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현경의 벗는 벗들] (끝)

전남 신안군 한 염전에서 염부가 이날 수확한 소금을 들어올리고 있다. ⓒ뉴시스
전남 신안군 한 염전에서 염부가 이날 수확한 소금을 들어올리고 있다. ⓒ뉴시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기 전에 소금을 미리 사두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한다. 미리미리 소금도 사고, 각종 장류며 해조류, 어류도 사 놓으면 피폭으로부터 좀 안전할까? 바다에 사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바다 생명을 먹는 일만 해도 이렇게 겁이 나는데, 바닷속에 사는 이들은 어떤 심정일지.

사재기 뉴스를 보고는, 나 역시 소금을 사 놓아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그렇게 사들인다고 얼마나 버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관두기로 했다. 게다가 설령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 살아남아서 무슨 재미를 보겠나 하는 외로움과 괴로움이 밀려왔다. 앞날을, 안녕을 걱정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재기밖에 없을까?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는 궁리로 마음을 옮겨 보기로 했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으로 인류 절멸 시나리오가 과학자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동안,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로 지목된 지금 이 시대의 인간으로서 사재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지금 우리는 소금을 쟁여둘 때가 아니라, 스스로 소금이 되어야 할 때라는 것.

소금은 오염된 것을 정화하고, 썩지 않게 도와준다. 인간이 지구 깊숙한 곳에서 화석연료를 뽑아다 쓰고, 대지를 헐벗기고, 온 강과 바다를 화학약품으로 오염시키는 사이 무수한 생물 종이 벌써 지구에서 사라졌다. 서부 검은코뿔소, 홋카이도 늑대, 양쯔강돌고래, 스텔라바다소, 의룡호잉어, 베가스표범개구리, 코바마코우… 다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무수한 종들이 사라졌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이제 지구에서 더는 볼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 소금이 되어 오염된 세상이 더 오염되지 않게 재난 앞의 생을 바친다면, 이 멸종된 존재들에게 사죄할 수 있지 않을는지.

생태불안에 떠는 이들에게 ‘소금을 사자’는 선동보다 ‘소금이 되자’고 말할 수 있는 벗들을 만났다. 지난달 인천에서 세계녹색당 총회를 달군 전국 각지의 녹색당원들이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막개발로 죽음에 내몰린 산양, 수달, 삵, 반달곰, 점박이물범, 저어새를 포함해 지역 동식물을 지키는 데 자기 생을 조금씩 갖다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소금을 사고 누군가는 선동하고 또 누군가는 발뺌하는 동안, 누군가는 함께 사는 동식물을 지키느라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소금이 될 수 있다. 자기 안에 있는 생태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자기만의 방법으로 삶을 바꿈으로써 가지각색 소금이 될 수 있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농부로서, 요리사로서, 목수로서, 글쟁이로서, 활동가로서, 예술가로서, 또는 어떤 정체성으로든 마땅히 자기의 기술을 소금을 사는 데가 아니라 소금이 되는 데 쓴다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멸종에 저항하고 소비를 창조로 대체할 수 있다면, 지금 이렇게 우리를 생태불안에 떨게 만든 모든 체제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소금 사재기가 아니라, 소금의 연대로 이 두려움을 마주하면 어떨까. 

문홍현경 에코페미니스트
문홍현경 에코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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