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심범죄’ 최근 4년간 늘어...25.9%만 구속
구멍난 피해자보호제도에
예상됐는데 못 막은 ‘앙심살인’ 잇따라
접근금지명령 적극 활용·적용 확대
재범 위험 높으면 구속·보석 제한을

2022년 5월22일 부산 서면 한 오피스텔 복도에서 알지도 못하는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고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 남성. ⓒCCTV영상 캡처
2022년 5월22일 부산 서면 한 오피스텔 복도에서 알지도 못하는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고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 남성. ⓒCCTV영상 캡처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구치소 동기가 지난 12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 이후 취재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은 13일 방영된 JTBC ‘상암동 클라스’ 방송화면 일부. ⓒJTBC 방송화면 캡처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구치소 동기가 지난 12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 이후 취재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은 13일 방영된 JTBC ‘상암동 클라스’ 방송화면 일부. ⓒJTBC 방송화면 캡처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 일부.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인스타그램(@miracle__0604) 게시물 갈무리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 일부.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인스타그램(@miracle__0604) 게시물 갈무리

“대놓고 보복하겠다는 사람으로부터 피해자를 지켜주지 않으면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12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 이후 취재진 앞에서 결국 눈물을 보였다.

가해자는 출소 후 ‘복수’를 공언했다고 한다. 가해자의 구치소 동기가 이날 기자들 앞에서 한 이야기다. “피고인은 마지막까지 사과 한마디 없었다. ‘(구치소를) 나가서 피해자를 죽이겠다, 더 때려 주겠다’ 등의 말을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가해자가 피해자 신상을 적은 노트를 보여주며 나가면 여기(피해자 주소) 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탈옥 계획을 세운 것도 너무 충격적이었다.” 

가해자는 이날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울먹였다. “출소하면 그 사람은 50세인데 저랑 나이가 얼마 차이 나지 않습니다. (...) 왜 죄를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한테 이렇게 힘든 일을 안겨 주는지....”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지난 12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 이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은 13일 방영된 JTBC ‘상암동 클라스’ 방송화면 일부. ⓒJTBC 방송화면 캡처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지난 12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 이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은 13일 방영된 JTBC ‘상암동 클라스’ 방송화면 일부. ⓒJTBC 방송화면 캡처

구멍난 피해자보호제도에
예상됐는데 못 막은 ‘앙심살인’ 잇따라

피해자의 호소를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까닭은 최근 잇따른 ‘앙심살인’ 사건으로 드러난 피해자 보호제도의 허점 때문이다. 지난 5월26일 서울 금천구에서 33세 남성 김모 씨가 데이트폭력을 신고한 전 여자친구에게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 경찰은 별 조처 없이 가해자를 풀어줬고, 피해자는 지구대에서 나온 지 10분 만에 살해당했다.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도 스토킹 피해자가 합의해 주지 않는다며 앙심을 품고 범행했다. 전주환은 앞서 직장 동료인 피해자를 스토킹하다 두 번 고소당해 재판까지 받았지만 구속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를 기회를 준 거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교제폭력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헤어진 연인을 살해한 피의자 김모씨가 5월 2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금천구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교제폭력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헤어진 연인을 살해한 피의자 김모씨가 5월 2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금천구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이 2022년 9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이 2022년 9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2016년~2020년 보복범죄 발생 건수.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효적 가해자 조치 법제화 방안 연구, 2022
2016년~2020년 보복범죄 발생 건수.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효적 가해자 조치 법제화 방안 연구, 2022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보복범죄’는 2017년부터 최근 4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사건도 2018~2020년 매년 발생했다. 특히 2020년은 코로나19 여파로 2019년보다 전체 범죄 발생 건수가 줄었는데, 보복범죄는 오히려 늘었다(경찰청 범죄통계).

가해자 엄벌은 ‘앙심범죄’를 막는 열쇠다. 실제론 구속률이 높지 않다. 2020년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겨우 25.9%다. ‘보복범죄’ 피의자의 14.5%는 석방됐고, 구속영장을 신청해도 13.6%는 기각됐다. 

왜 구속률이 이렇게 낮을까. 수사기관은 피의자·피고인의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불구속 수사 원칙을 도입했다. 같은 기간 전체 범죄자의 구속률(1.2%)에 비해 25.9%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그러나 범죄수사 전문가들은 “구속 사유 심사에 있어 과연 피해자 보호의 관점이 어느 정도 고려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보복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향후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또 보복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높”지만, “보복범죄가 이미 발생했음에도 불구속 수사를 계속 진행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고, 구속영장이 기각된 비율도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2022).

경찰의 신변보호조치에도 구멍이 있다. 경찰은 필요할 경우 피해자의 동의를 거쳐서 또는 직권으로 가해자에 접근금지명령, 피해자에 스마트워치 지급, CCTV 설치, 주거지 순찰 등 조처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신변보호조치 기간에도 살인이나 2차 피해가 끊이질 않아 논란이다. 또 일선에선 신변보호 필요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를 활용하는데, 경찰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금천구 데이트폭력 살인사건 때 피의자의 범죄 위험성을 ‘없음’ 또는 ‘낮음’으로 평가해 논란이 일었다. 

‘현행 접근금지명령 등 조처가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한다’고 답한 경찰관은 24.6%에 불과했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가 2021년 10월22일~28일까지 전국 경찰 31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경찰이 가해자에게 경고를 해도 “경고 위반 시의 대응수단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는 한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옛 연인을 11개월 동안 스토킹하고 직장까지 찾아가 괴롭히고, 피해자가 신변보호를 받는 상황에서도 찾아가 살해한 김병찬(35)의 신원이 공개됐다. ⓒ서울경찰청
옛 연인을 11개월 동안 스토킹하고 직장까지 찾아가 괴롭히고, 피해자가 신변보호를 받는 상황에서도 찾아가 살해한 김병찬(35)의 신원이 공개됐다. ⓒ서울경찰청

신고·상담·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도 그랬다. 1년간 생업을 포기하고 진실 규명에 매달렸다. 형사재판 중 민사소송을 시작해 어렵게 여러 증거자료를 확보했는데,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주소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넘어갔다. 황당하지만 비일비재한 일이다. 손해배상청구소송 시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상대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해자가 붙잡혀 처벌받은 후에도 불안해하는 피해자가 많은 이유다. 폭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3명만 피해를 신고했다. 신고하지 못한 이들 중 4.7%는 ‘보복 우려’를 이유로 꼽았다(김민영.한민경.박희정, 전국범죄피해조사 2018,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9).

접근금지명령 적극 활용·적용 확대
재범 위험 높으면 구속·보석 제한을

전문가들은 더 적극적인 가해자-피해자 분리 조치를 주문한다. 접근금지명령을 적극 활용하고, 적용 폭을 넓히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보호대상자의 신원정보에 대한 접근금지, 기간 연장도 제안했다. 미국 미주리주는 2021년부터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심각한 위험”을 끼치는 가해자에 대해 ‘평생 접근금지’를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재범 위험이나 피해자를 해칠 우려가 높은 피의자에 대해 구속이나 보석 제한 조처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주거부정, 증거인멸의 염려,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만을 구속사유로 규정하고,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구속사유 판단의 고려사항으로만 취급하고 있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보복범죄’ 또는 피해자 위해와 관련되는 내용을 독자적인 구속 또는 보석 제한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각국의 구속제도.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효적 가해자 조치 법제화 방안 연구, 2022
각국의 구속제도.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효적 가해자 조치 법제화 방안 연구, 2022

한편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가해자의 신상이 수사 단계에서 공개되지 않은 점을 비판하며, 국회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헌법소원 심판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공개 확대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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