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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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전셋값도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2021년 11월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222.76㎡가 40억원에 전세 거래돼 기존 신고가를 갱신했다. 최근 5년간 서울 내 아파트의 전세보증금 40억원 이상 임대차계약은 총 15건이다(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참조). 2017년에 1건에 불과하던 40억원 이상 임대차계약은 2021년 11월에 처음으로 10건이 넘었다.

집값의 급격한 상승이 수년간 이어지다가 서울도 본격적으로 가격이 하락했다. 집값이 상승에서 하락 보합으로 전환하는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주택매수를 보류하고 대기상태로 있으면서 임차(전세 계약 포함)로 있으려는 의사가 많아질 수 있다. 집값이 하락하리라고 예측하는 한 매매가격이 더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경우 자금력이 있으면서 이른바 거주하기 좋은 지역에 넓은 면적에 거주하려는 사람들은 거액의 전세 계약을 하게 된다. 대출 등 선순위가 없는 상태에서 세입자로서의 대항력(=전입신고와 점유)을 갖추고 있으면 설사 집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선순위 대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집값에 비해 대출금이 크지 않다고 보고 2순위로 전세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12월 서초구 반포동 대단지 아파트에서 그런 경매가 있었다. 세입자는 2순위로 전세금 10억원에 임차하고 있었다. 선순위 대출금은 근저당권 15억 6000만원이 있었다.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했던 2011년 기준으로 해당 면적의 실거래가격은 최고 30억 6000만원이었다. 당시 세입자의 판단을 추정해 보자면 30억이 넘는 집이니 선순위 근저당 15억 6000만원을 고려하더라도 10억원의 전세금을 돌려받는데 문제없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당시 소문으로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의 바로 위층도 같은 소유자(가족)라고 했으니, 집값만 60억원이 넘는데 경매에 넘어갈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달 26일 서울시내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정보가 붙어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달 26일 서울 시내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정보가 붙어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그런데 결국 해당 아파트는 2채 모두 경매가 진행됐다. 세입자가 임차한 물건은 감정가 30억원에서 두 차례 유찰돼 21억 2500만원에 매각됐다. 감정가 대비 약 71% 수준이다. 세입자는 경매 비용과 당해세, 선순위 근저당권의 채권액을 제외하고 약 5억원대의 보증금만을 돌려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말로 집값이 하락한다면 세입자로 산다고 해서 다 안전하지는 않은 것을 보여 준 사례다. 흔히 선순위 채권 없이 1순위로 대항력을 갖추었다면 세입자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경매로 부동산이 매각되면 경매 집행비용이 먼저 처리된다. 그다음 임금채권과 최우선변제 소액임차보증금이 변제되고 당해세에 해당하는 국세와 지방세가 변제된다. 다만 2023년 2월 14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돼 임차권의 확정일자 이후 법정기일이 성립된 당해세는 세입자의 임차보증금 다음으로 배분된다. 그다음 임차권보다 법정기일이 앞선 국세와 지방세가 변제된다. 결국 선순위가 없었더라도 조건에 따라 3개 또는 4개(계약 시 체납세금을 확인하지 않은 경우=법정기일이 앞선 세금이 있는 경우)의 채권이 먼저 변제된다.

고가 주택 외에 중저가 주택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전국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 역시 2023년 초까지 하락(2022년 7월 약 3.16억원, 2023년 3월 약 2.59억원)해오다가 2023년 들어 하락이 거의 멈췄다(2023년 6월 2.59억원). 전세 중위가격 역시 흐름이 비슷하다. 즉 전세가는 계속 하락만 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또한 세입자의 다른 리스크 중의 하나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내 집 마련은 못하고 올라가는 전세금만 겨우겨우 감당하게 될 수도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선순위 없이 대항력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별도의 등기 등 절차 없이도 임차보증금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보호의 범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법이 보호하는 범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불안한 부분이 있다면 실익을 따져 반전세 또는 월세로의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입자일수록 집값이 추이에 대해 주택 소유자보다 더 똑똑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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