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시간 484.4분,
돌봄노동에 장시간 노동 요구되면
채용 성차별 심해질 우려 있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가 만들어낸 혼란과 퇴행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젠더 관점은 시작부터 우려를 안고 있었다. 정부가 일할수록 나날이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국가의 책무는 시민의 기본권과 인권에서 배제된 이들이 없는지 살피고 그 권리가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살피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어느 곳에 차별이 존재하는지 찾아내고 모든 분야에서 모든 이들이 평등한 권리 속에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배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허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선언은 현존하는 문제를 존재하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젠더 문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노동 분야에 있어 사용자 중심의 시각과 젠더 관점의 부재로 퇴행적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 결과 현장의 혼란과 퇴행이 심각한 실정이다.

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과로사 부추기는 장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즉각 폐기하라' 토론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과로사 부추기는 장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즉각 폐기하라' 토론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장시간 노동 뒤에 숨은 성차별

여성의 노동시간은 늘 남성의 노동시간보다 길었다. OECD 통계를 살펴보면 임금노동시간과 무급돌봄노동시간을 합한 1일 총 노동시간은 여성이 484.4분, 남성은 468분이다. 돌봄의 책임이 과중한 여성노동자들은 지금도 시간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더욱 긴 장시간 노동이 요구되면 여성들은 현재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준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여성들은 더 짧은 노동시간을 찾아 시간제 일자리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의미한다. 지금도 절반의 여성노동자가 비정규직이지만 여성들의 일자리 질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배우자의 초장시간 노동 탓에 분담되지 못한 돌봄노동이 여성에게 더욱 가중될 것이다. 또한 사용자는 모든 여성이 당연히 미래의 돌봄전담자가 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초장시간 노동을 감당하기 어렵다 판단하게 된다. 채용성차별은 지금보다 더 심해질 우려가 높다.

아동 학대 ‘늘봄학교’

주 69시간이란 초장시간 노동시간을 논하던 정부는 저녁 8시까지 초등학생을 돌봐 준다는 늘봄학교를 추진했다. 초등학생이 삼시 세끼를 학교에서 먹으면서 하루 최장 13시간까지 학교에 머물게 한다는 구상이다. 교육계는 13시간 학교 체류는 사실상 아동학대라며 반발했다. 학교는 경직된 공간구성을 갖는다. 학생들이 책상 앞 의자에 앉아서 교육을 받는 공간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학교에는 늘봄학교를 위한 별도 공간이 마련되지 않는다. 정규교과 과정을 진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설에서 아동을 13시간 머물게 하는 것은 사실상 하루 13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과 같다. 이는 부모의 장시간 노동을 위해 아동 학대를 국가가 기획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운영 프로그램도 문제가 된다. 누가 학생들을 돌볼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계획도 없다. 교사도 돌봄전담사도 난감하다. 모자라는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정부는 자원봉사자와 기간제 교사를 모집하고 지자체의 노인 일자리와 연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기업 자율에 맡겨진 ‘성별근로공시제’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이름은 달랐으나 같은 내용의 유일한 정책이 바로 ‘성평등 공시제’이다. 윤 정부는 성별근로공시제라는 이름으로 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유일한 여성 노동 정책이다. 이는 젠더 관점을 가지고 정보를 분석하고 공개해야만 비로소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보의 공개만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결과를 가져온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따라 조치방안을 연구하고 집행해야만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정부는 기업의 ‘자율’ 공시를 ‘유도’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이미 공시제를 자율로 도입했다가 아무런 효과가 없자 강제조항으로 바꾸었다. 이미 경험치가 쌓인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뉴시스·여성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3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뉴시스·여성신문

유자녀 가구에 대한 직접 지원 강화, 퇴행적 저출산 대책

지난 3월 28일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향이 발표되었다. 이번 발표안은 지난 2020년 발표된 5개년 계획인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하 4차 계획)의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 가능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전면 부정했다. 근본적으로 구조에 개입하는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던 ‘개인의 삶의 질 제고’ 등 목표를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목표”라고 평가하면서,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추진 전략으로 내세웠다. 다시 유자녀 가구에 대한 직접지원을 골자로 하는 방안으로 저출산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성별분업구조는 그대로 둔 채 아이가 있는 가정만을 지원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결국은 더 낮은 출산율을 결과할 것이다. 저출산의 해법은 성평등한 사회, 성평등한 일터가 기본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성평등한 사회에 대한 비전도, 노동에 대한 존중도, 약자에 대한 국가의 책무도 그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상생 대신 ‘배제’, 공정 대신 ‘차별’이 지배했던 여성노동자의 지난 1년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본인 제공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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