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피해자 잇단 사망에 ‘경매 중지’ 조치 단행
‘피해주택 공공매입’ 두고... 여야 입장 엇갈려
국토부 “공공매입 피해자에 도움 안 돼” “합의 필요”
대책위 “‘건축 사기꾼 재산압류, 피해자에 환수’해야”

지난 18일 인천 주안역 남측광장에서 진행된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피해자가 울먹이며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8일 인천 주안역 남측광장에서 열린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피해자가 울먹이며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로 3명의 청년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자, 정부가 뒤늦게 ‘경매 중지’ 조치를 하는 등 피해자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인데 정부 대책은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지적이다.

19일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시에서만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3000호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전세피해지원센터 운영 현황’에 따르면 센터가 개소한 지난해 9월28일부터 지난 2월1일까지 접수받은 피해 상담 건수는 보증금 미반환 사례가 65%로 가장 많았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접수자가 5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편 경기도 화성시 동탄 일대 오피스텔 250여채도 최근 전세사기 의심 사례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상황이다.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지난 18일 인천 주안역 남측광장에서 전세사기 피해로 고통받다 숨진 3명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뉴시스
지난 18일 인천 주안역 남측광장에서 전세사기 피해로 고통받다 숨진 3명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뉴시스

캠코, 금감원, 인천시... 부랴부랴 대책 마련 나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지난 18일 대통령의 경매 중단 지시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 경매 절차를 일시 연장하기로 했다. “한 번 기일을 연장하면 두 달 정도 미뤄지는데, 2번까지는 법원에 신청만 해도 받아들여진다”며 그 안에 추가 대책이 마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감독원은 19일 전 금융권과 함께 전세 사기 피해자의 거주 주택에 대한 자율적 경매, 매각 유예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전 긴급회의를 열고 저소득층·1인가구 등에 찾아가는 상담을 제공하는 등 관련 센터와 협회 등에 지원을 강화해달라고 요청했다.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온 인천시는 자체적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추가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대출 이자 2년간 전액 지원, 청년 월세 40만원 지원, 긴급주거지원 이사비 150만원, 사용료 체납에 따른 상수도·전기 단수·단전 유예, 전세피해지원센터에 경매·공매 전문법률상담사 추가 배치, 자살예방 심리지원 프로그램 등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피해자들, 정부 대책 실효성에 의문… 
국토부·
여당 “공공매입은 피해자에 도움 안 돼”

하지만 경매 기일이 연장돼도 보증금을 돌려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보증금채권이나 피해주택의 공공매입 등을 통한 구제 방법은 입법이 필요한 부분인 만큼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개인 간에 벌어진 일에 나랏돈을 투입하긴 어렵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공공매입은 선순위 채권자들에게만 돈이 돌아가고 피해자들에게는 한 푼도 가지 못한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피해자들이 대부분 후순위 채권자라 이에 해당된다.

전세금반환청구권을 공공이 매입한 후 세입자 전세보증금을 해결하자는 ‘선보상’ 방안에 대해서도 사회적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원 장관은 “전액 반환 요구는 사기범죄 피해금액을 국민 세금으로 떠안으라는 얘기인데, 과연 사회적 협의가 돼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 의장도 “(공공매입은) 피해자의 피해를 구제하는 데, 보상하는 데 쓰이지 않고 채권자들에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럼 피해자들이 그 손해를 피해 보상하는 쪽으로 가지 않아서 그 방향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주(왼쪽 네번째)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전세사기 방지 및 사기피해자 보호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성주(왼쪽 네번째)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전세사기 방지 및 사기피해자 보호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편, 민주당은 1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주택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특별법)’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의당은 정부 등 공공이 보증금미반환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해 피해 임차인 등에게 우선 공급하도록 하는 ‘임대보증금미반환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을 지난 3일 발의한 상태다.

공공매입에 대한 정부와 야당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의 핵심 요구사항인 ‘특별법 제정’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주애 미추홀구 전세사기 대책위 사무국장은 “미추홀구 전세사기와 관련 뉴스를 많이 찾아보지만, 정말로 원하는 건 ‘건축 사기꾼 재산압류, 피해자들에 환수’라는 제목의 기사다”면서 “법이 강해져서 사기꾼이 강한 처벌을 받고 피해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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