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중신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
유전병 있는 여성 장애인 임신중지 권고받은 것에 충격
수년에 걸친 개보수로 장애친화 산부인과 선정
더 많은 장애여성 올 수 있도록 진료의뢰서 절차 생략해야
사업 계속하는 이유…“마땅히 해야 할 일”

박중신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여성신문
박중신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여성신문

서울 지역에 첫 장애친화 산부인과가 들어섰다. 서울대병원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5월 22일 여성 장애인이 안전하고 편리한 임신·출산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맞춤형 의료환경을 갖춘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개소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심사를 통해 여성 장애인에 맞춤형 의료환경을 제공하는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선정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전북 예수병원, 일산병원에 이어 전국 세 번째이자 서울시 최초로 선정됐다.

1978년에 지어진 서울대병원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건물과 시설에 있어서 최신 규격과 차이가 있었다. 그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가 요구하는 장애친화 산부인과의 기준을 맞추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건축 전문가들도 “정부의 기준을 충족할 정도로 시설을 개선하는 건 쉽지 않다”며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서울대병원 장애친화 산부인과의 가장 큰 특징은 이동 없이 검사와 진료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원스톱 진료실’에 있다. 장애인들은 장애 유형에 따라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동에 어려움을 겪거나 높낮이·기울기가 고정된 진찰대에서 진료를 받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서울대병원은 진료실 공간을 넓히고 휠체어 장애인 환복을 위한 성인 기저귀 교환대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진찰대를 구비해 장애인이 진료 과정에서 겪는 불편을 최소화했다. ⓒ여성신문·송은지 작가
서울대병원 장애친화 산부인과 '원스톱 진료실' ⓒ여성신문·송은지 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은 수년에 걸친 개보수 끝에 여성 장애인들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외래·분만장·병동·신생아실·장애인화장실 등 진료에 필요한 서비스를 모두 한 층에 배치했다. 이동 없이 검사와 진료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원스톱 진료실'은 서울대병원의 가장 큰 장점이며, 장애 별 요청사항을 사전질문지에 작성하면 전문 코디네이터가 내용을 확인한 뒤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관련기사: [현장] 여성장애인 위한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진료실부터 달랐다 (https://naver.me/FSOAT8cQ)

서울대병원이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개소할 수 있게 된 배경엔 어려운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개선할 방법을 찾아다닌 박중신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의 의지가 있다. “서울대병원이라면, 그리고 의사라면 장애친화 산부인과 추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는 박 부원장은 시설 개선을 넘어서 산부인과 종사자들의 장애감수성 증진과 여성 장애인들이 서울대병원을 찾기 쉽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중신 진료부원장과의 일문일답. 

박중신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여성신문
박중신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여성신문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추진한 배경은. 

“몇 년 전 진료를 맡았던 환자 중에 유전병을 가진 중증 여성 장애인이 있었다. 그는 다른 대학병원에서 “장애 때문에 분만도 위험하고 자녀에게 장애가 유전될 수 있다”며 임신중지를 권고 받았다. 동의할 수 없었다. 유전병 있다고 아이를 낳지 말란 법 있나. 출산에서의 위험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의사다. 그는 출산을 강하게 원했고, 철저한 준비 끝에 우리 병원에서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 

그의 출산을 돕는 과정에서 여성 장애인이 시설 이용이나 진료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이 보다 편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산부인과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정부에서 ‘장애친화 산부인과’라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사업책임자를 맡아 서울대병원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추진하게 됐다.”

-불필요한 이동 없이 모든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원스톱 진료실’이 인상적이다.

“기존 의료서비스 체계는 환자들이 진료를 받으려면 분야별 의사가 있는 공간에 몇 번씩 이동해야 한다. 검사를 받으려면 더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이동이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그 과정에서 곤란함을 겪는다. 우리 산부인과의 경우 환자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오든 진료실에서 대기하면 분야별 의사가 찾아와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의료진과 체계를 구성했다.”

-시설 보수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서울대병원이 1978년에 지어지다 보니 최신 건물들에 비해 규모와 규격 면에서 차이가 크다. 공사를 맡긴 건축 종사자들도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여성 장애인 화장실의 경우엔 필요한 시설을 구비하기 위해 비교적 공간이 넓은 남성 화장실을 개조해야 했다. 이렇듯 장애친화 산부인과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중간에 포기할 뻔도 했으나,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지금의 의료환경을 갖출 수 있었다.”

-향후 장애친화 산부인과 운영 계획은. 

“산부인과 종사자 중에 여성 장애인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해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여성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시설이나 의료서비스는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의 피드백에 따라 개선해 나가겠다.”

-장애친화 산부인과 운영에 필요한 정책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3차 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1,2차 병원에 방문해 진료의뢰서를 받아와야 한다. 그러나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장애인들에 3차 병원에 와야 할 정도의 응급 상황인데도 하위 병원을 거쳐야 하는 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여성 장애인들에게는 예외사항을 적용해 바로 3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임감이 큰 사업을 계속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는 것을 사명감으로 여길 뿐이다. 서울대병원도 국민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박중신 서울대학교 진료부원장은

1990년 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전공의로 의사 생활을 시작해 태아나 임산부가 병을 가지고 있는 고위험 임신을 주로 맡았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건강한여성재단 이사장, 한국의학교육학회 이사장,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장 등을 맡고 있으며 지난 3월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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