑이는 숭배 받은 동물일 뿐 아니라 삼국유사에 26번이나 등장한다. 곰은 겨우 8번 등장하는데. 호랑이는 산신령의 상징이다. 여자가 못된 호랑이는 이후 지속해서 남성으로 해석된다. 가부장제 사회는 신령하고 강하고 권위 있는 호랑이가 여자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유 대표는 곰과 호랑이의 대결 구도로 짜인 건국 신화는 한국 여성들에게 모성을 강요하고 성을 부정하는 가부장의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묻는다. ‘성이 없이 어떻게 모성이 가능할까?’ 여자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이 딜레마 속에서 반쪽의 여성성을 구현하는 존재가 될 것을 요구받았다고 분노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1896년작 '판도라'.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1896년작 '판도라'.

이브가 만들어진 이야기

유 대표는 서구의 여성 창조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경에는 두 가지 창조설화가 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느님을 닮은 인간 이야기가 나오고, 2장에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첫 번째 창조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권력과 영광을 누리지만 두 번째 이야기에서 여자가 만들어진 유일한 이유는 남자의 고독이었다. 그녀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 성경은 여자가 세상에 죄와 죽음을 가져왔고, 인류 타락을 촉발시켰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갈비뼈에서 여자를 만드는 것은 얼핏 보면 여자가 아이를 낳는 모습과 유사한데 이것은 마치 산파인 신의 도움을 받아 남자가 여자를 낳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을 저주로, 남편에 종속되는 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표현하며, 힘써 일하는 것을 타락한 인간의 벌로 묘사함으로 결국 노동에 대한 혐오까지 드러내고 있다. 유숙열 대표는 성서의 이브 이야기에서 여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여성의 종속과 성적낙인, 재생산 능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여성혐오적 텍스트라고 비판한다.

릴리스, 최초의 페미니스트

성경이 모든 여성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다. 외경에는 아담의 첫 부인 릴리스가 존재한다. 아담과 동등하게 창조된 여성은 남성 밑에 깔리는 속칭 선교사 포지션을 거부하고 여성상위 포지션을 주장하고 아담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대신화는 인류 최초의 여자 릴리스가 아담에게 복종하지 않고 신으로부터 벌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의 벌은 죽을 운명을 타고난 아이를 낳고, 살아있는 동안 남자를 유혹하는 음탕한 여자이자 끔찍한 유아살해자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 마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유 대표는 릴리스야 말로 페미니즘의 깃발을 든 최초의 여성이라고 평가한다. 자신의 욕망을 말할 수 있는 여자의 탄생이다.

판도라 신화

판도라 신화는 이 세상의 모든 질병과 악이 어디서 왔을까를 설명한다. 필자는 유대표의 강의를 들으며 이것이 여성창조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원전 8세기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의 서사시 “신들의 기원, 그리고 노동과 하루하루(Theogony and Works and Days)" 에 의하면 제우스는 하늘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에게 독수리가 심장을 파먹은 벌을 주고도 분이 안풀려 보복하기 위해 여자를 만들라고 명령한다. ’모든 남자들의 가슴을 매혹시켜 그들을 파멸로 이끌 악을 선물하라. 흙과 물을 섞어 사랑스러운 처녀를 빚었고, 그에게 직물짜기 기술도 가르치고 아름다움과 우아함과 찌르는 욕망 그리고 신경을 갉아 먹는 열정을 채워 넣어라. 여기에 암캐 같은 마음과 도둑 같은 본성을 집어넣으라‘고 명령한다. 판도라는 일하는 남자들에게 재앙으로 주어진 선물이기에 판도라라고 불렀다. 제우스의 의지로 남신과 여신이 함께 만든 것이 여자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 여자가 지상에 내려오자 아무런 악도 없었던 인간 세상에 악이 생기고 운명을 잡아채는 고통스러운 노동이나 질병 등 온갖 종류의 질병이 나타났다. 그리스의 인간여자의 창조 이야기도 여성혐오로 가득하다. 후에 유대교와 기독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부장제의 기원을 썼던 거다 러너(Gerder Lerner)처럼 유 대표는 가부장제가 어떻게 여성을 열등하게 만들었는가를 신화 분석을 통해 조망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여자의 운명이고 여자의 속성이라고 말한다.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그는 페미니스트북 출판사 이프를 운영한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공주 이야기』,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등 많은 책을 통해 가부장제가 만든 신화의 허구를 폭로하고 새로운 신화 쓰기를 펼치고 있다. “유숙열 선생님과 오래전에 함께 일한 적이 있어요. 안티미스코리아 대회에 참여도 했고요. 정말 쌈도 잘하고 욕도 잘하고 아름다웠고 멋있었어요.” 참가자가 내게 슬쩍 건넨 말이다. 그는 지금도 멋있고 파워풀하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종종 그에게 기대어 쉬기도 한다. 새로운 신화의 산파인 그의 주변에서 여전히 여성 창조의 이야기가 다시 쓰여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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