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이혼을 했다. 이혼의 힘든 산을 넘는 친구를 보면서 한국 땅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게 뭔가 싶고, 엄마의 조건이 뭔가 싶어졌다. 친구는 시집에서 아이가 'O씨 집안 자손'이니 절대 줄 수 없다고 해 양육권 포기압력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자유로울 수 있었다. ∼씨 자손이라는 씨자랑 얘기야 한 두 번 들어본 것도 아니고 이제 폐지될 호주제가 뒷 심이 되어주니 숨 한 번 내쉬고 삭일 수 있었다. 정작 내 속이 뒤집힌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네가 '엄마자격'이 있느냐, 밤에 애 나한테 맡겨두고 친구 만나러 나가 술 먹고 놀다오고, 친구들이랑 며칠씩 여행갔다 왔으면서 왜 애를 달라고 하느냐며 남편이 되려 으름장을 놓더란다. 기막힐 노릇이다.

아침에 눈떠 아이 데리고 치료받으러 갔다가(친구 아이는 경계성 지능이라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일하러 갔다가 일 끝내고 부랴부랴 애 데리고 와 저녁 해 먹이고 집안 치우고 정리해 제 몸 씻고 나면 새벽 1시.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면서 살다가 주말에 낮에는 아이 보고 저녁에 아이 '아빠' 퇴근하면 아이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친구들 만나러 나갔다오곤 했던 것을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고 몰아세우는 것이다.

엄마의 조건은 제 인생은 제쳐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만 꽁꽁 끌어안고 살아가야 주어지는 건 아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에게서 생명을 부여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다. 때문에 '엄마만이 아니라, 아빠도 함께' 아이 키우기에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여성에게만 부과되고 있는 가사와 육아는 자칫 여성도 인간임을 잊게 하고 만다. 엄마도 웃고 싶고, 놀고 싶고, 즐기고 싶다.

권력은 교묘히 숨어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특정한 힘을 발휘한다. 부부관계는 밥을 한 번 더 해주고, 빨래를 한 번 더 한 것으로 평등관계를 평가받지 않는다. 결혼이나 이혼과 같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기준과 규칙들이 작용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남성의 권력이 드러나며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담론이 힘을 얻게 된다. 이혼을 앞두거나 고민을 하는 남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내가 '엄마라는 사람이 애도 안보고' 제 인생을 즐겼다며 가장 큰 죄명으로 들이댄다. 그렇다면 제 인생을 즐기고 있는 아내를 위해 '아이도 같이 봐주지 않은 아빠'는 도대체 죄명이 뭔가. 늦은 밤 술집을 가득 채운 기혼남성들의 모습은 어떤가. 이제 돌아보자. 엄마의 조건 말고 아빠의 자격부터 점검하자. 좋은 아빠 되기는 돈 버는 것보다 더 힘들지 모른다.

조유성원 한양대 문화인류학 강사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