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최근 관계 정상화를 선언하는 등 그 동안 반목해 왔던 중동의 여러 국가들이 관계회복에 나서고 있다.

중동 국가들의 관계회복을 중재한 국가는 미국이 아니라 미국과 긴장관계에 있는 중국이다.

반면 미국은 트럼프 정부때 이란과 관계가 나빠진데 이어 바이든 정부들어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가 악화되는 등 중동 국가들과 멀어지고 있다.

미국의 언론들은 미국과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중국이 이익을 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관계 정상화

호세인 아미르압둘라이한 이란 외무장관(오른쪽)과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이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하고 있다. 지난달 양국은 7년 만에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이란 외무부
호세인 아미르압둘라이한 이란 외무장관(오른쪽)과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이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하고 있다. 지난달 양국은 7년 만에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이란 외무부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은 지난달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비밀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단교한 지 7년만에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고 두 달 이내에 상대국에 대사관을 다시 열기로 했다.

두 나라는 2016년 사우디가 이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아파 유력 성직자의 사형을 집행한 사건으로 인해 외교 관계가 끊겼다.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예멘에서 시아파 후티 반군 세력에 무기를 지원하고,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는 예멘 정부를 지원해 반군 지역에 폭격을 퍼부으면서 대리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양국 간 외교 복원 합의가 이뤄진 후 이란은 후티 반군 세력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앙숙이었던 두 나라가 외교 관계 정상화에 이어 정상회담까지 추진하면 양국 관계는 급속한 화해 무드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과거 사우디와 단교하는 과정에서 함께 외교 관계를 단절한 사우디의 우방 바레인과도 관계 복원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회복은 중국이 중재했다. 비밀회담도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영국의 텔리그래프(Telegraph) 중국이 지난 2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 관계 복원을 위한 협상을 중재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중국의 새로운 영향력을 과시했으며 이는 워싱턴을 기습적으로 점령한 외교 쿠데타였다고 평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6일 보도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고문인 모하베드 잠시디는 트위터를 통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양국의 외교관계 복원을 환영하는 서한에서 라이시 대통령을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로 초대했다”고 밝혔다. 잠시디 고문은 라이시 대통령도 사우디 측의 초대를 환영했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는 양국 외교장관급 협의를 통해 정상회담 장소로 세 곳을 골라 사우디에 제의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정상회담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사우디 국영 언론들도 아직 압둘아지즈 국왕의 서한 내용을 보도하지는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받는 중동 국가들과 관계 회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다가오는 아랍연맹(AL) 정상회담 개최국인 사우디아리비아는 회담에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초청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수주 안에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문해 공식적으로 초청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랍연맹 정상회담은 오는 5월 19일 사우디에서 열릴 예정이다.

시리아는 2011년 내전 발생 후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에서 퇴출당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해 3월에 이어 이달에도 알아사드 대통령을 초청하는 등 시리아와 관계 회복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 2월 튀르키예 강진 후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이 원조에 나서면서 해빙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최근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는 사우디와 시리아 간의 접촉을 재촉했다. 알아사드 정권은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달 23일 시리아 측과 관계된 소식통은 "양국이 4월 하순에 돌아오는 이슬람 명절인 이드 알-피트르에 대사관 재개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시리아가 아랍연맹에 초청된다면 알아사드 정권의 고립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한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 트위터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 트위터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달 29일 중국 주도 경제, 안보 협의체인 상하이 협력기구(SCO)에 가입했다.

이번 가입은 그동안 단절된 이란과의 외교관계 회복에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SCO는 지난 2001년 중국의 주도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여로 설립된 정치·경제·안보 문제를 협의하는 기구다.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합류했다. 이란 등 4개의 옵서버 국가, 사우디 등 9개 대화 파트너를 두고 있다.  이란도 정회원 가입을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원유 구입을 늘리고 있는 중국과 더 긴밀한 에너지 및 안보 관계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자의 석유기업 아람코는 중국의 석유화학 개발계획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하류부문에 투자를 하고 있다.

아람코는 성명을 통해 중국의 '롱쉥 석유화학' 지분 10%에 해당하는 지분을 36억 달러(4조6800억원)에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람코는 롱쉥과 향후 20년간 하루 48만 배럴(bpd)의 원유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사우디가 석유 무역에서 위안화를 채택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 중동 국가들, 미국 반대에도 원유 감산 기습 결정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장관들이 회의 후 회견을 갖고 있다. ⓒOPEC 홈페이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장관들이 회의 후 회견을 갖고 있다. ⓒOPEC 홈페이지

석유수출국기구(OPEC) 소속 국가들이 지난 2일(현지시각) 115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인 추가 감산 계획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앞서 12월까지 생산량을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한 결정과는 별도의 추가 조치다.

자발적인 감산 계획에는 사우디아라비아(50만 배럴), UAE(14만4000 배럴), 이라크(21만1000 배럴), 쿠웨이트(12만8000배럴)와 오만(4만배럴), 알제리(4만8000배럴), 카자흐스탄(7만8000배럴) 등이 동참했다.

이는 미국에 이익에 배치되는 것이며 러시아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AP통신은 이번 감산 조치가 “전 세계적인 유가를 상승시킬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금고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AP통신 등은 오펙플러스 국가들의 추가 감산으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사우디 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행정부는 고물가 억제 및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원유 판매 수익 제한을 위해 산유국들에 증산을 요구해 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3일(현지시각) 기자들에게  OPEC+가 감산 결정을 공개하기에 앞서 이를 미국 측에 알렸다고 밝혔다.

◆ 바이든의 사우디 '왕따'...바이든 뒤통수 친 사우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왕따 국가'로 불렀다. 대통령 취임 후 사우디 유전을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반군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배치된 패트리엇 미사일을 철수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 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전화 통화도 거부했다.

미국은 지난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배후로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지목됐다. 당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잔혹하게 살해됐다. 카슈끄지는 미국에 머물며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유세에서 인권을 탄압하는 사우디를 ‘파리아(Pariah)’ 취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아는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낮은 불가촉천민을 뜻한다. ‘왕따’로도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유가가 급등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왕따’ 공약을 어기고 지난해 사우디로 가서 왕세자를 만났다. 바이든은 사우디가 원유 증산으로 물가 압박을 해소하는데 협조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거꾸로 갔다. 바이든이 떠나고 3개월 뒤 OPEC+는 일 200만배럴 감산을 결정했다. 국제 유가가 뛰면서 비OPEC 석유수출국으로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혜택을 입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던 미국의 계획도 차질을 빚었다. 당시 미국은 "후과가 있을 것"이라며 사우디에 경고장을 날렸으나 엄포에 그쳤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내 미국의 최대 우방국이다. 사우디는 1986년부터 달러당 3.75리얄에 환율을 고정시켰다. 자연 리얄화 가치는 달러 가치에 연동된다. 그만큼 두 나라 경제는 밀접하게 얽혀서 돌아간다. 세계 석유 무역은 대부분 달러로 결제된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했다. 사우디는 그 대가로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아래서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삐걱거리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중국이 중재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화해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경종을 울렸다고 보도했다.

◆ 미국에 효용 가치 떨어진 중동...중국 이익 우려하는 미국 언론

미국의 연도별 석유수입 현황 ⓒ에너지정보청(EIA)
미국의 연도별 석유수입 현황. 2000년대 들어 전체 수입이 줄어든 가운데 2021년에 캐나다로부터의 수입이 51%를 차지했도 두 번째로 많았던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의 수입은 5%에 머물렀다.ⓒ에너지정보청(EIA)

1977년 미국은 석유(petroleum) 수입의 70%를 OPEC 회원국으로부터 들여왔다. 원유(crude oil) 수입량은 85%를 차지했다.

이후  OPEC 회원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점차 줄기 시작했으며 대신 캐나다로부터의 석유와 원유수입이 급증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1년 캐나다로부터 석유수입액이 51%를 차지했고 멕시코와 러시아가 각각 8%, 사우디 아라비아가5%, 콜롬비아가 3%를 차지했다.

원유 유입은 캐나다로부터가 61%, 멕시코 10%, 사우디 아라비아 6%, 러시아와 콜롬비아가 각각 6%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세계의 가장 큰 무기수입 시장은 중동이었다. 최대 수출국은 미국 이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평과연구소(SIPRI)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2017∼2021년 사이 그전 5년 간인 2012∼2016년과 비교해  무기수입 규모가 27% 증가했다. 

2012∼2021년간 무기수입 규모는 약 266억 7000만 TIV(Trend Indicator Value: 무기거래 추세를 무기의 생산 비용을 기반으로 산출한 보조지표)로 국가별로는 미국이 68%를 차지하며, 이어 영국(15%), 프랑스, 캐나다 순이다. 장비별로는 항공기가 53.5%로 가장 비중이 컸고 다음으로 미사일(16.6%), 기갑차량(15.9%) 순이다. 

2018∼2022년 기준으로 미국의 세계 방산수출시장 점유율은 40%로 직전 5년간(33%)보다 7%p 상승했다. 

무기수입이 가장 많았던 국가는 인도로 전체의 11%에 해당했고, 사우디아라비아(9.6%), 카타르(6.4%), 호주(4.7%), 중국(4.6%) 등이 뒤를 따랐다.

미국이 OPEC로부터의 원유수입 의존도를 낮추면서 효용가치가 떨어졌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무기시장은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70년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인권 문제와 아랍-이스라엘 분쟁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했으나  최근에는 미국이 더 이상 사우디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 사우디가 미국의 보호를 덜 신뢰하는 등 문제로 관계가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한 사우디의 기업인은 두 나라 관계에 대해 "오바마가 무덤을 팠고 바이든은 관 뚜껑을 닫았다"며 "양국 관계는 죽은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해부터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악화로 중국이 이익을 볼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서둘러 화해할 것을 촉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더 이상 미국을 기쁘게 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측근들에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대화에 정통한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워싱턴에 양보하는 모든 것에 대해 "보답을 원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전략적 동맹이었던 미국과 사우디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주요 산유국이자 중동의 주요 국가이며 미국에 대한 입장의 변화는 이 지역과 그 이상의 지역에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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