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미래연구원, 15~59세 남녀 2300명 조사
2030세대 비혼의향 43%, 비출산의향 47%, 성별·세대·계층 간 인식차이 커
경력 단절 경험 비율 여성 74%, 남성 13%, 여성 평균 경력 단절 기간 6년

직장 만족도에 따른 결혼·출산 의향 그래프 ⓒ한반도미래연구원
직장 만족도에 따른 결혼·출산 의향 그래프 ⓒ한반도미래연구원

우리나라의 지난해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인 24만9000명을 기록한 가운데, 올해 출생아 수는 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7일 한반도미래연구원(이하 한미연)의 발표 결과를 살펴보면 2012년 48만5000명 수준이던 출생아 수가 10년 사이 반토막 났다.

최근 많은 전문가가 저출산 원인 중 하나로 청년 비혼 문화를 지적한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2030세대들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며 출생률이 낮아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저출산 현상을 청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불안과 좌절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저출산 현상은 청년세대가 자초한 ‘문제’가 아니라 청년세대에게 나타난 ‘결과’” 라고 덧붙였다.

한미연은 결혼·출산에 대한 2030세대의 인식을 알아보고자 전문 리서치업체 엠브레인(대표 최인수)과 함께 올해 심층 조사한 후 이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전국 15~59세 남녀 2300명을 대상으로 정량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히 신뢰도 향상을 위해 결혼·출산 의향, 성별을 기준으로 6개 그룹의 표적 집단을 구성한 후 사전 심층 면접(Focus Group Discussion)을 통해 설문 문항을 도출했으며 다시 이를 여러 차례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20~39세 미혼 청년 10명 중 4명은 결혼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미혼남성의 비혼 응답률은 36.4%, 미혼여성은 50.2%로 성별에 따라 13.8%p 차이가 나타났다.

세대별로 보면, 20대 남성은 33.2%, 여성은 46.1%가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지만, 30대 남성의 비혼 응답률은 41.0%, 여성은 56.6%로 나타났다. 즉 30대의 비혼 의향이 전반적으로 20대보다 높고 성별 간 인식 차이도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응답한 30대 여성은 16.3%로 같은 연령대 남성 응답률인 8.7%보다 2배 정도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이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유로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서(42.6%)’, ‘결혼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40.8%)’ 순으로 응답해 경제 상황과 현실적 조건을 비혼 선택의 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중복응답 허용). 반면, 여성은 ‘혼자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46.3%)’, ‘다른 사람에게 맞춰 살고 싶지 않아서(34.9%)’ 순으로 응답했으며, ‘가부장제·양성 불평등에 대한 거부감(34.4%)’이 남성(8.2%)보다 두드러지게 높게 나타나 결혼 이후 변화하는 삶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결혼이 직업적 성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고 응답한 여성 비율이 69.1%로 남성(38.6%)보다 30%p 이상 높게 나타났다.

출산 의향에서도 성별 간 차이가 드러났다. 20~39세 미혼 응답자 중 47%가 자녀를 낳을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가운데, 남성의 비출산 응답 비율은 38.5%, 여성은 56.8%로 18.3%p 차이가 나타났다. 성별에 따른 비출산 의향의 차이는 비혼 의향 차이보다 4.5%p 높아 출산 관련 남녀 인식격차가 결혼보다 큰 것으로 확인됐다. 연령대에 따라 비출산 의향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으나 여성의 경우 ‘꼭 자녀를 낳을 것이다/ 낳고 싶다’고 응답한 30대 비율(4.7%)이 20대 응답률(9.3%)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출산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 남성의 경우 ‘자녀 교육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서(43.6%)’, ‘자녀를 돌봄·양육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41.5%)’ 순으로 응답했으며, 여성은 ‘육아에 드는 개인적 시간·노력을 감당하기 어려워서(49.7%)’, ‘자녀를 바르게 양육할 자신이 없어서(35.1%)’ 순으로 응답했다(중복응답 허용).

남녀 모두 출산은 결혼에 비해 시간과 자기희생이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성은 경제적 부담감을, 여성은 심리적 부담감을 높게 느끼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여성은 출산 행위 자체에 대한 두려움(25.1%)과 출산·양육이 직장생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13.1%)에 대해 남성보다 더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저출산 현상을 야기하는 사회적 원인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52.8%)’과 ‘주거 불안정(41.6%)’, ‘고용 불안정(25.5%)’ 순으로 인식했다(중복응답 허용). 그러나 출산 이후 직장 등에서의 부당한 처우를 원인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여성은 23.4%, 남성은 10.8%로 출산 이후 직장 처우에 대한 남녀 간 인식 차이(12.6%p)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59세 기혼 유자녀 응답자 중 여성의 74%가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의 경력단절 경험비율은 13%에 불과했다. 여성의 경력 단절 경험 비율이 남성의 6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6년 정도의 경력 단절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경제활동이 단절되고 공백기가 재취업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한 여성은 “유자녀 여성은 채용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출산 후에는 기존 직장보다 처우가 낮은 수준의 회사에 취업하거나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출산 후 취업 고충을 토로했다.

한반도미래연구원 로고 ⓒ한반도미래연구원
한반도미래연구원 로고 ⓒ한반도미래연구원

결혼에 부정적 의사를 밝힌 20~39세 미혼 응답자(603명) 중 결혼의 걸림돌이 해결될 경우 결혼할 의향(결혼 의향 유동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약 30%로 조사됐으며 남성의 결혼 의향 유동성(32.5%)이 여성보다 5.8%p 높게 나타났다. 출산의 경우, 부정적으로 응답한 20~39세 미혼 응답자(662명) 중 24.5%가 비출산 원인 해소 시 출산할 의향(출산 의향 유동성)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남녀 간 차이는 결혼 의향 유동성보다 다소 낮은 수준인 3%p로 나타났다.

직장 만족도가 높은 20~39세 미혼자는 결혼과 출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재 직장 만족도가 높은 집단의 68.4%가 ‘결혼할 것이다’ 또는 ‘결혼하고 싶다’고 응답한 반면, 만족도가 낮은 집단은 긍정적 응답률이 46.3%에 그쳐 두 집단 사이에 인식 차이(22.1%p)가 크게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장 만족도에 따른 출산 의향도 만족하는 집단(60.2%)이 불만족 집단(45.2%)보다 15%p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여성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여성 중 현재 직장에 만족하는 집단은 결혼 의향이 66.3%, 출산 의향이 55.8%인 반면, 불만족 집단은 37.1%와 32.6%에 그쳐 각각 29.2%p, 23.2%p 차이를 보였다. 남성은 직장 만족도에 따라 결혼 의향은 최대 14.2%p, 출산 의향은 최대 5.2%p 차이가 있었다.

이 결과는 남녀 공통으로 직장 만족도가 결혼과 출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며, 특히 여성들에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풀이된다. 여성 직장인 중 현재는 출산 의사가 없으나 추후 변동될 수 있는 유동층의 절반 정도가 불만족 그룹에 속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직장 만족도가 저출산 문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직장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연차의 자유로운 사용(70.8%), 육아휴직 보장(63.0%), 출산 후 복귀 직원에 대한 공정한 대우(56.9%), 출산장려 분위기(46.4%) 등이 높은 순위로 조사됐다. 따라서 결혼·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문화 개선, 출산지원제도 확대 등을 통해 직장 만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은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들어 여성의 고용률과 출산율이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한미연의 조사 결과는 여성의 경제활동과 출산이 양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여성의 경제활동 자체가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보다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의 근무 환경에 따라 출산율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것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유혜정 한미연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성별, 세대, 계층에 따라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에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며 “특히 불안감이 높은 청년층에게 기업문화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먼저 청년들의 불안을 읽고 변화해야 한다”고 기업의 지원과 노력을 강조했다. 한미연은 앞으로도 매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조사로 저출산 원인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인구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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