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제36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지선(왼쪽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대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광야에서'를 합창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0일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제36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지선(왼쪽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대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광야에서'를 합창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10일은 6·10 민주항쟁이 있은지 36년째 되는 날이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기념식이 열렸지만 정부 측은 불참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 날이 2007년 국가공식기념일로 지정된 이후로 정부가 보이코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연인 즉, 기념식을 주관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행사를 후원했다는 이유였다.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되어있고 해마다 100억원 안팎의 정부 보조금 등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그런데 ‘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가 주최하는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광고가 지난 8일 한 일간지에 실렸다. 이 광고 내용에는 ‘열사의 염원이다. 민중세상 가로막는 윤석열은 퇴진하라’ ‘윤석열 정권 노동자 투쟁으로 끝장내자’ ‘주권과 평화 파괴하는 미국과 윤석열은 물러나라’는 등 현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들이 들어있었다. 문제는 이 행사의 후원 단체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명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행안부는 “공공기관인 사업회가 정부 예산을 받아 반정부 정치 행사를 후원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면서 기념식 불참 뿐만 아니라 사업회 사업 전반에 대한 특별감사를 결정했다. 이번 행사 뿐 아니라 차제에 사업회 사업 전반을 들여다 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권은 정부 공식행사를 스스로 거부한 현정부의 조치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부상한 상태다.

먼저 사업회가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후원자로 참여한 것은 부적절한 일이었다. 민간단체라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도 자유이겠지만, 사업회는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있으면서 정부예산의 지원을 받아온 기관이다. 정부예산을 지원받으면서 그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데 이름을 함께 올린 것은 모순된 행동이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하는 것이 옳다, “행사단체가 사전 협의 없이 정치적 내용을 포함했다”는 것이 사업회 측의 설명이고, 논란이 일자 후원자 명단에서 삭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일처리는 전적으로 사업회 측의 책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6·10 기념일 행사를 거부한 정부의 결정은 너무도 속좁아 보인다. 6·10 민주항쟁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나 윤석열 정부의 것이 아니요, 역사와 국민의 것이다.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루고자 했던 6월 10일의 정신을 기념하는데 이념과 정파의 차이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정부예산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사업회가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데 동참한 상황을 문제삼는 것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일을 빌미로 정부가 6·10 기념식을 보이코트한 것은, 6·10 항쟁 자체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되어있다. 정부의 기념식 불참은 한마디로 옹졸한 것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해도, 그것은 그것대로 지적하면서 기념식은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성숙한 정부의 태도였을 것이다.

정파를 넘어 치러지던 6·10 기념일마저 정치적 갈등 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회에서 생겨나는 갈등들을 조정하며 타협과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정치의 본래 역할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나 정치가 갈등의 유발자로 존재하고 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이다. 6·10 기념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훼손되고 분열과 갈등의 날이 되어버린 셈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향해 ‘그렇게 해도 되는가’를 물으려다가, 정부를 향해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는가’를 묻게 되었다. 모든 일들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숲을 보면서 갈등의 조정 능력을 발휘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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