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우중충했다. 멀리 사는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는 설렘 덕에 먹구름도 먼 길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사히 목적지에 닿으니 그곳은 볕이 쨍했다. 친구들을 볼 생각에 마음도 밝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은 얼마나 삶을 반짝이게 하는가!

“드르륵” 문을 여니 여기저기 반가운 사람들이 보인다. 한 사람 두 사람 쏙쏙 모이는 가운데 멀리서 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청라 님!” 저 멀리 정청라와 그의 아이들 다울, 다랑, 다나가 한 줄로 걸어오는 게 보이자 몸보다 목소리가 먼저 나가 그들을 맞았다. 이들에게서는 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종달새를 보면 새의 노랫소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밥 짓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살자편지’의 저자 정청라. ⓒ문홍현경
‘밥 짓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살자편지’의 저자 정청라. ⓒ문홍현경

청라는 ‘밥 짓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살자편지’ 같은 그의 책뿐 아니라 노래로도 세상을 보듬는 이다. 청라와 아이들의 노래는 베어진 나무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경칩 즈음 깨어나는 개구리를 반기며, 딸기 요정이 제때 딸기를 빨갛게 물들이기를 주문한다. 또 이들의 노래는 아픈 이가 쉬이 낫기를, 고마운 이들에게 복이 오기를, 우리 지구가 더 뜨거워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자연이 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들의 노래와 같을 것만 같다.

나는 복도 많지, 이번 모임에서도 이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 “네가 여기 와 주어 감사하다”로 끝을 맺는 노래였다. “네가 여기 와 주어 감사하다, 네가 여기 와 주어 감사하다.” 이 말을 자꾸자꾸 되새김질했다. 눈물이 날 뻔했다. 마음에 너울이 일고 지나간 듯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색이든, 내가 무엇을 지향하든, 나를 그저 반갑게 맞아 줄 것 같은 문장. 왜 우리는 서로에게 ‘와 주어 고맙다고, 그냥 있는 그 자체로 고맙다’고 말해 주지 못할까. 환대란 무엇일까. 

이 노래를 듣고 며칠 지나 한 사람을 만났다. 지역도 기후위기도 바꾸기는 어렵다고, 그래 봤자 안 될 거라고 말하던 사람. 조곤조곤 뱉은 말로 내가 놓은 돌다리를 하나씩 부수던 사람. 그냥 흘려보내면 될 텐데 나라는 사람은 그게 잘 안 됐다. 며칠 끙끙 가슴을 저리다가 청라의 노랫말을 다시 새겼다. “네가 여기 와 주어 감사하다.” 나에게는 환대할 줄 아는 친구들이 있다. 어지러운 말들 속에서 ‘그럼에도 계속 가 보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 주는 친구들. 결국 그런 벗들 덕에 사랑이 단단해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오랜만에 청라의 책을 꺼내 다시 읽으며, 그의 노랫말을 되새기며, 마음에 난 틈을 메웠다.

당신 곁에도 이런 벗이 있으면 좋겠다. 모두가 꾸밈없이 안녕하기를 노래하는 벗들. 마음 어지러울 때 맑음을 되찾게 다독이고, 환대하는 문을 열 수 있게 돕는 벗들. 난민이 되어 쫓겨나는 이들과 그저 다르다는 까닭으로 내쳐진 이들, 주류가 아닌 길에서 벗어난 이들을 품도록 사랑을 노래하는 벗들. 해 봤자 안 될 거라는 주둥이들이 아니라 환대할 줄 아는 벗들이 지금 우리 곁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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