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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대학 프로그램 중에서 엊그제는 50명 넘는 어르신들이 5명에서 6명씩 소집단으로 나뉘어 같은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그 내용을 종합 정리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토론이란 것이 늘 그렇듯 대화를 할 때 소외되는 분들이 없어야 하고,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또한 발표는 간단명료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보다 품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어르신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씀하시는 훈련을 하고, 동시에 다른 분들의 의견에 귀기울여 잘 듣는 연습을 하시도록 나는 토론 방식의 수업을 즐겨 진행하는 편이다.

그날 내가 어르신들께 드린 제목은 '어린아이·청소년·젊은 사람들이 밉고 싫을 때'와 '그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였다. 모두 9개 팀으로 나눠 토론을 했는데, 정해진 시간이 다 됐다고 말씀을 드리면 5분만 더, 5분만 더 하시면서 말씀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각 팀에서 자유롭게 정한 팀장이 요약 정리한 종이를 들고 나와 차례로 발표하는 시간. 먼저 젊은 사람들에 대한 성토가 뜨거웠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함부로 버릴 때, 젊은 남자가 귀고리를 하고 염색을 했을 때, 젊은 여성이 배꼽이 보일 정도로 지나친 노출을 했을 때, 경로석에 앉아서 모른 척 눈 감고 있을 때, 아이가 전철 의자 위에서 신발을 신고 뛰어도 엄마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때, 식당이나 차 안에서 떠들 때, 사용하는 언어가 거칠고 난잡할 때, 남녀가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심한 애정 표현을 할 때, 노인 공경의 자세가 전혀 없을 때 등이 공통적으로 나온 내용이다.

그 다음은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젊은 사람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었다. 노인들이 솔선수범하자,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익히도록 노력하자, 새로운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자,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자, 먼저 양보하자,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잘못을 보고 무조건 야단치지 말고 조용히 타이르도록 하자,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관심을 갖자, 가장 중요한 것은 나부터 잘 하는 것이다 등의 말씀을 하셨고, 마지막에 나오신 어르신은 앞에서 다 발표했으므로 한 마디만 하시겠다며 “아무리 미운 점이 눈에 보여도 우리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먼저 사랑합시다!”하셔서 박수를 받으셨다.

물론 어르신들의 말씀 중에 “장보러 가서 남자는 아기 기저귀를 이만큼 들고 여자는 빈손으로 가는 것을 고치자”라든가 “방송 작가 중에 여성작가가 많기 때문에 여자들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혼이 많아지는 것이니 그런 것부터 고쳐야 한다” 같은 무리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토론을 하시는 동년배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그 의견이 지닌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시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 속에는 노인이 노인의 의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와 희망이 싹트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 어르신들이 싫을 때는 언제인가를 물었을 때와 어르신들께 젊은 사람들이 밉고 싫을 때를 물었을 때 정확하게 겹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질서 혹은 공중 도덕 지키기라는 점이다. 두 세대가 서로를 향해 줄을 잘 서지 않는다, 새치기를 한다, 침을 함부로 뱉고 휴지를 아무 데나 버린다,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다, 자리를 양보 받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온 것 같다. 상대방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은 나도 하지 말 것이며, 상대방이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내가 먼저 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은 젊고, 한 번은 늙는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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