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숙 민우회대표 “여연 과잉 대표성이 다양화 위축”

영페미니스트 끌어안기 등 여성운동방식 전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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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은 이미 동질적이지 않다. 회원단체들은 각각 이슈와 영역별로 분화·전문화되었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니고 성장해왔다. 이제는 '합의와 통일성'의 강조보다는 차이가 다양성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조직적 재편과 운동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87년 탄생한 뒤 진보적 여성운동을 이끌어온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의 조직적 재편과 운동방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여성운동가들 사이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윤정숙(사진)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최근 발간된 '창작과 비평' 가을호(통권 125호)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의 전환을 위한 모색'이란 글을 발표하며 논의의 포문을 열었다.

윤 대표는 여성연합의 역할과 위상의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를 '민주대 반민주' 구도의 약화, 진보진영의 방향과 주체세력 다원화에 따른 변화된 사회 환경에 여성연합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단일한 통로'로서의 연합이란 위상은 운동 바깥의 집단들에는 효율적 소통이란 점에서 유효할지 모르나 '대표성·중심성의 과잉'은 내부 다양한 여성 운동들의 위축이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베이징+10 기념 여성정책평가토론회'가 지역여성단체의 활동과 성과가 반영되지 못한 채 서울에 있는 단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평가 역시 반성할 대목이라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윤 대표는 90년대 중반 이후 여성주의를 정체성으로 하는 다양한 여성운동들의 활동이 여성연합의 운동방식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웹진, 사이버커뮤니티, 인터넷언론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young)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이들은 인식과 실천에서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다양한 지형의 운동들을 만들고 있다.

윤 대표는 “이들은 기존의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적인 여성운동의 구분으로는 범주화되지 않으며 계몽과 동원의 코드를 넘어서 개인 삶의 가치와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이고 소통한다”며 “이들에게 운동은 더 이상 몸 던지는 희생을 감내하는 힘든 일이 아니라 개인 삶의 경험과 비전에 따라 새로운 의제와 실천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안팎으로 변화된 운동지형 속에서 여성연합은 어떤 조직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까. 윤 대표는 “담론적 논쟁과 전망 만들기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며 “내부 단체 간 차이를 인식하고 원활하게 소통시켜내는 것, 종합적 이슈보다는 특정 이슈에서 정책적 전문성을 가지고 특정한 운동방식에 집중하는 것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운동의 대중화는 여성들과 '함께' 일상 속에서 의제를 만들고 조직하고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주체적인 실천이 가시화된 사례로'아파트 공동체 만들기''생협운동으로 우리 농산물 지키기''공동보육''초안산골프장 건설반대' 등을 들었다.

한편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성매매관련법 제정, 호주제 폐지 등 대표적인 여성의제들이 해결되면 여성운동의 방향은 여성 노동권 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며 “여성연합의 지방 분권화를 위해 상근 활동가들의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앞으로 지역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면서도 “여성연합의 대표성·중심성이 약화될 경우 여성관련 문제에 관한 대정부 협상 등이 불리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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