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희나』
오한숙희 지음, 나무를심는사람들 펴냄
잘 나가는 방송인, 베스트셀러 저자인 엄마 오한숙희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 가진 딸 장희나씨의 30년 동행기

(왼쪽부터) 여성학자 오한숙희, 그의 딸 장희나 씨. ⓒ본인 제공
(왼쪽부터) 여성학자 오한숙희, 그의 딸 장희나 씨. ⓒ본인 제공

지난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은 자폐를 가졌지만 그 엉뚱함 때문에 오히려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받아들여질 만하게’ 꾸며져 중증도가 높은 장애인의 삶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말 이들의 ‘실제’ 삶은 드라마와 달리 불행하거나 슬프기만 한 것일까?

『우리, 희나』의 저자는 1급 발달장애인 딸 장희나 씨와 30여년 동안 함께 살고 있다. 있는 그대로 딸을 바라봐주기까지 엄마인 저자에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년기에 고쳐놓지 않으면 평생 고치지 못한다는 강박에 돈을 쏟아부으며 ‘치료’에 매진하던 시기도 있었다. 결국 희나 씨가 울고, 소리를 지르고, 의사의 콧등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일이 반복되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고집이었음을 깨닫고 내려놨다. 말로 전하지 못했을 뿐, 희나 씨는 이미 온몸으로 ‘싫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희나』(오한숙희 지음, 나무를심는사람들 펴냄) ⓒ나무를심는사람들
『우리, 희나』(오한숙희 지음, 나무를심는사람들 펴냄) ⓒ나무를심는사람들

육아가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자녀의 ‘흠결’은 곧 엄마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저자는 ‘내가 뭔가 잘못해서 애가 이렇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하는 엄마들에게 죄책감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한때 장애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애쓰고 ‘해결방법’을 내놓을 병원을 찾아 전전했지만, 시원한 답을 주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끝내 깨달았다. 엄마들은 최선을 다했고, 자녀가 장애를 갖게 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저자는 소리 내 외치라고 말한다. “태교는 완벽했다!”

여성학자이자 방송인으로 전국을 누볐던 시기를 뒤로 하고, 저자는 9년 전 돌연 제주로 터전을 옮겼다.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갈 곳이 없어 집에 틀어박히게 된 딸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딸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제주에서 이들은 ‘지상낙원’ 같은 센터를 만났다.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센터 이용생에게도 “우리가 포기하게 될까 봐 겁이 나요”라고 말하는,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주간활동센터다. 희나 씨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 시각적인 것에 강하다는 특성을 살려 계속 그림을 그렸고, 2020년에는 제주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장희나 작가의 작품 ‘mirror8’. 특유의 색을 쌓는 기법을 사용했다. ⓒ장희나
장희나 작가의 작품 ‘mirror8’. 특유의 색을 쌓는 기법을 사용했다. ⓒ장희나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장애를 하나의 개성으로 바라보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희나 씨는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다. 씻고 나온 엄마 등의 물기를 닦아주고서는 여기저기에 볼을 대 본다. 습기가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희나 씨는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다. 대부분은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와인 오프너 옆에 접혀 들어있는 칼을 찾아내 택배상자 테이프를 깔끔하게 잘라낼 줄 안다. 살면서 터득하게 되는 지식과 행동능력인 ‘생활연령’이다.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건 분명 서러움과 분노와 함께하는 일이다. 위험하다는 듯 피하거나 대놓고 쳐다보는 사람들, 욕설을 하는 사람들까지. 하지만 저자는 그럴수록 더 “밖으로 나가라”고 이야기한다.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뜻밖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희나 씨 맞춤형 공동체도 실험할 수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고 자극에 예민한 이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가 보여줄 것은 약간의 ‘다정’이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따뜻한 무관심과 ‘다름’을 개성으로 존중하는 태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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