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재단 재개관 기념전 ‘내가 그린 여자들’
윤석남·박영숙·정정엽
류준화·주황 작가...29일까지

류준화, Ritual Table 2021_1, 캔버스에 아크릴, 182x227.3cm, 2021 ⓒ한국여성재단 제공
류준화, Ritual Table 2021_1, 캔버스에 아크릴, 182x227.3cm, 2021 ⓒ한국여성재단 제공

한국 여성미술의 선구자 윤석남, 박영숙, 정정엽 작가, 여성주의 회화에 천착해 온 류준화 작가, 여성 초상 사진 작업을 선보여 온 주황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5인의 전시 ‘내가 그린 여자들’이 오는 29일까지 서울 마포구 한국여성재단 사옥에서 열린다.

한국여성재단 사옥 재개관 기념 전시다. 1999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을 위한 민간공익재단이다. 성평등과 돌봄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여성들을 돕기 위해 그동안 기금을 모아 약 5400개 단체에 1600개가 넘는 사업을 지원해 왔다. 서울 마포구에 2007년 들어선 사옥을 새롭게 단장해 지난 5월30일 개방했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 초상화’를 그려온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기회다. 윤석남 작가는 마흔에 붓을 들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자각과 여성 내면의 세계를 한국 전통 색채 기법과 재료를 활용한 회화·설치 작품으로 표현해 주목받았다. 학고재갤러리 전속작가로, 2016년 영국 테이트 컬렉션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고 2018년 미국 스미소니언 뮤지엄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전시에 그의 작품이 메인 작품으로 걸렸다. ‘어머니’를 주로 다뤄 온 작가의 최근 화두는 ‘자화상’이다. 작가의 자화상 회화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박영숙, 꽃이 그녀를 흔들다 #13, C 프린트, 120×120cm, 2005 ⓒ박영숙 작가
박영숙, 꽃이 그녀를 흔들다 #13, C 프린트, 120×120cm, 2005 ⓒ박영숙 작가

박영숙 작가는 한국의 1세대 여성 사진작가이자 초대 여성사진가협회 회장이다. 여성의 몸과 자아에 대한 사회적 억압, 부조리, 성적 권력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가부장제가 속박한 ‘여성’에 대한 관념들을 전복시키는 작업 ‘미친년들’(1999)로 가장 잘 알려졌다. 이번 전시에선 ‘꽃이 그녀를 흔들다’ 연작을 선보였다. 꽃과 여성을 아름답고 연약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적 상징을 거부하고 여성의 신체와 시선을 주체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왼쪽부터) 정정엽, 고군분투, 2009, 캔버스에 유화, 162x130cm / 무장해제, 2009 , 캔버스에 유화, 162x130cm ⓒ한국여성재단 제공
(왼쪽부터) 정정엽, 고군분투, 2009, 캔버스에 유화, 162x130cm / 무장해제, 2009 , 캔버스에 유화, 162x130cm ⓒ한국여성재단 제공

정정엽 작가는 팥과 콩, 나물과 싹튼 감자, 벌레와 나방 같은 소외된 연약한 존재들을 작업의 주제로 그리면서 ‘여성’과 ‘여성의 노동’에 대하여 이야기해 왔다. 이번 전시에선 윤석남, 박영숙 작가를 그린 ‘고군분투’, ‘무장해제’ 등 동시대 여성들의 인물화를 선보였다. 작가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 여성들을 그린 연작의 일부로, 단순히 외모만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의 삶과 그들이 준 영감을 표현한 그림이다.

류준화, 33인의 여성들, 2021 ⓒ한국여성재단 제공
류준화, 33인의 여성들, 2021 ⓒ한국여성재단 제공

류준화 작가는 김마리아, 박차정, 정정화 등 독립운동사에서 조명되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초상을 그린 ‘33인의 여성들’을 선보였다. 1990년대부터 여성미술운동에 함께하며 잊힌 여성의 현실과 서사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표현해 온 작가는 2019년부터 역사 속 여성들로 작업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황 작가의 사진 작품 Departure #0462 New York, 2016, 170x113cm / Departure #2577 Tai Pei, 2016, 170x113cm ⓒ한국여성재단 제공
(왼쪽부터) 주황 작가의 사진 작품 Departure #0462 New York, 2016, 170x113cm / Departure #2577 Tai Pei, 2016, 170x113cm ⓒ한국여성재단 제공

주황 작가는 비혼여성공동체 등 동시대 한국 여성들의 삶을 고찰하는 작업을 사진과 영상으로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선 공항 출국장에서 만난 여성들을 담은 사진 연작 ‘Departure출발’을 선보인다. 유학이나 이민, 취업, 여행, 출장, 국제결혼 등으로 출국하는 젊은 여성들을 통해 디아스포라의 무거움뿐만이 아니라 이동하는 주체로서의 새로운 세대의 여성상을 포착했다.

고윤정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세대, 매체에 따라 ‘여성’이라는 공통의 카테고리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마련하고 나아가 앞으로의 여성의 실천적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또 “여성이 그리는 여성 초상은 그리는 주체와 그려지는 대상이 젠더적으로 일치함으로써 남성은 보는 주체, 여성은 보이는 대상이라는 뿌리 깊은 시각의 법칙을 부인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를 지향하는 여성 재단의 지향점에도 5명 작가의 시선은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장필화 이사장은 “여성재단이 여자들의 그림을 벽에 걸고 많은 분들이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세대와 계층, 연령과 배경이 다양한 여자들의 여러 가지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같음과 다름을 느끼고 여성들의 힘을 다시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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