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천아트센터 개관과 공공 공연장에 대한 기대

 

5월 말의 비가 내리던 일요일 오후 부천아트센터를 찾아갔다. 이미 개관기념 공연을 다녀온 사람들이 SNS에 올린 칭송을 접했기에 빨리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마침 47년 역사의 실내악단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고별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바로 전날 예술의전당에서 있은 이들의 연주에 대한 찬사가 온라인 음악 커뮤니티들에서 쏟아졌다. 한국에서의 진짜 고별 공연이 부천에서 있음을 알고는 지하철 7호선을 타고 가서 현장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했다. 예술의전당에서 보지 못했어도 이제 부천에 와서 볼 수 있음을 고마워 하면서. 그런데 티켓 가격이 예술의전당보다 제법 싼 것 아닌가. 또 한 번 감사했다.

1445석 규모 클래식 전용 공연장

부천아트센터 야경 (사진=부천아트센터 제공)
부천아트센터 야경 (사진=부천아트센터 제공)

공연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1층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는데, 시원하게 트여있는 창 밖으로 보이는 부천 시청 잔디 광장의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꼭 공연 관람 때문이 아니어도 가끔은 와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메인홀 이외에도 소공연장과 갤러리도 있고 문화강좌도 한다고 하니, 부천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 기대된다. 메인홀에 들어서니 듣던 소문대로 훌륭했다. 객석의 규모가 1,445석이라 하니 예술의전당 2,505석, 롯데콘서트홀 2,036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무대 규모에 비해 객석 수가 적으니 연주 소리가 그만큼 잘 들릴 것 같았다. 게다가 천장에 설치된 흰색의 상하 구동형 음향반사판이 눈길을 끌었다. 벽체 배너 커튼을 동시에 활용하면 세밀한 음향 조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연주가 시작되니 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다시 개관한 어느 지역의 공연장은 음향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것과 달리, 음향에 세심하게 공을 들인 공연장이다. 공연장의 생명은 역시 음향이다.

부천아트센터 메인홀 (사진=부천아트센터 제공)
부천아트센터 메인홀 (사진=부천아트센터 제공)

4,576개 파이프와 63개 스탑, 4단 건반, 2대의 연주 콘솔로 이루어진 파이프오르간도 있으니 부천아트센터를 세계적으로도 손색없는 클래식 음악당으로 꼽아도 좋을 것 같았다. 곧 다시 와서 대형 오케스트라 연주와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기로 마음먹고 예매를 했다. 한 가지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객석 사이의 간격이 넓었던 점이다. 바로 전날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보러갔을 때 다른 관객이 자리로 들어가려면 매번 일어서야 했던 불편함 같은 것이 없었다. 내가 발을 당기지 않고 그냥 있어도 다른 관객이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의자들도 편했다.

조수미 조성진 김사월 등 명품 공연 잇따라

부천아트센터 메인홀 천장에 설치된 흰색의 음향반사판으로 세밀한 음향조정이 가능하다. (사진= 부천아트센터 제공)
부천아트센터 메인홀 천장에 설치된 흰색의 음향반사판으로 세밀한 음향조정이 가능하다. (사진= 부천아트센터 제공)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고별 연주회가 끝나고 메인홀 로비로 나오니 재즈 그룹 오즈컴파니의 오픈 기념 연주가 막 시작되었다. 비가 내리는 일요일 저녁에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을 뒤로 하고 들려오는 재즈 연주라니. 재즈는 비 오는 날 듣는 게 진짜 아니던가. 이 무슨 눈과 귀의 호강인가 싶었다.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나온 관객들은 바로 옆에 있는 카페 자리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다시 시작된 재즈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번개 같은 느낌을 준 재즈 연주는 이날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을 위한 일종의 보너스 같은 선물이었던 셈이다.

부천아트센터 첫 방문에서 이 곳의 분위기에 푹 빠져드니 앞으로 종종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였다. 현재 진행중인 개관 페스티벌의 공연들이 화려하다.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조수미 & 베를린필 12 첼리스트’, ‘김사월, 그리고 아마도이자람밴드’, ‘베르네-메클러 오르간 듀오 리사이틀’의 표는 매진되었다. 조성진 리사이틀은 ‘취켓팅’(취소표 예매)이라도 해보려고 진즉부터 들락거렸지만 요지부동 꼼짝도 하지 않는다. 김사월과 이자람이 부천에서 함께 공연하는 것을 어떻게들 알았는지 역시 일찌감치 매진이다. 이미 예매해 놓기를 잘했다. 요즘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좋은 공연은 ‘넘사벽’이다. 그밖에도 개관 공연에 이어 ‘필리프 헤레베허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장한나 &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요엘 레비 & KBS교향악단’ 등의 훌륭한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도 아닌 부천의 아트홀에서 어떻게 이런 공연들을 한꺼번에 유치할 수 있었을까. 반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런 훌륭한 공연들이 서울 아닌 지역에서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부천아트센터에서 5월28일에 열린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고별 공연 ‘마지막 콘서트(LAST CONCERT)’ (사진= 부천아트센터 제공)
부천아트센터에서 5월28일에 열린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고별 공연 ‘마지막 콘서트(LAST CONCERT)’ (사진= 부천아트센터 제공)

그런데 부천 지역에서의 공연에도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것을 보니, 지역 시민들뿐 아니라 수도권 다른 지역에서 ‘원정 관람’ 가는 관객들의 수요가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개관 페스티벌 이후에도 좋은 공연들이 이어지기만 한다면 관객 수요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 공연문화의 저변은 크게 넓어진 듯하다. 그리고 부천아트센터의 위치가 지하철 7호선 부천시청역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있어서 생각보다 접근성이 좋다. 7호선에 몸을 싣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그날 연주될 곡을 예습하면서 가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리게 된다.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수고는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 같다. 

근래 들어 공연문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각종 공연들을 멈춰세웠던 코로나19가 사실상 엔데믹 단계로 들어가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공연 관람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잘 알려진 연주자들이나 오케스트라들의 연주회, 오페라와 뮤지컬, 창극과 무용, 연극들이 매진되는 일은 다반사가 되고 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좋은 공연을 관람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연에 대한 수요는 크게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 같은 국내 최고급 공연장들은 문턱이 높다. 비서울 지역에서는 일단 가기가 멀다는 점도 있지만, 갈수록 비싸지는 관람료는 공연문화의 양극화를 낳기도 한다. 2022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에서 R석의 가격은 46만원, 지난 3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정명훈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연주회 R석은 33만원에 달했다. 지난 14일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빈 심포니 내한공연의 R석 가격도 34만원이었다. 물론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의 초청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에 불가피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좋은 공연을 좋은 자리에서 관람하기 위한 문턱이 많은 관객들에게는 높은 편이다. 물론 공연장의 2층, 3층 뒷 자리로 가면 상대적으로 싼 가격으로 예매할 기회는 있지만, 예매전쟁에서 빛의 속도로 승리하지 못하면 그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이 있기에 공공 공연장들의 역할에 많은 기대와 주문을 하게 된다. 현재 국내의 공연장들은 롯데콘서트홀, LG아트센터, 샤롯데씨어터 등과 같이 민간 기업들이 지은 곳들도 많이 있다. 이들 공연장은 대체로 수익성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지방정부가 지역 대형 공연장의 건립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됨에 따라 각 지역에서의 공공 공연장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당 같은 경우 ‘통영국제음악제’를 비롯한 좋은 공연들을 보기 위해 수도권에서 원정을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부천문화센터의 개관도 그 같은 흐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공공 공연장들은 시민들이 적은 경제적 부담으로 많은 관람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길들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시향이나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하는 ‘찾아가는 음악회’ 같은 기획들에 공공 공연장들도 함께 참여한다면 또 다른 모델들도 가능할 것이다. 결국 공공 공연장들이 시민들이 양질의 문화를 공유하는 장이 되면서도 경쟁력을 가진 지속가능한 문화공간으로 살아남는 것이 과제이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문화적 아비투스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취향은 그가 속한 계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공연문화가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공공 공연장의 역할도 크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의 좋은 공연장에서 질 높은 공연들을 관람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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