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인권위 권고 후 사상검증 실태조사 시행
2020·2021년엔 설문 있었으나 2022·2023년 삭제
게임콘텐츠 지원사업서 종사자 권익보호는 단 1점
콘텐츠성평등센터 ‘3년간 게임업계 고충 접수 0건’
“페미니스트 낙인찍히면 복귀 어려워…지원사업 절실”

게임 '림버스 컴퍼니' 제작사 '프로젝트 문'의 입장문 일부. ⓒ프로젝트 문 계정
게임 ‘림버스 컴퍼니’ 제작사 ‘프로젝트 문’의 입장문 일부. 사진=프로젝트 문 계정 캡처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 개발에 참여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 계약 종료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게임업계 내 여성 종사자들이 이른바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으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사상검증에 대한 실태조사를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층 조사 위해 ‘사상검증’ 문항 삭제?… 실제로는 후속 조치 없어

왼쪽은 2020/2021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설문 문항. 오른쪽은 2022/2023 설문 문항 ⓒ문화체육관광부
왼쪽은 2020·2021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설문 문항. 오른쪽은 2022·2023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설문 문항. 사진=‘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 캡처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노동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매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게임 이용자들에 의한 종사자 사상검증 이슈(페미니즘 등)’의 심각성을 묻는 항목이 있었다. 2020년 조사결과를 보면, ‘게임 이용자들에 의한 종사자 사상검증 이슈(페미니즘 등)’에 응답자 16.5%가 심각(매우 심각 6.2%, 심각 10.3%)하다고 답했으며, 특히 여성 종사자 및 50인 이하 소규모 게임사의 종사자들은 비교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10일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과 2023년에는 위 항목이 빠졌으며 문체부가 실시하는 다른 게임업계 조사에서도 이용자에 의한 사상검증 문제를 다루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2022년 실태조사 연구를 맡은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체부에서 지난해부터 게임 등 콘텐츠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성평등 문화를 묻는 조사를 따로 진행한다고 했다. 해당 조사에서 사상검증 관련 질문이 나올 것으로 보고 설문 개수를 줄이는 과정에서 해당 문항을 삭제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게임업계 성평등 문화와 관련해 ‘콘텐츠산업 게임·음악산업 분야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연구(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 산업 성평등 실태분석을 통한 지원방안 개선 및 교육 개발 연구(한국콘텐츠진흥원)’ 두 차례 연구가 진행됐다.

두 연구 모두 기업·산업 내 성차별 전반을 다루고 있으나,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있었던 ‘게임 이용자들에 의한 종사자 사상검증’ 항목은 포함하지 않았다. 

문체부는 실태조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해당 문항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고 관련 연구에는 심층 면접과 같은 질적 연구가 보다 적합하다는 내부 논의가 있어 문항 개수를 줄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당 문항을 삭제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삭제 이후 연구 우선순위와 예산 등의 이유로 사상검증에 대한 질적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추후 계획된 바도 없어 기초적인 실태조사도 시행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부당해고·성폭력 접수 ‘0건’… 권익보호 기업에 주는 점수는 ‘1점’ 실효성 지적도

한국콘텐츠진흥는 2021년부터 게임콘텐츠 제작지원 기업 선정 시 3차 평가(발표면접)에서 고용인력의 권익보호 규정(성적, 종교적, 사회, 도덕적 등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피해 방지와 권익 보호를 위한 규정 수립과 준수 명시)을 둔 기업에 점수를 1점(100점 만점) 부여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1년부터 게임콘텐츠 제작지원 기업 선정 시 3차 평가(발표면접)에서 고용인력의 권익보호 규정(성적, 종교적, 사회, 도덕적 등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피해 방지와 권익 보호를 위한 규정 수립과 준수 명시)을 둔 기업에 점수를 1점(100점 만점) 부여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문체부는 게임업계 여성 종사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대책으로 콘텐츠성평등센터 운영 및 게임콘텐츠 제작지원 기업 선정 권익보호 규정 기업에 점수를 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대책이 종사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업계 종사자가 사상검증으로 부당해고를 당하거나 업계에서 성폭력을 당했을 때에는 콘진원 산하기관인 콘텐츠성평등센터에서 상담 및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최근 3년 동안 성평등센터에 게임업계 종사자가 도움을 요청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에 종사자 측은 물론이고 문체부도 성평등센터가 게임업계 종사자들에게 효능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엄윤택 콘진원 산업정보팀 부장은 “성희롱·성폭력 및 부당해고 등에 휘말린 피해자를 지원하고자 성평등센터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면 해바라기센터 등 타 기관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여성 종사자들을 지원해온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성평등센터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종사자들이 많고, 게임업계 내 페미니스트에 대한 낙인이 워낙 심해 권리구제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성평등센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콘진원은 2021년부터 게임콘텐츠 제작지원 기업 선정 시 3차 평가(발표면접)에서 고용인력의 권익보호 규정(성적, 종교적, 사회, 도덕적 등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피해 방지와 권익 보호를 위한 규정 수립과 준수 명시)을 둔 기업에 점수를 1점(100점 만점) 부여하고 있다. 게임사 자체적으로 권익보호 규정을 만들게 해 이용자의 사상검증으로부터 종사자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종사자 입장에서 이 같은 점수가 기업에 실제로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김환민 IT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평가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등락이 바뀔 수 있다”며 “심사과정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1점을 부여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엄 부장은 “실제 사업에 선정된 기업들의 점수를 보면 근소한 차이로 등락이 결정된다. 1점이 작은 점수로 보여도 실질적으로 기업에게 권익보호 규정을 두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실제 합격 기업들의 점수와 권익보호 규정으로 인한 점수가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문체부가 종사자 보호 위해 적극적인 조치 취해야”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명백한 인권 침해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한 활동가는 '정부는 게임업계 창작노동자 보호방안 마련하라' 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지난 2020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명백한 인권 침해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한 활동가는 ‘정부는 게임업계 창작노동자 보호방안 마련하라‘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여성신문

지난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문체부와 콘진원에 업계에서 여성 종사자들을 배제하는 관행에 대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2010년 중반부터 일부 게임 이용자들이 SNS에 페미니즘 관련 의견을 표한 게임업계 여성 종사자들을 공격했고, 이에 압박을 느낀 게임사가 여성 종사자들과의 계약을 끊는 일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자 정부부처에 대책을 주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업계에서 페미니스트 배척은 지속됐다. 2021년에는 한 여성 면접자가 국내 대기업 게임사 면접에서 ‘당신이 결정권자라면 SNS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이슈가 된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게임에서 지우겠냐 안 지우겠냐’며 압박 질문을 받아 사상검증 논란이 일었다.

이같은 문화는 실태조사에서 사상검증 문항이 빠진 2023년 현재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 일부 이용자들 사이에서 남성 캐릭터의 의상은 노출이 있는데 여성 캐릭터의 의상은 노출이 없다’면서 ‘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메갈(페미니스트)일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은 특정 일러스트레이터의 미성년자 시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내용이 담긴 개인 SNS 행적을 문제 삼았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입사 전 해당 게시물들을 삭제했으나, 일부 이용자들은 삭제된 SNS 기록물을 찾아보는 방법을 통해 일러스트레이터의 행적을 공격했다.

지난달 25일 10여명의 이용자들은 게임 운영 전반 및 일러스트레이터 사건과 관련, 대표와 면담하겠다며 본사 사무실로 찾아가기도 했다. 이에 해당 게임 제작사 ‘프로젝트 문’ 김지훈 대표는 같은날 밤 입장문을 내고 “사내 규칙에 대한 위반이 발생한 건이기에 논란이 된 직원분과의 계약은 종료될 예정”이라며 “메인 UI에서 해당 작업자 분의 이미지는 시간을 들여 교체해 가는 것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사상검증으로 인한 부당해고’라는 비판이 나오자 김 대표는 재차 입장문을 내고 “사상검증, 부당해고가 아니었으며, 이에 대하여 법률적인 판단과 자문을 받았다”라면서 “회사 측은 논란이 된 작업자분에게 사상적인 이유를 문제 삼지 않았고, 더불어 해고 통보를 내리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여성신문은 사내 규칙 및 구체적인 계약 해지 경위에 대해 프로젝트 문과 김 대표에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김유리 조직국장은 반복되는 페미니스트 대상 ‘마녀사냥’이 일부 게임 이용자 사이에서 하나의 놀이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림버스 컴퍼니 사건의 경우 이용자들이 집단으로 회사에 찾아가는 등 보다 조직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이용자들이 개인이나 회사를 공격하는 행위를 제지할 수 있는 보호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환민 부위원장은 문체부가 게임 산업을 진흥시키려고만 했지 종사자들의 고충은 외면해왔기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프로젝트문에 정부 예산이 들어가 회사가 성장했는데 문체부는 그들이 노동법을 위반했는지, 이 사건이 게임문화에 어떤 영향을 초래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게임이 문화예술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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