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 건축가 설계 원형 복원해
5년 만에 신축 대사관 개관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
“한국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

2023년 신축 후 재개관한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 전경.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2023년 신축 후 재개관한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 전경.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빌딩 숲 한가운데 고즈넉한 여백을 만들었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주한프랑스대사관은 서울 중구 충정로역 일대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하늘과 초록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60여 년 전 한국 현대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1922~1988)의 걸작에 후배 건축가들이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14일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신축 대사관 소개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건축사무소 사티의 정민주 건축가.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14일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신축 대사관 소개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건축사무소 사티의 정민주 건축가.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1962년 지어진 주한프랑스대사관 건물은 한국 근대 건축의 걸작이다. 설계를 맡은 김중업 건축가는 프랑스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다. “한국의 얼이 담긴 것을 꾸미려고 애썼고 프랑스다운 엘레강스를 나타내려고 한 피눈물 나는 작업”이라고 김중업은 회고했다.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196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수훈했다.

시간이 흐르며 손상된 건물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2015년부터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프랑스 건축사무소 사티의 윤태훈 대표 등 후배 건축가들이 심혈을 기울였다. 직원과 방문객을 위한 기능적이고 쾌적한 업무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부지의 경사면을 따라 건물들이 부드럽게 통합되고, 설계 원형대로 공간미와 곡선미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지난 14일 언론에 개방했다.

2023년 신축 후 재개관한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 전경.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2023년 신축 후 재개관한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 전경.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주인공은 단연 ‘김중업관’(PAVILLON KIM CHUNG-UP)이다. 옛 대사 집무실 건물을 복원해 다목적 전시실로 탈바꿈했다. 하늘로 솟은 지붕 처마의 우아한 곡선이 먼저 시선을 붙든다. 콘크리트 지붕 처마 부분에 거푸집을 치고 인장 케이블을 넣어 포물선을 만드는 포스트 텐션 공법을 활용했다. 이렇게 날렵하고 역동적인 전통 처마의 선을 되살렸다. 1층 필로티 공간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과거 사진을 일일이 찾아보면서 원본과 최대한 비슷한 질감의 재료를 찾으려 힘썼다고 한다.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PAVILLON KIM CHUNG-UP) 1층 필로티 공간. ⓒ이세아 기자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PAVILLON KIM CHUNG-UP) 1층 필로티 공간. ⓒ이세아 기자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PAVILLON KIM CHUNG-UP)에서 내려다본 관저 풍경. 도보 양쪽으로 한국과 프랑스 식물을 함께 배치했다. ⓒ이세아 기자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PAVILLON KIM CHUNG-UP)에서 내려다본 관저 풍경. 도보 양쪽으로 한국과 프랑스 식물을 함께 배치했다. ⓒ이세아 기자
주한프랑스대사관 업무동 몽클라르 타워(TOUR MONCLAR) 전경.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주한프랑스대사관 업무동 몽클라르 타워(TOUR MONCLAR) 전경.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영사·대민 업무동이자 전시 갤러리인 장-루이관(JETEE JEAN-LOUIS)은 55m 길이 2층 건물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업무동 몽클라르 타워(TOUR MONCLAR)는 11층짜리 건물이다. 김중업관의 철골 구조 그리드를 재현하면서도, 나뭇결 모양의 초고성능 콘크리트(UHPC) 외벽 패널을 사용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들로 가기까지 ‘건축적 산책’도 즐거운 경험이다. 대사관의 루프탑을 따라 걸어 다니기만 해도 다양한 건축 요소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풀 한 포기까지 세심하게 배치한 조경, 푸른 잔디와 다양한 꽃나무가 피어나는 정원 덕에 휴양지에 온 듯한 여유도 느낄 수 있다.

60년 전엔 이곳에서 한강과 인왕산이 모두 보였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와 고층빌딩에 가렸지만, 분주한 도심 한가운데 호젓한 여백은 그대로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는 “한국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는 “시간이 흐르면서 땅값이 높아졌는데도 이 자리를 지키고 빈 공간을 만들어 준 데 감사하다”며 “(리모델링한 주한프랑스대사관이) 프랑스와 한국의 여정에 좋은 배경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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