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이제 삶의 분망함에서 한 발 물러선 엄마는 새삼 그 동안 손을 놓았던 직업, 엄마노릇이 하고 싶어졌나 보다. 마음이 허해서 그런가, 여유가 생겨서 그런가. 혹은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최근의 다양한 저출산율 논의 속에서 뒤늦게 자식의 의미를 곱씹게 됐기 때문일까.

남들은 나이가 들면서 잠이 확 줄어들었다는데 난 어떻게 된 게 잠이 줄어들기는커녕 나날이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아침 밥 먹여 내보낼 사람이 없으니 그저 내 눈이 저절로 떠지는 시간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터에서 걸어오는 전화벨 소리 때문에 잠을 깨는 적도 많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면 상대방은 어젯밤에 늦게 잤나보다면서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데 밤 9시 뉴스도 채 못 보고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그래서 절대로 이실직고하지 않는다. 잠퉁이라고 흉볼까봐. 미인도 아니면서 잠만 많으니 듣기에 좀 그렇잖아.

그런데 요즘 나의 수면전선에 이상이 생겼다. 잠의 공습에 결사적으로 저항하면서 밤 12시에 라디오를 듣질 않나, 일요일 아침 9시에 칼날같이 일어나 TV를 켜고 드라마를 보지 않나.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다 자식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의 직업정신 때문이다. 그새 새 일자리를 얻었느냐고? 아이고, 50대 후반 아줌씨를 누가 써준답디까. (참, 어제는 버스에서 자리양보를 다 받았다우.)

지난 20년 동안 프리랜서로 쉼 없이 잡다한 일을 해오는 동안에도 나는 그보다 앞서 갖고 있던 직업을 버리지도 않았고 행인지 불행인지 조기 퇴출당하지도 않았다. 엄마라는 직업은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종신직으로, 한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아이들이 여섯 살이 될 때까진 직업정신이 투철한 편이었다. 거의 동물적으로 물고 빨면서 먹이고 키웠으니까.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여 보내면서부터는 휴직을 선언했다. 이제부턴 내가 키우는 게 아니라 너희들 스스로 자라야 한다, 엄마는 그저 믿고 지켜 보겠노라.

대신 나 자신을 키워보려 용을 쓰느라고 바쁘게 살았다. 그 동안 믿어 주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 말대로 행운이 따랐던 덕분인지 아이들은 내가 믿었던 이상으로 잘 자랐다.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으니, 그러면 됐지.

그런데 이제 삶의 분망함에서 한 발 물러선 엄마는 새삼 그 동안 손을 놓았던 직업, 엄마노릇이 하고 싶어졌나 보다. 마음이 허해서 그런가, 여유가 생겨서 그런가. 혹은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최근의 다양한 저출산율 논의 속에서 뒤늦게 자식의 의미를 곱씹게 됐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알면 우리 엄마도 드디어 늙어가는구나 웃겠지만(혹은 걱정하겠지만) 요즘은 유난히 아이들 하는 일에 관심이 간다. 노래하는 둘째가 자정부터 두 시간 동안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지 네 달이 지났고 방송국 프로듀서 2년차인 셋째가 일요 아침 드라마의 조연출로 일하게 된 것도 석 달인가 되었다.

날마다는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심야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나는 둘째의 생활을 짐작한다. 유쾌한 웃음이 자주 들리는 날은 내 마음도 즐거워지지만 왠지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날이면 공연히 심란해진다.

둘째도 잠이 많은 편인데 잠이 부족해서 몸이 견뎌낼까 걱정되기도 하고 뒤풀이로 술을 많이 마시면 배가 나올 텐데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리곤 독립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자식에 대한 안쓰러움 같은 것으로 주책없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이건 완전 모노 드라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 나오는 셋째의 드라마. 솔직히 말하면 오래 전에 드라마를 분석하는 작업을 두 번 연거푸 하고 난 후 나는 드라마에 도통 덧정이 없던 상태였다.

하지만 아들이 참여한 드라마인데. 도저히 외면할 재간이 없었다. 드디어 나도 폐인이라나 철인이라나 아무튼 열혈 팬의 대열에 끼어 아침도 안 먹고 넋을 놓고 보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듣고 보기에만 그치나? 두 프로그램의 홈페이지까지 두루 살피느라고 얼마나 바쁜데.

아무튼 아무도 시키지 않는 엄마 노릇 한답시고 그 좋아하는 잠을 설쳐가며 혼자 분주하다. 그나마 첫째가 멀리 살기에 다행이지.

그런데, 참, 이런 것도 엄마 노릇이라고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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