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 5주년 보고회
감독·스태프 등 위력 성폭력 다수
경력 불이익·영화제작 피해 우려해
성폭력 말 못하는 피해자 많아
제작 현장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화 등
유의미한 제도적 변화도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 5주년 보고회’ 현장. 든든 센터장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 영화평론가 조혜영 운영위원, 영화 ‘애프터 미투’의 이솜이 감독,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세아 기자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 5주년 보고회’ 현장. 든든 센터장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 영화평론가 조혜영 운영위원, 영화 ‘애프터 미투’의 이솜이 감독,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세아 기자

영화계 성폭력 고발 운동 이후 5년, 위계를 악용한 성폭력은 여전히 영화 제작 현장을 비롯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가해자는 영화감독·스태프, 피해자는 스태프·배우인 경우가 많다. 경력 불이익이나 영화 제작에 잡음을 빚을까 우려해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 5주년 보고회’에서 나온 분석이다. 2018년 3월 개소한 든든은 영화계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지원, 성평등 확산 활동에 힘써 왔다. 2016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계기로 (사)여성영화인모임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신설했다. 이날 든든 센터장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 영화평론가 조혜영 운영위원, 영화 ‘애프터 미투’의 이솜이 감독,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든든이 접수한 성희롱·성폭력 상담 통계 분석.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든든이 접수한 성희롱·성폭력 상담 통계 분석.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든든이 접수한 성희롱·성폭력 상담 통계 분석.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든든이 접수한 성희롱·성폭력 상담 통계 분석.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든든이 접수한 성희롱·성폭력 상담 건수는 258건이다. 그중 76.7%(198건)은 단순 상담을 넘어 사건처리 중이거나 피해자가 관련 지원을 신청했다. 든든은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소송(82건)이나 합의 대리(30건) 등도 지원해 왔다.

피해 유형별로 보면 총 205건 중 강제추행(58건), 성희롱(36건), 성폭행(강간·유사강간·강간미수 등, 28건),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및 유포(7건) 같은 강력범죄가 많았다(약 63%). 2차 피해도 58건에 달했다. 데이트폭력, 아웃팅, 직장 내 괴롭힘 등 사례도 있었다. 주로 영화제작 단계에서 발생한 피해(61건, 약 30%)가 많았다.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든든이 접수한 성희롱·성폭력 상담 통계 분석.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든든이 접수한 성희롱·성폭력 상담 통계 분석.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가해자(총 194명)는 감독(40명, 약 21%), 스태프(14명, 약 7%) 등 영상제작 종사자(71명)가 많았다. 배우(16명), 교수나 강사(12명), 회사나 단체의 상급자(9명), 영화제 관계자(7명), 문화예술계 종사자(4명), 평론가(3명)도 있었다. 영화 관련 학과 대학생, 수강생, 일반인 등 ‘기타’로 분류된 가해자도 20명에 달했다.

피해자(총 142명)는 영상제작 스태프(30명)가 가장 많았다. 이어 배우(29명), 대학생 또는 수강생(17명), 영화제 관계자(11명), 회사나 단체 소속(10명), 작가(6명), 감독(5명), 강사(1명) 등 순으로 많았다. 영화 외 분야 예술인, 일반인 등 ‘기타’로 분류된 피해자는 33명이다.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든든이 접수한 성희롱·성폭력 상담 통계 분석.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든든이 접수한 성희롱·성폭력 상담 통계 분석.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2차 가해도 심각하다. 든든 상담 사례로 파악한 2차 가해자 수는 52명이다. SNS를 활용한 집단 따돌림 방식의 2차 가해 사례도 늘고 있다. 심재명 센터장은 “집단 창작 특성상 연쇄적인 2차 가해가 발생하기 쉽다. 든든이 5년 넘게 지원하는 피해자도 있다”며 “특히 성별 불균형한 단위에서 2차 가해가 많이 발생한다. 조직 내 성 인식 변화와 다양성이 2차 가해 예방의 열쇠”라고 말했다.

여전히 영화계는 강력한 위계와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곳이고, 어리거나 경력이 많지 않은 피해자들은 낙인과 2차 피해, 경력단절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피해를 고발하길 꺼린다. 상업영화 현장의 피해 신고율이 독립영화보다 더 낮은데,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영화가 자신의 신고로 엎어지거나 손해를 볼까 우려하는 피해자들이 많아서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최근 수년간 영화 제작 현장에서의 피해 신고가 줄었는데, 코로나19 영향으로 한동안 영화 제작이 주춤했기 때문인지, 구조적 영향인지 더 살펴볼 필요도 있다.

든든은 그간 법률 지원한 성희롱·성폭력 사건 중 피해자의 동의를 받아 각색해 상황에 따른 지원 내용과 결과 등을 공유할 계획이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든든은 그간 법률 지원한 성희롱·성폭력 사건 중 피해자의 동의를 받아 각색해 상황에 따른 지원 내용과 결과 등을 공유할 계획이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미투’ 운동은 영화계에도 여러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왔다. 이제 영화 제작 전 성폭력 예방교육은 필수다. 2021년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이 개정돼 생긴 변화다. 지난 5년간 든든이 실시한 성폭력 예방교육은 총 652회, 이수자는 1만6671명이다. 올해도 177회 이상 교육을 열 예정이다. 든든은 영화산업 내 성폭력 예방교육 표준강의안과 해설서도 매년 개발, 공개해 왔다.

“이제는 모든 영화현장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한다. 2022년 시행된 예술인권리보장법엔 ‘차별금지’에 준하는 조항이 들어있다. 유럽은 수십 년간 노력해서 이룬 변화를 한국은 수년 만에 이뤘다. 물론 좋은 제도에만 의지해선 안 된다. 남은 과제가 많다.”(조혜영 운영위원)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남성 영화인들이 매일 관련 기사를 검색하고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는 모습을 보고 아예 의식하지 않던 것을 의식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성주의나 여성 중심 서사를 갖춘 한국영화와, 그런 영화에 대한 지지·응원도 늘었다. (...) 그럼에도 성폭력 고발은 끝없는 싸움이고 법으로 다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커리어에 타격을 받고 고립되는 피해자들을 도울 실질적 지원 대책도 필요하다.” (심재명 센터장)

“많은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폭력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그 공동체 전체가 상처받는다.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 ‘치유’를 중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성폭력의 사법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상담은 거의 요식행위에 가깝고 신고, 고소, 소송전 양상을 보인다. 결국 사람과 사람 간 문제인데 사법절차만 밟는 게 만능일까. 고민할 일이다.” (이나영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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