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6년만의 미투’ 최말자씨
강간 시도에 맞서다 남성 혀 절단
정당방위 아닌 징역형 선고받아
56년만에 재심 청구 했지만 기각
대법에 시민 탄원으로 재심 촉구

'56년만의 미투'를 외친 최말자 씨. ⓒ한올포토
'56년만의 미투'를 외친 최말자 씨. ⓒ여성신문

최말자(78)씨는 1964년 한 남성의 강간 시도에 맞서다가 중상해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위해 56년 만에 재심 청구에 나선 그는 잇따른 법원의 기각 결정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있다. “나의 재심을 보고 세상에 숨어있는 또 다른 성범죄 피해자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고 했다. 최씨는 이제 피해자를 넘어 또 다른 피해자를 위해 앞장서는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나고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다

최씨는 정당방위 논란 때마다 언급되는 ‘강제키스 혀 절단 사건’의 당사자다. 1964년 5월 경남 김해 한 작은 마을에서 강제로 키스하려던 남성 노모(당시 21세)씨의 혀를 절단한 최씨에게 법원은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성폭력 가해자인 노씨에게는 특수주거침입 및 특수협박죄만 적용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20년 최씨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사건은 ‘56년만의 미투’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2021년 2월과 9월,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모두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 남은 상태다. 3년 가까이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최씨를 부산 진구 부산여성의전화에서 만났다.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되려 가해자로 몰려야 했던 당시 상황을 그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59년이 흐른 지금도 그에게 사건은 현재진행형이었다.   

31일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최말자 씨. ⓒ한국여성의전화
지난 5월 31일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최말자씨. ⓒ한국여성의전화

인생 송두리째 바꾼 59년 전 일

“1964년 5월 6일 저녁 8시 쯤이었어요. 친구들이 내게 떡을 주려고 우리 집에 찾아왔어요. 그런데 낯선 남자가 뒤를 따라왔다고 하더라고요. 낯선 남자가 집 앞에 서 있으니까 (친구들이 저한테) 가달라고 (남자한테) 얘기하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나가서 왜 남의 집 입구에 이렇게 서있느냐고 가라고 그러니까, 조금 전에 들어간 친구들한테 할 말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들어와서 친구들한테 그리 얘기를 하니까 친구들이 할 말 없다고 그냥 가라고 얘기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제 아버지 오기 전에 이 상황을 해결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할 말이 없다고 그냥 가라 한다고 얘기를 했더니, 길을 모르니 길을 좀 가르쳐 달라 하더라고요. 들어와서 친구들한테 내가 반대 방향으로 길을 가르쳐 줄 테니까 그럼 그 사이에 집을 가라고 말하고, 남자를 데리고 나갔는데, 내 뒤에서 어깨를 잡고 발을 그냥 걸어 넘어뜨렸어요. 몸 전체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죠. 그렇게 사건이 벌어졌어요. 사투가 벌어졌지요.”

이후 혀가 잘린 가해자 노씨는 최씨의 집으로 찾아와 잘린 혀를 찾아 달라며 난동을 피워댔다. 가해자에 못 이겨 남동생과 함께 집을 나선 최 씨는 그 길로 집을 나와 밖을 전전했다.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까봐’에서였다. 며칠 뒤 친구에게서 집이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간 최 씨를 기다리고 있던 건 경찰 조사였다. 경찰 조사를 두 달 가량 받고 소환장을 받아 간 검찰청에서 최씨는 구속됐다. 검찰에서 겪은 일을 말하는 최씨의 목소리는 격앙되기 시작했다.

“‘바른 말 해라’ ‘네가 남자 XX 만들어 놓고 왜 책임도 안 지냐’ ‘결혼해라’ ‘합의해라’ 별에 별 소리 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죄가 있으면 내 죄를 받을 테니까 합의도 못합니다. 돈 10원도 못 줍니다.’하니까 ‘너는 그러면 평생 그러면 죽을 때까지 감옥 살아라.’ 그러면서 막 공갈 폭언을 하고 욕을 하고 그랬어요. 진짜로 얼굴에 주먹만 안 맞았다 뿐이지 막 손가락질, 주먹질... 그 모욕은요. 지금도 제가 악몽에서 깨어나지를 못 해요.”

최씨는 이런 검찰 조사를 거쳐 중상해죄로 재판을 받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가해자인 노 씨가 받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보다 더 높은 형량이었다. 형법학 교과서에도 실릴만큼 정당방위 인정 범위가 극히 제한적임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이다. 최씨는 이런 사실을 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통대)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그에게 방통대의 수업은 그가 오랜 시간 품어왔던 고민을 풀어주는 계기가 됐다.

“수업 중에 ‘성, 사랑, 사회’라는 수업이 있었어요. 그 수업의 교재에 강간미수,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대해 적혀 있었죠. 그걸 보는데 피해자도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내가 정당방위도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 사건을 재심해야 한다는 확신이 섰어요. 방통대를 다니면서 알게 된 친구에게 사건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랑 사건에 대해 의논을 해서 재심을 하자고 했고, 한국여성의전화에 연락을 했어요.”

그러나 법은 단번에 최씨에게 미소짓지 않았다. 재심을 통해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법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2021년 2월과 9월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에서 재심 청구의 기각을 결정했다. 재심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 420조에 의거해,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거나 수사기관의 불법성이 확인되면 재심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산지법은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회문화 환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다’는 것과, ‘우리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가꾸어 간다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기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재심 기각 결정을 받아든 최 씨의 당시 심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억장이 무너졌어요. 할 말도 없더라고요. 잘못을 따져서 죄가 있으면 벌 주는 게 법 아니냐. 사회문화 달라졌다는 이유로 사건을 뒤집을 수 없다는 둥 상식이 안 맞는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적극적으로 얼굴 드러내고
목소리 낼 힘을 준 건 시민들의 응원

1인시위 진행 후, 릴레이 1인시위 및 5차 서명 캠페인을 마무리하며 당사자 최말자 님과 최말자 님의 가족·지인 등 20명이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및 시민 참여 서명지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1인시위 진행 후, 릴레이 1인시위 및 5차 서명 캠페인을 마무리하며 당사자 최말자 님과 최말자 님의 가족·지인 등 20명이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및 시민 참여 서명지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최씨는 굴하지 않았다. 대법원에 재심을 다시 청구했다. 5월 2일에는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후에는 1인 시위를 했다. 대법원에 친필로 쓴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특히 5월 2일 있었던 기자회견부터는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 얼굴을 드러내게 된 계기는 시민들의 응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용기가 났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응원해주고 약 16,000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도 제출하다 보니까, 그 용기가 절로 나온 것 같아요. (얼굴을 드러내니까) 불편한 점도 있죠. 하지만 이제는 최선을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최근 여성들이 모이는 여러 장소에서 최씨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3월 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3·8 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서 3·8 여성선언 낭독을 맡기도 했다.

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제 38회 한국여성대회조직위원회가 '성평등을 행햐 전진하라' 행진대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제 38회 한국여성대회조직위원회가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 행진대회를 개최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최말자 씨. ⓒ홍수형 기자

“3월 4일 그 날도, 우리 선생님들(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목청을 올리는 데 눈물이 났어요. 열정을 다해 피해자들을 이렇게 도와주려고 하는데, ‘우리 피해자들이 왜 나오지 못하고 용기를 내지 못하는가’ ‘왜 말을 못하는가’하는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사실 나는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다들 고마워요.”

미투 이후 3년. 최씨는 대법원 재심 개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만약 대법원도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재심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거기(대법원 재심 청구 기각)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부산에선 비록 잘못(기각)됐지만 대법원에서는 이 사건을 바로 잡아 줄 것이라고 믿고 싶어요. 여러 단체,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렇게 아우성 치고 있어요. 그런데도 이걸 기각한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최말자 씨. ⓒ사진작가
'56년만의 미투'를 외친 최말자 씨. ⓒ한올포토

대법원의 재심 개시는 무엇을 의미할까. 법원의 잘못된 판결로 오랜 시간 가해자로 살아야 했던 피해자의 억울함을 법원이 직접 풀어 무고함을 인정하는 일이다. 또한 많은 경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인정받기 어렵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 대해 최 씨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5월 2일 대법원 앞에서 만난 최씨는 “너무 긴 시간에 몸이 지치다 보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을 떠올리면서 지금 바로 잡지 못하면 이런 일이 또 되풀이될 것이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도 더 많은 여성들을 위한 희망을 얘기했다.

“내 사건도 바로잡아야 하지만, 우리 후손들한테는 이런 피해가 없어야 해요. 피해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는 그런 사회, 피해자가 아픈 가슴만 끌어안고 있을 게 아니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내 희망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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