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tvN ‘구미호뎐1938’

tvN ‘구미호뎐1938’ ⓒtvN
tvN ‘구미호뎐1938’ ⓒtvN

‘남자는 늑대, 여자는 여우’, ‘곰 같은 남편, 여우같은 아내’라는 말처럼, 보통 여자는 여우에 비유되곤 한다. 자연스레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를 일컫는 ‘구미호’는 오랜 세월 여자로, 그리고 인간이 되고자 인간의 간을 탐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한(恨) 맺힌 요물로 묘사되어왔다. 이렇듯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전설 속 구미호는 인간이 되기 위해 여자로 변신하여 인간을 매혹하여 인간의 간을 먹는 요사스런 요괴로 인간과 대립되는 존재였다. 이후 부정적 이미지의 구미호 이미지에 멜로, 모성애, 로맨스의 색깔을 더한 드라마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긍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전설의 고향: 구미호>(2008), <구미호: 여우누이뎐>(2010),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2010)). 또한 <구미호외전>(2004)을 시작으로, <구가의 서>(2013)와 <간 떨어지는 동거>(2021)에서 남자 구미호가 등장하면서 성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드라마가 그리는 구미호의 모습은 색다른 옷을 입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게 됐다.

가신 통해 당대 여성들 반추

구미호에 대한 변화된 시각 속에 2020년 방영된 드라마 <구미호뎐>(tvN)은 남자 구미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한반도를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영웅적인 면모를 호쾌한 액션으로 담아내어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두 번째 시리즈로 <구미호뎐1938>(tvN)이 방영되었다. 앞선 시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산신 구미호 이연(이동욱 분)이, 1938년으로 불시착해 현대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얽히게 되는 인물과 사건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전 작품처럼 장르가 주는 액션의 쾌감과 속도감, 상상력이 재미를 더하는 가운데, <구미호뎐1938>은 여성으로 묘사된 가신(家神)의 존재를 통해 여성이라는 굴레 속에 고통을 겪었던 당대 여성들의 모습을 반추토록 한다. 더불어 본체가 수리부엉이인 산신 류홍주(김소연 분)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또 다른 여성 영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tvN ‘구미호뎐1938’ ⓒtvN
tvN ‘구미호뎐1938’ ⓒtvN

드라마 <구미호뎐> 시리즈는 구미호에 대한 인식을 재발굴해 신선함을 주었는데, 구미호는 한반도의 4대 산신으로, 백두대간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신묘한 능력을 부리는 남자 여우로 위상을 재정립한다.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구미호의 이미지를 넘어선 색다른 설정이다. 더 나아가 <구미호뎐1938>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우리나라를 유린하고 착취하는 일제에 맞서 한반도를 지키는 민족 영웅으로까지 구미호의 위상을 높인다. 이렇듯 <구미호뎐> 시리즈는 기존 구미호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깨부수면서 전설 속 요괴가 오늘날 새로운 영웅으로 재탄생하게 만든 드라마다.

<구미호뎐1938>이 배경으로 삼은 1938년의 한반도는 점점 일제의 착취가 심화되던 시기로, 드라마는 이러한 악랄한 착취에 신음하던 식민지적 상황을 상상 속 토착신들에 빗대어 풀어낸다. 수많은 토착신들은 일본 요괴들에 의해 납치되어 실험에 이용당하고 잔인하게 죽음에 이르는 존재로 그려진다. 일본 요괴가 조선의 토착신을 개량하여 전선에 투입하기 위한 실험에 이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독각귀(도깨비), 철융신(장독대를 지키는 토착신), 천하대장군, 우물신을 비롯해 여러 신들이 죽음을 당하는데, 이는 당시 벌어졌던 일제의 만행을 떠올린다. 또한 조선의 토착신들은 근대화로 인해 자신들의 터전인 부뚜막, 우물 등 깃들 곳(터전)이 점차 사라지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소멸되는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서민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민속 신앙으로의 수명이 다하여 전설 속 허구적인 이야깃거리로만 남아 사라진 전통을 되돌아보게 된다.

매력적인 여성 영웅의 탄생

저마다 사연 없는 무덤이 없듯 죽어 집안의 수호신이 된 여성들의 사연은 당대 여성들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겪었을 ‘한’을 위로하면서, 가부장제의 질서에 순종토록 하는 모순을 담아낸다. 2화에 여성들을 야차(괴물)로 만들며 흑화한 조왕신은 원래 아궁이에서 불타버린 며느리로 불쌍하다며 부엌을 지키는 신으로 만들어 여성들에게 극진히 모셔졌던 가신이다. 드라마에서 조왕신은 더 이상 본인을 신으로 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뚜막이 미용실로 탈바꿈하여 터전을 빼앗기자 예뻐지고자 하는 여성들을 응징한다. 또한 8화에 등장한 측신은 본부인의 질투로 죽임을 당한 첩이 변소를 지키는 신이 된 것이다. 드라마의 측신은 패악질을 부린 첩으로, 인간을 똥통에 빠뜨리고 오물을 던져 해를 미치는 존재로 그려진다. 드라마에 등장한 가신인 조왕신과 측신은 살아생전 시어머니와 남편, 본부인에게 핍박을 당해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로, 이들을 불쌍히 여긴 신에 의해 각각 가신이 되었다는 사연을 지닌다. 이러한 가신이 된 내막은 여성이라는 굴레 속에서 불운한 삶을 살았던 당대 여성들의 삶을 알려주는 동시에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죽어서 신으로 모셔지면서 여성들의 애환을 위로하는 신앙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또한 조왕신과 가신에게 복을 빌고 액운을 피하기 위해 여성들은 또 다른 짐을 짊어지게 되는데, 바로 조왕신이 지키는 부엌에서 악담하지 말고, 항상 깨끗하게 부엌을 관리해야하며, 측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한다. 이처럼 전설 속 기막힌 사연을 지닌 여성 가신은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신음하는 여성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가부장제 질서에 대한 반발을 막고, 또 다른 의무를 여성에게 지우면서 가부장제의 규율을 지키며, 순종하는 여성으로 만드는 모순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엿볼 수 있다. 

tvN ‘구미호뎐1938’ ⓒtvN
 tvN ‘구미호뎐1938’ 속 독립운동가 선우은호(김용지 분). ⓒtvN

“예쁜데 싸움 잘하는 X”로 본인을 소개한 류홍주라는 등장인물의 매력은 말 그대로 예쁜데 능력이 뛰어난 산신이라는 것이다. 특히 본체가 무소음에 가까운 비행능력을 지닌 수리부엉이인 서쪽 산신으로, 산신 중 힘이 가장 강하여, 달리는 기차를 탈선시키고, 무지막지하게 큰 검을 휘두르는 괴력을 소유한 인물로 묘사된다. 여성 캐릭터에 남성성을 상징하는 힘을 부여한 것이 특이한데, 이는 11화에서 일본 용병단 가운데 가장 힘이 센 오오가마라는 인물과 맞서 ‘힘 vs. 힘’ 대결을 펼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보통 남녀가 함께 대결하는 과정을 그린 대다수의 콘텐츠에서 ‘남자 vs. 남자, 여자 vs. 여자’가 맞붙는 장면이 많은 것과 달리, <구미호뎐1938>은 무영과 유키, 홍주와 오오가마의 대결을 보여줌으로써 성별이 아닌, 등장인물이 가진 능력에 초점을 둔 대결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사랑과 의리를 중시하면서 권모술수에 능한 입체적인 캐릭터인 류홍주는 여성성을 강조한 기존 여성 영웅들과 다른 결을 보인다.

시대적 배경을 옮긴 <구미호뎐1938>은 시즌1이 구미호의 재발견을 했던 것을 유지한 채, 다양한 우리나라의 전설과 버무려 일제강점기 속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과 그에 대한 저항, 그리고 가부장제에서 신음하는 여성들을 그리면서 한편으론 매력적인 여성 영웅의 탄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옛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이해하는 재미를 준다. 

김은영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외래교수
김은영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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