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5월 최말자 씨, 성폭력에 저항하다 상해 입히고 처벌받아
2020년 재심 청구했지만 2021년 기각
당사자 나서 대법원에 재심 개시 촉구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56년 만의 미투,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이 '대법원은 재심 개시로 56년 만의 미투에 정의롭게 응답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56년 만의 미투,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이 '대법원은 재심 개시로 56년 만의 미투에 정의롭게 응답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자인 최말자씨는 “제 사건의 재심을 다시 열어 명백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시 정의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해 구시대적인 법 기준을 바꿔야 만이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며 더 이상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1964년 성폭력 피해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 했다가 가해자가 돼 처벌을 받았던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56년 만의 미투,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 총 288개 단체는 2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56년 만의 미투 사건의 당사자인 최말자씨는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와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를 촉구했다. 

최씨는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에 대해 억울함과 분노를 표현하며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항소 역시 기각되어 할 말을 잃고 억장이 무너졌다”면서 “대법원 역시 3년이란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대답을 주지 않아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긴 시간에 몸이 지치다 보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 후손들을 떠올리면서 지금 바로 잡지 못하면 이런 일이 또 되풀이될 것이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제 사건의 재심을 다시 열어 명백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시 정의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해 구시대적인 법 기준을 바꿔야 만이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며 더 이상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피해자 최말자씨를 지지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최원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당시 국가와 사회는 피해자가 성폭력에 저항했다는 사실이 아예 없는 것처럼, 오로지 가해자의 상해 정도에 집중하고 가해자의 행위를 범죄가 아니라 가십처럼 다뤘다”고 말했다. 최 사무국장은 “흔히 법은 100명의 범인은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죄인은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원칙에 대해서 다시 질문한다. 법은 한 명의 이 무고한 시민을 죄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100명의 범인을 놓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은 60여 년 전의 판결이 이 사회와 여성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신고되지 못한 사건들과 처벌되지 않는 가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라. 법원이 그토록 강조하는 명예와 정의를 증명하는 길은 바로 최 말자 님의 재심 청구에 제대로 응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엘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는 법원에 과거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면서 “사회문화적인 환경이 달랐었다는 이유로 잘못된 결정이 올바른 결정이 되지는 않는다”면서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고 사건을 다시 한번 살펴보라. 피해자가 명예를 회복함과 동시에 사법부의 불명예를 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했다.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56년 만의 미투,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이 '대법원은 재심 개시로 56년 만의 미투에 정의롭게 응답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56년 만의 미투,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이 '대법원은 재심 개시로 56년 만의 미투에 정의롭게 응답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도 발언의 포문을 연 김현선 목포여성의전화 대표는 “여성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 법이 미치는 보호는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잘못된 판결은 언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이 정의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보장을 위해 이 자리에 세워진 국가기관 대법원이 의무로서 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김숙희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발언은 박민정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가 대독했다. 피해자는 “법은 온데간데 없었고 사회는 피해자를 외면했으며, 누구도 최말자 님의 아픔을 안아주지 않았다. 세상의 무지함 속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그 시대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들여야 하는 최말자 님의 억울함은 어디서 호소해야 하냐”면서 “재판부에 간곡히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 재판에서 억울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길 바란다. 재판부는 억울한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판부의 억울한 판결이 한 인간을 한 생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과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그 재판의 한을 가지고 산다는 끔찍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56년 만의 미투,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이 '대법원은 재심 개시로 56년 만의 미투에 정의롭게 응답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56년 만의 미투,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이 '대법원은 재심 개시로 56년 만의 미투에 정의롭게 응답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마지막으로 주최 측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수많은 시민은 바로 지금, 대법원이 사법부의 잘못을 바로잡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면서 “대법원은 재심을 결정하고, 사법부는 피해자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여 여성폭력 피해자에게 자신을 지켜낼 권리가 있음을 사회전체에 각인시켜라”고 말했다.

한편, 1964년 5월 자신을 강간하려는 가해자에게 저항하다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피해자 최말자 씨는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피의자’가 되어 중상해죄로 6개월간 구속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결국 최 씨는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2020년 5월 6일 사건이 발생한지 56년이 지난 뒤 최 씨는 자신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2021년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으며,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여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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