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직후 여성·시민단체 비판 성명
“훼손된 명예 복구 위한 시도” 지적
피해자는 아직도 2차 피해 시달려

지난 1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묘소 안장식이 진행됐다. ⓒ박상혁 자
지난 1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묘소 안장식이 진행됐다. ⓒ박상혁 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지가 1일 결국 민주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모란공원으로 이장됐다. 100여개의 여성·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장은 예정 시간보다 8시간 빠른 오전 7시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박 전 시장 묘지 이장은 단순히 개인의 “자유”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게 시민사회의 지적이다. 2차 피해에 시달리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아무런 사과 없이 고인과 지지자의 명예를 손쉽게 회복하기 위한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앞서 여성신문은  3월 29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민주화의 성지’ 모란공원으로 이장’ 제목으로 박 전 시장의 이장 소식을 단독 보도했다. 보도 직후 100개 이상의 여성단체가 묘지 이장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고 이장의 의도를 “성폭력 문제제기 이후 훼손된 ‘명예’의 복구를 민주진보의 이름으로 실행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고인이 된 박 전 시장을 사설 묘지인 모란공원에 이장하는 것은 유족 측의 자유”라는 주장이 나온다. 관리 주체인 모란공원 측과 추모단체들도 ‘모란공원이 민주화운동가들의 성지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돈만 내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모란공원에 이장한다는 것 자체가 박 전 시장이 민주열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추모단체들의 입장이다. 모란공원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추모연대와 모란공원사람들 모두 ‘박원순 전 시장을 민주 열사로 소개하거나 기념할 계획은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나 새벽에 이뤄진 박 전 시장의 기습 이장과 더불어 같은 날 진행된 안장식에 모인 유족과 측근들은 모란공원 이장에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박 전 시장의 배우자 강난희씨는 주위 측근들에 이장 소식을 전하며 “시장님께서도 뜻을 모아 한 시대를 함께 고민했던 많은 동지들이 계신 곳이어서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라며 모란공원의 민주열사들을 ‘동지’라고 표현했다.

수십여 명이 모인 안장식에서는 박원순 전 시장을 성인에 견주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마이크를 잡은 전모 목사는 박 전 시장이 “철저히 자기 자신을 내어 버리고 오로지 이웃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박 시장님은 가장 예수님과 부처님을 닮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언론·정치권·여성단체가 입을 모아 박 전 시장 묘소 이장을 비판했지만 유족 측은 이에 굴하지 않고 새벽 이장을 강행했다. 박 전 시장은 이번 이장으로 ‘시대를 함께 고민했던 많은 동지’ 곁에 잠드는 ‘평생 이웃을 위해 살다 간 사람‘으로 거듭났다.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됐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 발언을 인정한 가해자가 수십 명의 지지 속에 민주화의 성지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박 전 시장 유족 측은 인권위가 피해자 주장만 듣고 범죄자로 낙인을 찍었다며 같은 해 4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인권위의 권고가 타당하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유족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소송과 동시에 진행된 묘소 이장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성폭력 피해자에게 행해지는 집단적인 2차 가해라는 비판이 나온다.

졸지에 성폭력 가해자를 동지로 두게 된 모란공원에 잠든 수많은 민주열사들은 무슨 죄인가. 억지로 한 사람의 명예를 드높이려는 시도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을 고통에 빠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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