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강간공대위 4일 토론회 열어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대위가 '사법부가 외면해온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66개 여성단체가 모인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사법부가 외면해 온 가장 보통의 준강간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준강간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정에 피해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66개 여성단체가 모인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준강간공대위)가 4일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온라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은 준강간미수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 A씨가 무죄를 받은 사건이다. ‘형법 제299조 준강간, 준강제추행’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를 처벌토록 규정한다. A씨는 지난 2017년 5월 5일 서울의 한 클럽에서 처음 만나 술을 마신 여성 B씨를 경기도의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준강간미수)를 받았다. 피해자는 준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A씨가 미수라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 준강간미수로 기소됐다.

판결에서 A씨가 술에 취해 저항할 수 없었던(항거불능) 여성의 옷을 벗긴 것은 인정했지만 항거불능을 이용한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A씨는 1심과 2심,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토론회는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가 사회를 맡고, 남성아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상황과 맥락이 삭제된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판결의 문제‘를 주제로, 이영실 피해자 변호사(IBS 법률사무소)가 ’준강간 고의에 대한 고찰‘를 주제로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진원 인천지방법원 판사, 김혜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가 참석했다.

남성아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이 사건 또한 “피해자가 항거불능상태에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였더라도 항거불능 상태에서의 성관계까지 동의한 것이라 볼 수 없다”면서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려는 준강간의 고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준강간죄의 보호법익이 심신상실 및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실상 협소하고 편협한 관점과 낮은 성인지감수성이 판단의 기준을 사건마다 달리해 피해자의 권리침해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이영실 피해자 변호사(IBS 법률사무소)는 이 판결이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여길 만한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적어도 피고인에게 준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하나의 정황에는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피고인이 ‘피해자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성관계에 대해 동의를 하였다는 등‘의 주장을 하더라도,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상태 또는 완전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더라도 어떠한 사유로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피고인이 이를 인식했다면, 피해자의 동의에 그러한 상태에서의 성관계까지 포함해 동의하였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피해자의 옷을 벗길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고서는 피고인의 준강간 고의를 섣불리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수사·재판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 및 피해자다움이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토론했다. 그는 “성폭력 사건의 심리에서 성인지적 관점으로서의 성인지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는 요청은 피해자 개인의 고유한 민감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과 성차별이 연관돼 있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성폭력 사건을 판단하라는 주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4일 오후 2시 온라인으로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가 4일 온라인으로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판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진원 인천지방법원 판사는 원심의 판결에 대해 “인정되는 사실관계만으로도 충분히 준강간의 실행의 착수를 긍정해 유죄로 인정할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준강간의 고의의 내용인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다는 의미를 오해하거나 명확히 밝히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4일 오후 2시 온라인으로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가 4일 오후 2시 온라인으로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피해자 권리확보를 위한 제언 “우리들의 연대가 판례를 바꾼다”’를 주제로 토론했다. 김 상임대표는 “이 사건 재판부는 당시 피해자가 처했던 상황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판결했는지, 상당한 비중으로 채택한 피고인 진술에 대한 신빙성의 판단기준은 무엇이었는지,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운지 등을 성찰적으로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가 깨어났을 때 바로 신고하거나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점과 범행 이틀 후에야 신고한 점은 검찰이 사건을 불기소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김 상임대표는 더 나아가 ”특히 그동안의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만들어진 법의 객관성과 합리성에 피해자의 목소리와 경험을 반영하는 노력이 피해자 권리를 존중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더 이상 피해자가 어떤 재판부를 만나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성폭력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중요한 법적 판단이 ‘운’에 좌우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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