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소방, 교정 직종은 여성의 입직 비율 제한하고
여성에게 남성보다 낮은 기준의 체력요건 적용
남성집중 공직의 탈성별화 위한 더 많은 관심과 전략 필요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올 상반기 화제가 되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 ‘피지컬 100’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체 역량과 성차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들을 남겼다. 

먼저 신체 역량을 겨루는 프로그램에서 참여 기회를 남녀 모두에게 열어 두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신체의 성차는 모든 인간을 둘로 구분할 정도로 강력한 규칙처럼 보이지만, 어떤 차이는 스펙트럼에 불과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수용한 것이다. 어떤 남자도 모든 여자보다 힘이 세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들은 비록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다수의 남성 참여자들보다 우세한 피지컬을 입증했다. 

또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산악구조대원 김민철 참가자의 TOP5 진출이다. 그는 흔히 강한 신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근육질의 덩치 큰 몸과는 거리가 있다. 첫 화부터 ‘스트롱맨’으로 위용을 과시하며 등장한 남성 참가자들을 제치고, 그가 로프를 타고 공중에서 오래 버티는 미션에서 승리한 순간은 많은 이들에게 안도감을 선사했다. ‘저 사람이 구조대로 일하는 산에서 쓰러져도 죽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그는 조난 당한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있어 완벽한 역량을 갖춘 공직 수행자임을 입증했다.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 불의 섬’ 스틸.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 불의 섬’ 스틸. ⓒ넷플릭스 제공

산악구조대 외에도 경찰, 소방관, 교도관 등 어떤 공직은 이처럼 특별한 신체 역량을 자격 요건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종류의 신체 역량에서 우수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김민철 대원이 보여주듯 그 직업에 필요한 바로 그 신체 역량을 갖춘 사람이면 된다. 누가 그 역량을 갖추었는지 판단하는 데 있어 성별은 기준이 될 이유가 없다. 최근 방영된 또 다른 서바이벌 <사이렌: 불의 섬>에는 소방, 경찰, 군인 등 각 직업이 요구하는 그 역량을 갖춘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녀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을 모습이 그려지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 여성들의 직무 역량은 늘 의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경찰, 소방, 교정 직종은 오랫동안 여성의 입직을 일정 비율로 제한하고, 여성에게 남성보다 낮은 기준의 체력요건을 적용함으로써 성별 위계를 제도화해 왔기 때문이다. 채용 후 이어지는 주요 업무에서의 배제, 보직 및 승진 기회의 제한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조직에서 여성들은 동료로서 여성을 불신하는 시선에 맞서 자신의 업무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지난 2021년 경찰이 동일한 체력 평가 기준을 적용하여 남녀 통합 채용을 하기로 한 결정은 남성집중 공직의 탈성별화로 가는 중요한 물꼬를 텄다. 소방직, 교정직은 경찰과 업무 성격도 다르고 교도관의 동일 성별 수용자 관리 원칙 등 다른 종류의 쟁점들도 있지만, 이들 직종에도 자극이 되길 기대한다. 

신체 역량의 성차는 성별에 따라 공무 수행에 차등을 둔 사회제도의 효과이지 그 역이 아니며, 특정 공직에 요구되는 직무 역량은 기술 발전과 사회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져 왔다. 생활밀착형 치안서비스가 강조되는 오늘날 경찰이 갖추어야 할 능력은 맨손으로 범죄자를 제압하는 힘만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 공감하고 시민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상호작용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처럼 남성성을 전제로 형성된 직업의 정의 자체를 탈성별화하기 까지, 긴 호흡의 변화를 이끌어갈 성평등 정책의 더 많은 관심과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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